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난국재집 해제(蘭菊齋集 解除).

야촌(1) 2019. 1. 20. 02:15

■문집명 : 난국재집(蘭菊齋集) - 19c

 간략서지 : 蘭菊齋 李禮煥의 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奎 1572

 

[간략해제]

경주이씨 34世 李禮煥의 유고는 아들 李基鑣에 의해 수습되었고 1843년 河百源(1781∼1845)의 편집과 교정을 거쳐 1851년 손자 李奎鉉에 의해 활자로 간행되었다. 권두에 洪直弼, 金勉根이 쓴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河百源이 쓴 跋文이 있다.

 

권1에는 <龍巖祠堂賦>의 부 1편, 詩 90수가 수록되어 있다. <龍巖祠堂賦>는 先祖 李齊賢을 모신 보령의 龍巖祠堂에서 그 德을 추모하고 스스로를 勸勉하는 내용이다. 권2와 권3에는 95편의 편지를 수록하고 있다. 그 중 金碩柱에게 보낸 편지가 59편이다. 대부분 학문을 토론하거나 처신이나 공부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이다.

 

권4에는 奉安文 1편, 祭文 27편, 序文 3편, 跋文 1편, 雜著 7편, 行狀ㆍ墓表ㆍ傳 8편을 수록하고 있다. 金碩柱가 찬술한 李禮煥의 行狀이 부록으로 편차되어 있다. <先祖益齋影禎奉安文>은 고향인 보령의 龍巖祠堂에 先祖 李齊賢의 影禎을 봉안할 때 쓴 제문이다.

 

雜著 중 <大學退記>는 스승 鄭赫臣과《대학》에 대해 문답했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글로 12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鄭赫臣의 문집《性堂集》 卷5 <門人退記>에도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저자소개]

◇편저자 : 이예환 (李禮煥)

◇저자개요 : 1772∼1837 (영조 48∼헌종 3) 字: 致和, 號: 蘭菊齋ㆍ洙岸, 本貫: 慶州, 父: 東郁, 母: 寧越 辛氏

◇저자내용

李禮煥은 고려조의 문신이며 학자인 李齊賢의 후손으로 1772년 11월 3일 현재 보령 지역인 藍浦縣 洙岸里에서 태어났다. 9歲 무렵 李相郁을 스승으로 공부를 시작했으며 14세에 鄭赫臣(1719∼1793)의 문하에 나아가 白師亨, 李相文 등과 함께 성리학에 전심하면서 과거공부는 그만두었다.

 

고향 보령 지역에 거주하면서 道學을 강론하고 후학의 교육과 풍속의 교화에 노력하였다. 그 일환으로 朱憙ㆍ李齊賢의 祠堂을 세우고 性堂書社契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趙秉憲ㆍ趙秉悳 형제, 金碩柱, 宋穉圭 등과 교유하였다. 1837년 4월 20일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내용개요]

◇내용제목 : 난국재집(蘭菊齋集)

 

◇蘭菊齋集序(序1) : 1851. 洪直弼이 쓴 문집의 서문이다. 이예환의 손자 李奎鉉의 부탁을 받고 썼다. 이예환에

    대해 남긴 글도 많지 않고 명성도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밀한 학문과 독실한 실천은 한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

     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하면서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고 하고 있다.

 

◇蘭菊齋集序(序2) : 1849. 金勉根이 유고의 巧訂을 마친 뒤에 쓴 문집의 後序이다. 이예환의 아들 李基鑣의 부

    탁을 받고 유고의 교정에 참여한 뒤 쓴 글이다. 韓元震을 私淑한 鄭赫臣을 스승으로 하는 그의 학문 淵源을 소개하면서 평생

    世俗의 詞藻에 물들지 않고 학문에 몰두한 그의 學行을 칭송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성취가 세상에 크게 드날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권제]

龍巖祠堂賦(1) : 先祖 李齊賢을 모신 보령의 龍巖祠堂에서 그의 德을 추모하고 스스로를 勸勉하는 내용의 賦이

다.

