이예환(李禮煥) 3

난국재집 해제(蘭菊齋集 解除).

■문집명 : 난국재집(蘭菊齋集) - 19c 간략서지 : 蘭菊齋 李禮煥의 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奎 1572 [간략해제] 경주이씨 34世 李禮煥의 유고는 아들 李基鑣에 의해 수습되었고 1843년 河百源(1781∼1845)의 편집과 교정을 거쳐 1851년 손자 李奎鉉에 의해 활자로 간행되었다. 권두에 洪直弼, 金勉根이 쓴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河百源이 쓴 跋文이 있다. 권1에는 <龍巖祠堂賦>의 부 1편, 詩 90수가 수록되어 있다. <龍巖祠堂賦>는 先祖 李齊賢을 모신 보령의 龍巖祠堂에서 그 德을 추모하고 스스로를 勸勉하는 내용이다. 권2와 권3에는 95편의 편지를 수록하고 있다. 그 중 金碩柱에게 보낸 편지가 59편이다. 대부분 학문을 토론하거나 처신이나 공부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이다. 권..

이예환(李禮煥)

■ 34世 이예환(李禮煥) [생몰년] 1772년(영조 48)∼1837년(헌종 3) 조선후기의 학자로. 자(字)는 치화(致和), 호(號)는 난국재(蘭菊齋), 또는 수안(洙岸)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고려 문하시중(門下侍中) 익재 재현(益齋 齊賢)의 후손으로. 송치규(宋穉奎)의 문인이고, 학행(學行)으로 관찰사(觀察使)에 천거되었으나 벼슬은 하지 않았으며. 문명(文名)이 높았고 저서로 난국재집((蘭菊齋集)이 있다. 난국재집은 이예환(蘭菊齋 李禮煥(1772∼1837)의 유문집(遺文集)으로 1851년(哲宗 2) 손자인 규현(奎鉉)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난국재(蘭菊齋)는 도학(道學)의 실천을 중시하였고 문장학을 경시하였으므로 유문(遺文)이 많지도 않았고 또한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의 아들 기표(基표)..

용암사당 부(龍巖祠堂賦)

■ 용암사당 부(龍巖祠堂賦) 소량공 천재후에 익재공의 홍업이 크다. 우리에게 주신 영정역사가 언제인 듯 삼산에 전한 진본을 영호에서 모사하여 자손이 보장하고 후학이 경모한다. 슬프다! 오종성의 선생부터 경영 터니 성사의 모든 일이 누구를 기다린 지 백년간 쌓인 정성 오늘에야 이뤄졌다. 근사에 여러 의논 이구동성 가결되어, 제종의 합한 심력 내일같이 서두르니 날을 듯한 저 사당이 불감성지 착공 됬다. 구슬같이 맑은 물은 뜰 앞에 둘러있고 연꽃같이 솟은 봉은 문 앞에 병풍 쳤다. 집터인들 범상할리 있으며 산수만이 명려할 뿐이랴. 급업한 저 낙산과 험 희한 이 중봉은 이제 목은 두 선생의 유풍을 가히 상상케 한다. 삼가 명막 중에 추모하니 깊이 그때 일이 감탄된다. 찬연했던 한 사우의 향사는 삼가 뒷사람의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