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평화회의 19

보재 이상설의 사상

보재 이상설의 사상 이재권/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교수[논문] Ⅰ. 시작하는 말 이상설(李相卨)은 이준열사와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세계각국의 외교관들에게 일본의 조선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고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호소했던 독립운동가의 한 분이다. 이것이 필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을 통해서 배운 이상설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상은 잘 모른다. 그가 충북출신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필자도 이상설에 대하여 여기까지 알고 있었다. 논문을 쓰기위해 공부를 하면서 이상설이 대단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상설에 대한 연구는 인하대학교사학과 명예교수인 제천출신 윤병석의 업적이 전부인 것 같다. 즉 윤병석의 저서..

이상설(李相卨)의 과거시권(科擧試券 - 답안지)

■ 지어지선론(止於至善論) ※이 글은 이상설이 과거시험 볼 때, 작성한 답안지(科擧試券) 중 하나로 『대학(大學)』의 「지어지선(止於至 善)」에 대한 논(論)이다. 이상설은 25세 때인 1894년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인 갑오문과(甲午文科)에 병과(丙 科)로 급제하였다. 그의 과거시권으로는 현재 과 등 2매가 전한다. 李相卨 아래와 같이 논한다. “하늘이 물(物)에 명(命)하는 조건은 반드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때문에 사람이 사물(事物)에 응하는 조건에도 역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어떤 사물이 있고, 그 법칙이 없는 것은 있지않으며 어떤 사물이 없는데 그 법칙이 있는 것도 있지않다. 지금 귀(耳)의 법칙은 소리가 있으면 듣는 것이 그(최선에) 그치는 것이며,..

보재 이상설선생 순국98주기 추모사진

보재 이상설선생 순국 98주기 추모행사 엄수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이재정이사장/경기도교육감) 주최와, 진천군유도회의 주관으로 2015년 4월 22일(수)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에 소재하는 이상설선생의 사당, 숭렬사에서 순국 98주기 추모행사가 제1부 제례, 제2부 기념식, 제3부 친교 및 오찬순으로 각 유관단체와 주민, 문중인사 200여명이 참석한가운데 엄수되었다. 이날 제례는 초헌관엔 김병우 충청북도교육감, 아헌관엔 김대훈청주보훈지청장, 종헌관엔 문중대표로 이상용 경주이씨 대전광역시화수회장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이상설 선생은 1870년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고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이위종 열사와 함께 국권 회복을 국제여론에 호소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10년 경술..

이상설선생기념관 진천생가 주변에 건립키로 '가닥’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진천군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인 보재 이상설선생의 숭모사업으로 추진하는 기념관을 생가 주변에 건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2015.03.11. ksw64@newsis.com 2015-03-11 이상설선생기념관 진천 생가 주변에 건립키로 '가닥’ 기사등록 일시 [2015-03-11 10:51:32] 옛 신덕초교에 공립 단설유치원 건립에 따라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진천군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인 보재 이상설(1870~1917) 선생의 숭모사업으로 추진하는 기념관을 생가(충북도 기념물 77호) 주변에 건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군은 생가 인근 옛 신덕초등학교 터를 기념관 후보지로 구상했으나 이곳에 진천교육지원청이 공립 단설유치원을 건립하기로 해 생가 ..

항일 독립운동의 아버지 이상설.

▲국립 서울현충원 무후선열재단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재단은 이상설, 이위종열사, 홍범도장군, 유관순열사 등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으나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찾을 길이 없는 순국선열 117위 및 정인보, 조소앙 등 6.25 당시 납북된 독립유공자 16위 등 총 133위의 순국열사의 위패를 봉안해두고 있다 이 재단은 1775년 8월 15일 광복 제3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후손이 없는 선열의 재단 건립위원회(대표 이은상) ’에서 묘소도 없고 후손도 끊어진 선열의 위폐를 안치하고자 국고보조를 받아서 건립하였다.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조 단층으로 가로 19.6m, 세로 4m, 높이 4.5m, 내부면적 85.14㎡이다 위패는 3층 계단에 모셔져있으며 중앙에는 선열을 추모하기 위한..

이상설(李相卨)의 생애와 활동사항

이상설(李相卨)의 생애와 활동사항 이범세(李範世)·여규형(呂圭亨)·이시영(李始榮)·이회영(李會榮) 등과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또 헐버트(Hulbert,H.B.)와도 친교를 맺어 영어·프랑스어 등을 익혔으며, 특히 수학·물리·화학·경제학·국제법 등을 공부하였다. 1894년(고종 31) 문과에 급제해 이이(李珥)를 조술(祖述: 스승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는 일)할 학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 뒤 비서감비서랑(祕書監祕書郎)에 임명되었다. 1896년 성균관교수 겸 관장·한성사범학교교관·탁지부재무관 등을 역임하고 궁내부특진관에 승진하였다. 1904년 6월 박승봉(朴勝鳳)과 연명으로 일본인의 전국 황무지개척권 요구의 침략성과 부당성을 폭로하는 「일인요구전국황무지개척권불가소 日人要求全國荒蕪地開拓權不可疏」를 올..

고종과 일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놓고 두뇌싸움/이덕일

고종과 일제,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놓고 두뇌싸움 이덕일 事思史 금대를 말하다. [제214호 ㅣ 20110416 입력] 고종 통치의 특징 중 하나가 이중성이다. 을사늑약 체결 주범에게 정권을 주는 한편 의병에게는 밀지를 내려 거병을 촉구했다. 하지만 각 지방의 진위대는 고종의 명령에 따라 의병을 진압했다. 고종은 표면적으로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순응하는 한편 헤이그엔 밀사를 보내 외교권을 되찾으려 했다. ↑이회영의 장남인 이규학(왼쪽)과 조남승(오른쪽). 고종의 조카인 조남승·조남익 형제는 고립된 고종과 바깥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망국의 몇 가지 풍경 ④ 헤이그 밀사 고종은 을사늑약 체결 당사자인 박제순을 승진시켜 내각을 맡겼지만 의병들에게는 밀지(密旨)를 내려 거병을 촉구했다. ‘밀지 정치’..

이상설선생 뉴욕항 입국 기록 발견

[뉴스데스크] 일제시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됐던 이상설. 이위종 선생 등이 1900년대 초 미국 뉴욕항에 입국했던 기록이 처음으로 발견됐습니다. 특히 안창호 선생의 1911년 입국 기록에는 한일합방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국적이 코리아로 돼 있는데, 이 기록들은 미국의 한 재단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이 찾아내 뉴욕 총영사관에 전달했습니다. (SBS)

이상설(1870~1917)선생의 을사늑약 무효투쟁 100주년 기념행사 개최

보재 이상설(1870~1917)선생의 을사늑약 무효투쟁 100주년 기념행사 개최 2005년 11월 18일은 독립운운동과 헤이그밀사로 활약한 조국 광복운동의 선구자 보재 이상설선생께서 을사늑약 무효투쟁 100주년이 되는 기념강연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하오니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래-- ◇일시 : 2005년 11월 18일(금요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2가 2-1번지 서울 역사박물관 강당(전 서울고등학교) TEL : 02)724-1114 ◇식순 : 국민의례 회장인사 : 이재정 민주평통수석부의장 축사 : 김국주 광복회장 이종찬 전국정원장/우당장학회 이사장 ◇강의 : 이상설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 국제법상 을사늑약의 허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