 

◇詩(1)

大易吟, 偶吟, 讀大學有感, 讀春秋, 感興, 始講學規, 感興, 和三山宗人穉玄-二首, 雞龍山聳靑峴, 上峯, 山上路, 益齋先祖影堂韻, 次盧丈-炳箕-景栗亭韻-三首, 奉別栗亭丈, 仲禮兄-白師亨-疑余有塵心作蘭菊鴻鳥詩-四言四首-以諷之,余讀之感其意而美其辭賡作雉子詩以誓之, 蘭菊, 奉和洛中宗人晦汝-鎬, 寄日汝-縨, 挽尹丈-失名, 挽三山宗人穉玄, 登西原鎭南樓, 謁華陽書院, 巖棲齋, 煥章庵謹次尤庵韻, 臥龍巖, 過仙遊洞, 淸曄洞逢友人, 長角瀑布, 天皇峯用晦庵百丈巖韻, 還家吟, 和趙斯文持中-敬淳/三首, 齋居五樂歌, 黃池次陶庵韻, 新吉嶺驟雨, 哭仲禮, 挽任丈-相燁, 題五樂吟後, 贈士行-白敏洙, 戒諸生, 春興, 次任德淵-洙-六字詩, 春川士人韓濬裕忠孝歌, 水山齋次韻, 題漁樵堂, 聽鶯有感, 鷰子去後有感, 病中感吟, 詠蘭菊-二首, 詠懷呈養叔族兄-敬植, 芭蕉寄族兄養叔, 偶吟, 絶句, 新年詠懷, 長巖, 門徒適寫濂溪拙賦和伯臣韻, 端陽翌日與東兄尋中巖西麓, 行鄕飮禮於龍巖, 村翁刈草, 次龍岡所贈蓮池詩, 雨中看東坡綠筠詩有感, 萬東廟重修韻-二首, 無題, 次金敬理謁寒泉書院韻, 和金敬燾, 答金伯臣-幷小序, 投壺詩-幷小序, 島山絶頂枯拈先師遺韻-幷小序, 寄金敬理-鍾根-李敬念-敦學/幷小序, 寄趙郁哉-文鎬-四首, 和伯臣-二首, 上東洛懷仲禮, 挽金景八-章煥, 哭李時和, 答姜必亨, 五月五日依斜川故事分韻, 次何有子, 乃城康處子歌

 

◇答趙郁哉-文鎬(2) : 趙文鎬에게 보낸 답지이다. 공부의 방향에 대해 聖人이 남긴 經傳을 공부하여 근본[大本]을 세운

다음 지금[時王]의 제도에 따라 과거 시험에 응시하라고 조언하는 내용이다.

 

◇答趙善山-秉憲(7)

天文地理와 性과 天道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물어온 趙秉憲에게 보낸 답지이다. 천체 운행을 설명하는 左旋說과 右旋說의 관계에 대해 左旋說을 정론으로 보면서도 右旋說은 經과 緯의 속도 차를 적용하는 관점이 左旋說과 다를 뿐이라고 설명하는 내용, 無極을 氣의 범주로 설명하는 내용ㆍ天命과 成性을 性으로 統稱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

 

上達 공부에 해당되는 理/氣ㆍ心/性 등에 대해 탐구하는 어려운 공부를 우선하고 下學 공부에 해당되는 言/行을 가다듬은 日常에서의 쉬운 공부를 뒤로 미룬다면 ‘대단한 공부를 한다는 자만[自大]’에 빠져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게 된다고 공부에 임하는 태도와 관련해서 조언하고 있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答姜渭翁-必亨(11)

姜必亨에게 보낸 3편의 답지이다.《중용장구》의 ‘敎’를 禮樂刑政으로, ‘修’를 品節로 풀이하는 문제, 費隱章과 관련해서 章의 構成은 문장의 흐름[文勢]을 우선 검토하고 다음으로는 문장의 의미[義理]를 보아 판단해야한다고 설명하는 내용 / “마음은 출입이 없다”는 范女[송나라 范純夫의 딸]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 왕양명의 학설을 비판하는 내용 / 아동들을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訓蒙資生] 사람을 나무에 붙어사는 이끼[女蘿]에 비유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答吳君瑞-自南(15)

