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림(李寶林) 3

安宗源,李寶林과 우정을 나눈詩 - 이색

창화안정당 여종손계림군 (昌和安政堂 與宗孫雞林君) 지은이 : 이색(李穡) 창화(昌和) 안 정당(安政堂)이 종손(宗孫) 계림군(雞林君)과 함께 술을 가지고 방문하여 말하기를, “주금(酒禁)이 25일로 한정되었으므로, 이 때문에 와서 위로하는 것이다.” 라고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정당공(政堂公)은 간의대부(諫議大夫)를 겸했으니, 이것이 비록 헌부(憲府)에서 아뢸 일은 아니지만, 그 금지(禁止)하는 것은 헌부에서 심력(心力)을 써야 할 일이거니와, 금지는 반드시 엄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것을 애처롭게 여겨서 온 것이고, 계림군은 또 나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와서 나의 곤궁함을 위로해 주는 것이리라.” 하고, 이에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실컷 마신 다음 취하여 한 수를 쓰다. ..

백원첩(伯遠帖)

■ 백원첩(伯遠帖)에 수록된 7인 문학인의 연구(聯詩) 백원첩(白猿帖)은 고려 태조 왕건이 임금이 되기 전 양(梁)나라 장군 유덕양(劉德梁)이 태봉국[궁예(弓裔)가 세운나라]을 성토[聲討,916년]함에 대하여 왕건이 유덕양 장군에게 이태백의 詩 2首를 친필로 써서 증별(贈別)로 준 시첩(詩帖)이다. 이 시첩은 포은 정몽주선생이 1372년(공민왕 21)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당시 유덕양 장군의 후손으로 총마(驄馬)의 벼슬에 있던 유희억(劉禧億)을 만났는데 이때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려태조 왕건의 친필 시첩(詩帖) 상하 2首 가운데 1首를 정 포은 선생이 얻어온 것이다[포은집 습유편(拾遺篇)에 이 내용이 있음]. ↑포은 정몽주선생의 유필 ●포은선생 유필국역 “내가 洪武5년 壬子(1372. 공민왕..

제용재(濟用財) - 이보림(李寶林)

경북인물열전 (62) 제용재 설치로 백성들의 횡렴당하는 고통을 없애준 이보림(李寶林) 옮긴이 : 이 웅 재 이보림(李寶林)의 생몰년(미상~1385년(우왕 11) 7월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요, 본관은 경주(慶州), 문하시중을 지낸 이제현(李齊賢)의 손자이며, 이서종(李瑞種)의 아들이다. 사람됨이 엄격하고 품행이 방정(方正)하고 정치적 재능이 뛰어났다. 1355년(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였고, 1357년 우사간(右司諫)으로 있으면서 나라에서 염철별감(鹽鐵別監)을 여러 도에 보내려고 하자 우간의(右諫議) 이색(李穡) 등과 함께 그 폐단을 들어 혁파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재상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1359년(공민왕 8) 남원부사(南原府使)로 있을 때에는 새로 제용재(濟用財)를 설치하여 모든 경비를 지원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