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 3

이상설선생의 유훈

보재 이상설선생의 유훈 선생은 너무나 완벽할 정도로 깨끗했고, 선사(仙師)와도 같이 단정했다. 도학군자(道學君子)라고 일컬을 정도로 부사존장(父師尊長)을 경모하며, 연하를 사랑하고 생양부모(生養父母)에 극진한 봉양은 남촌의 효자로 칭송되었다. -------------------------------------------------------------------------------------------------------------------------------------- 글 : 이완희(보재 선생의 조카) [1] 나의 시신과 유품을 불태우고 광복을 보기 전에는 제사도 지내지 말라.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선생의 전기를 위한 자료를 모아 보려는 생각은 일제 치하에서는 감불생심(敢不生心)이었고, ..

연해주 시절의 이상설 선생.

■ 연해주 시절의 이상설 선생. 글쓴이> 민충식[閔忠植) : 1890년(고종 27)∼1978년]/독립운동가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 참석이 좌절되자 이상설선생은 망국의 의로운 나그네로 해외에서 만난을 겪으며, 민족 치욕의 한을 만회코자 원대한 포부를 품었으니~~~ [1] 남달리 나는 별에대하여 신비를 느낀다. 밤하늘을 수놓아 무수히 반짝이는 성군(星群) 가운데서도 육안으로 또렸이 보이는 남십자성은 더욱 고귀하고 신비를 느끼게 해준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보재 이상설(溥齋 李相卨)선생은 밤 하늘의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을 내는 이 남 십자성과도 같은 분이었다. 남 십자성을 어찌하여 보재선생으로 비견하는가? 그것은 대자연의 불가사의한 암흑속에서도 남십자성의 투명하고 휘황한 광체가 암흑속에 파묻혀 있는 수억..

이상설선생 순국 제95주기 추모식.

보재 이상설선생 순국 제95주기 추모식 2012년 4월 22일(일요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번지 숭렬사(崇烈祠)에서 1905년 조선의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을 역임하고, 1907년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어 세계열강에 일본의 을사늑약(乙巳條約) 부당성을 알리며, 국권회복 운동을 전개하였고, 1914년에는 이동녕(李東寧). 정재관(鄭在寬). 이동휘(李東輝) 등과 함께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를 수립 정통령(正統領)에 선임되어 잃어버린 조국의 광복운동을 전개하다 러시아의 연해주(沿海州) 우수리스크(宋皇嶺)에서 48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신지 95주년이 되는 추모식을 사단법인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의 주관(회장 이상근)으로 정부의 유관기관 단체장과 시민 150여명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