과거시험 공부와 心學 공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할 지를 물어온 吳自南에게 보낸 답지이다. 관직에 나가라는 공자의 권유를 아직 자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학문에 전념한 漆雕開의 뜻을 담고 있는 ‘見大軒’이라고 吳自南이 새로 신축한 精舍의 이름을 지어주며 학문에 정진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與任德淵-洙(17)

任洙에게 보낸 3편의 편지이다. 文王에서부터 周公, 공자를 거쳐 程ㆍ朱로 이어진 義理易과 복희에서 시작해 焦延壽ㆍ京房, 郭璞을 거쳐 陳摶과 소옹으로 이어진 象數易이라는 역의 두 갈래 전래 내력을 설명하는 내용,

 

부탁받은 表文 編述을 사양하는 내용 /

보내 온 詩를 평가하면서 적절하지 못한 용어나 구절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 보내온 편지에 보이는 과거공부와 학문을 별개의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 /

 

李道凝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스승의 유고 교정 일이 늦어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 圭璧의 璧과 室壁의 壁자의 의미 분별을 통해 子光의 字說에 사용된 壁자가 제대로 사용된 것인지를 검토하는 내용, 자신을 선생이라고 칭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우니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말 것을 부탁하는 내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與趙孺文-秉悳(24)

趙秉悳(1800∼1870)에게 보낸 2편의 편지이다. 자신의 妻의 상에 조문해 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하며 장례의 과정과 절차를 알리는 내용, 인재의 추천과 관련해서 해당되는 직위에 있지 않는 경우는 추천에 관한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내용,

 

그의 형 趙秉憲의 出仕를 축하하는 내용, 과거시험과 관련해서 합격 여부는 운명에 맡기고 혹시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조언하는 내용 / 조병덕의 재혼[續絃]을 축하하는 내용, 과거시험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내용, 15세의 손자가 병으로 죽고 흉년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등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내용(1837) 등을 담고 있다.

 

◇答鄭聖拜-言昌(27)

鄭言昌에게 보낸 2편의 답지이다. 六味丸을 복용하고도 병세에 큰 차도가 없는 鄭言昌의 병세를 걱정하는 내용, 宗姪 李子建의 病死로 宗兄 李某가 슬픔에 잠겨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 자신의 딸 혼사 소식을 전하는 내용, 金敬理와 金敬念의 初試 합격을 축하하며 會試에 관한 소식을 알려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

 

宗姪의 장례가 끝나는 대로 宗兄을 모시고 금강산 유람을 가려는 계획을 알리면서 금강산 주변의 수령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으니 도성의 知舊들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 / 두 아들이 병상에서 일어난 것을 축하하는 내용, 鄕飮酒禮의 행사 진행에 대해 상의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答白敬汝-尙訥(29)

白尙訥에게 보낸 6편의 답지이다. 부인의 喪에 朝祖[발인하기 하루 전 朝奠을 마친 뒤에 靈柩를 모시고 사당에 가서 마지막으로 조상을 뵙게 하는 의식]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 상례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 / 祔祭에 상주가 宗子가 아닐 경우 三獻官의 讀祝 여부 문제 등 상례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 /

 

장례에 신주를 사용하지 않고 지방을 사용하는 경우의 지방 형식 등 상례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 / 國喪을 당했을 때의 私家의 喪ㆍ祭의 연기와 속행 일시 등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 / 妻의 상을 당한 슬픔을 토로하고 白尙訥의 조문 편지에 사의를 표하는 내용 / 宗姪 李子建의 病死로 상심하고 있는 宗兄 李某를 위로하기 위해 금강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하며 여행의 여정, 소요 시간, 경비 등을 알리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與華山鄭上舍-奎漢(33)

鄭奎漢(1750∼1824)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보낸 問目에 자세히 대답해 준 것에 감사하는 내용, 宋能相(1710∼1758)의《雲坪集》을 읽고 의심나는 것에 대해서는 비록 공자와 주희 말이라도 무턱대고 추종하지 않고 검토하여 명확히 하려고 노력했던 그의 자립성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 父喪 중에 祖喪이나 母喪을 당한 경우의 喪期에 대한 견해,《대학》 正心章은 靜時/未發의 공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誠心章이 靜時의 공부에 해당된다는 견해 등 정규한의 대답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與金伯臣-碩柱(36)

金碩柱에게 보낸 20편의 편지이다. ‘求放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공부의 근본이고 이 근본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많은 독서를 통해 지식을 확장하고 문장을 멋있게 지을 수 있어도 군자가 될 수 없다고 조언하면서 권면하는 내용, 喪禮의 禮制를 준행하는 풍속이 성행하고 있지만 人心이 피폐해지고 名分이 지켜지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근본을 망각하고 말단만 쫓는 외형만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내용 /

 

많이 아는 것[博學]에 치중하고 근본을 보존하는 측면[操存]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김석주의 공부 태도를 비판하며 조언하는 내용 / 부모를 잘 봉양하고 형제와 화락한 가운데 독서하며 지내는 金碩柱의 삶을 부러워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내용 /

 

周敦頤의 <拙賦>를 읽고 주돈이와 옛 聖賢의 기상을 느낀 감회를 서술하며 김석주에게 <졸부>를 읽어보고 시를 지어 보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 / 君子와 凡人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 蓮塘을 보수하던 중 石龜를 얻었을 때 지은 시를 보내며 화답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 /

 

東谷 某와 彛齋 白頤正(1247∼1323)의 옛 서당 터가 있는 太乙洞에 가려는 계획을 알리며 동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내용 / 문장에 치중하는 성인의 학문과는 거리가 먼 김준수의 공부 경향을 비판하며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 음주와 말실수를 경계하는 내용 /

 

經書를 읽으면서도 그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를 마음이 밖으로만 내달려 衣食을 구하는 데에 가 있어서 心性을 닦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爲人之學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당시의 공부 풍토를 비판하는 내용, 흉년을 걱정하는 내용 / 가뭄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함께 모여 講學할 여유조차 없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내용 /

 

보내온 편지에 詩作에 대한 내용만 있고 心性이나 責善 등의 공부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을 나무라는 내용 / 학문의 성취는 많은 책을 읽고 안목을 넓히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經書의 내용을 마음으로 玩味하면서 그 속에 있는 이치를 파악해 나가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내용 /

 

보내온 시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 시작에 능숙하지 않아도 의리를 분별할 수 있고 인의를 존숭하며 부귀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면 임금을 보필하는 관리가 될 수 있다면서 학문에 정진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 / 초학자가 異端에 대해 조심해야 할 점을 지적하는 내용 / 근본을 수양하지 않은 상태에서 악기[琴] 연주를 배우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내용 /

 

邪를 없애 誠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 / 삼일 만에 성복하는 것[三日成服]은 예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내용, 花卉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내용 / 詩와 문장 공부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는 내용 / 喪을 대비해 집에 비축하고 있어야할 麻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할 정도가 된 경제적 곤궁을 탄식하고 있는 내용 /

 

아들이 있고 없고는 하늘에 달린 문제이므로 군자를 지양하는 사람에게는 근심거리가 되지 않는 문제라고 조언하며 나의 노력 여하에 달린 덕성의 함양에 진력하는 문제야말로 진정한 근심거리라는 점을 강조하며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 /

 

배우는 학도들이 문하는 떠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는 김석주에게 天地의 만물 양육과 聖人의 사람 교육의 덕을 본받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라고 조언하는 내용 / 말하고 일을 함에 있어서 聖人에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돌아보면서 공부해 나갈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서로 간에 권면하자고 부탁하는 내용 /

 

들리는 김석주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에 대해 독서가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폐라고 충고하는 내용, 스스로를 단속할 때는 畏敬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온화함과 아량[和恕]을 갖도록 하라고 조언하는 내용, 塘翁 姜碩期의 祠宇 건립에 대한 논의 사항을 알리는 내용 /

 

沙川의 山訟의 처리와 관련해서 조언하는 편지로 말을 신중히 하는 것과 도리를 아는 사람에게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 두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는지를 반성하라고 권유하는 내용 / 京房의 象數易 등에 관심을 가지는 등 雜搏함을 쫓는 경향을 비판하는 내용, 李養汝의 자질을 칭찬하는 내용, 居喪 중인 朴明彦이 행하고 있는 喪制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자신을 대신해 조언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

 

算學에 밝은 仲約氏에게 배움을 청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내용 / 출입을 자제할 것ㆍ음식을 절제할 것ㆍ말을 신중히 할 것 세 항목을 初學者가 염두에 둘 지침으로 제시하는 내용, 부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 國喪과 관련하여 哭拜하는 사안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與白子仰-師斗(24)

白師斗에게 보낸 2편의 편지이다. 讀書의 목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내용,《小學》과 <學規>, <鄕約束>을 공부하여 이를 마음에 보존하고 몸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다면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 독서의 목표인 道를 아는 것에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조언하는 내용 /《孟子》 滕文公上의 “治地莫善於助, 莫不善於貢”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내용이다.

 

◇與白秀才東悅東漢(25)

白東悅, 白東漢에게 보낸 편지이다. 독서할 때는 輕重과 大小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부 방법을 조언하는 내용이다.

 

◇答族兄養叔-敬植(26)

族兄 李敬植에게 보낸 5편의 편지이다. 空과 色에 대한 佛家의 견해와 李珥(1536∼1584)의 견해를 비교하고 ‘鳶飛魚躍’의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어류》에서《춘추》에 관련된 주희의 언급들을 찾아 읽는다면《春秋胡氏傳》의 부실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고 나아가 전해지지 못한 내용들의 단서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는 내용 /

 

《대학》과《춘추》의 관계와 성격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내용, 벗들과 모여서 講學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적 교류의 폭을 넓힐 것을 조언하는 내용 / 보내온 詩가 병을 앓고 난 이후의 일반적인 상태에 대해 핵심[肯綮]을 잘 드러냈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좋지 않은 상태를 설명하며 詩의 내용이 자신의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내용 /

 

《莊子》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내용, 李珥가 金剛老僧에게 준 詩[<贈小庵老僧>인 듯함]의 序文에 空과 色을 이용해 불교의 교리를 논파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 / 宋能相의《雲坪集》을 보내며 읽어 볼 것을 권유하는 내용,《雲坪集》에 대한 개략적인 평가와 이 문집을 읽을 때 관심을 기우려야 할 측면, 주요 내용 등을 설명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答族姪士九-熙鼎(30)

族姪 李熙鼎에게 보낸 4편의 편지이다. 아이가 태어난 것을 宗廟에 고할 때 부인이 따라야 할 예식을 조언하는 내용, 부친의 사후 형제간의 재산 분배 논의의 시작 시점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 / 큰조카의 딸 혼사에 관해 조언하는 내용, 과거시험을 치기 위해 올라갈 때 경로에 있는 禮山의 集成祠에 들러 祭享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 4월 禊會에 올 때《節酌通編》의 서문과 처음 두 권의 목록을 옮겨 적어 가져올 것을 요청하는 내용 등 /

 

陳嬰母와 王陵母의 현명함ㆍ序文의 작자 등《春秋》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 그의 姪女의 혼사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 / 朱子書와《尤庵集》,《節酌通編》 독서를 권유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與族姪幼文-熙奎(32)

族姪 李熙奎에게 보낸 4편의 편지이다. 부친 상 중에 있는 이희규를 위문하고 襄禮에 관련된 부분을 조언하는 내용 /《서경》을 읽고 있는 이희규에게 범범하게 읽어 넘기지 말라고 조언하는 내용 / 朱子書와《綱目》을 읽고 있는 이희규를 권면하며 怠慢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 / 婦人의 舅姑喪에 대한 服制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先祖益齋影禎奉安文(1)

보령의 龍岩影堂에 先祖 李齊賢의 影禎을 봉안할 때 쓴 제문이다.

 

◇祭文(1)

이예환이 찬술한 27편의 제문이다. 대상과 저술 시기는 다음과 같다. 鄭赫臣(1793), 李相郁(1816), 白師亨(1808), 任載成(1810), 李相文(1811), 金馨汝(1811), 金漢鼎(1816), 李仁暹(1817), 李煥斗, 江汝 任某, 吳伯讓(1822), 金鍾根(1829), 李東培(1830), 柳奎煥, 金箕淳, 李敬植, 李夏榮, 白尙獻, 李宗海, 宗長 李某, 致禮 吳某, 白師斗, 致行 白某, 鄭言昌, 自南 吳某, 仲厚 金某, 張賢郁.

 

◇淸溪集序-癸酉(29)

1813. 同門 白師亨의 遺稿를 묶은《淸溪集》의 서문이다. 그의 부친 白某의 부탁을 받고 썼다.

 

◇鄕飮禮笏記序-丙子(30)

1816. 鄕飮禊를 조직하고 그 규약을 편술한 笏記에 붙인 서문이다. 鄕飮禊의 목적, 節目, 禊員의 성명, 나이, 거주지 등을 기록하고 있는 홀기의 구성 등을 서술하고 있다.

 

◇大同禊帖序-戊寅(32)

1818. 洙洞의 洞禊인 大同禊의 禊帖에 붙인 서문이다. 洞禊의 명칭인 ‘大同’의 의미를 설명하며 동계의 설립자의 의도를 연역하는 내용, 남북으로 나뉜 洙洞의 洞禊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기를 바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性堂集跋(33)

스승 鄭赫臣의 유고를 묶은《性堂集》에 붙인 발문이다. 鄭赫臣의 아들 鄭聖拜의 부탁을 받고 썼다. 유고의 수습 과정, 유고의 교정을 자신이 맡게 된 사연, 교정에 참여한 사람들 등을 기록하고 있다.

 

◇大學退記(34)

스승 鄭赫臣과《대학》에 대해 문답했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글이다. 12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鄭赫臣의 문집《性堂集》 卷5 <門人退記>에도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洙岸書社約束(38)

洙岸書社의 學規이다. 13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李珥의 <文憲書院學規>에 의거하고 중간 중간 자신의 생각을 첨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蘭菊齋記(40)

蘭菊齋의 기문이다. 齋號를 ‘蘭菊’으로 삼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黙可軒記(41)

任德淵에게 써 준 黙可軒의 기문이다. 程頣의 <言箴>의 “傷易則誕, 傷煩則支, 已肆物忤, 出悖來違” 구절을 적어 보내면서 암송하며 그 내용을 음미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白子仰字說(42)

白師斗에게 ‘子仰’이라는 字를 지어주며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任德汝字說-庚午(42)

1810. 任好燦에게 德汝라는 자를 지어 줄 때 쓴 字說이다. 冠禮를 주관한 盧炳箕의 부탁을 받고 썼다.

 

◇先考妣行狀(43)

선친 李東郁(1751∼1789)과 모친 寧越 辛氏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

 

◇外祖辛公墓表(47)

외조부 辛碩勳(1716∼1763)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

 

◇漁樵堂行狀-代作(48)

金漢鼎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 그의 嗣子 金碩柱를 대신해서 찬술하였다.

 

◇從伯母金氏殉節錄-乙酉(50)

1825. 홍역으로 남편 李東發이 세상을 떠나자 그를 따라 죽은 從伯母 光山 金氏의 殉節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다.

 

◇白氏烈行錄(51)

병으로 남편 李震榮이 세상을 떠나자 그를 따라 죽은 그의 부인 藍浦 白氏의 殉節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다. 李震榮은 이예환의 宗弟이다.

 

◇李氏烈行錄(52)

결혼한지 두 달 만에 병으로 남편 李大勳이 세상을 떠나자 冠, 주머니, 담배갑, 담배대 등 남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삼년상을 마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인 慶州 李氏의 殉節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다. 李大勳은 이예환의 宗人이다.

 

◇吳氏孝烈呈文(53)

洞民 故 學生 金浩柱의 부인 吳氏의 40년 전의 孝行과 殉節 사실을 기록하여 巡察使에게 알리며 旌門내려질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글이다.

 

◇病夫傳(54)

송시열의 문인 李商翼의 五代孫 李鎤의 德性과 학문을 기록한 전기이다.

 

◇附先生行狀(56)

金碩柱가 찬술한 이예환의 행장이다. 이예환의 아들 李基鑣의 부탁을 받고 썼다.

 

◇蘭菊齋集跋(跋4)

1843. 河百源이 문집에 붙인 발문이다. 이예환의 아들 李基鑣으로부터 부탁받은 문집 교정 작업을 마친 뒤 쓴 글이다. (이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