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투쟁의 원로 이상설선생. 글(1972. 01) : 광복회 회원 이용화 이상설(李相卨, 1870(고종 7)∼1917)선생은 당시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우리나라 독립기관의 최고 지도자였으므로 북경. 상해. 북간도. 미주등지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이곳으로 오면 으례 선생을 찾고, 국권회복을 위해 서로 흉금을 터놓고 의논하였다. 네델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참석하려던 밀사의 사명이 싪패로 끝나자, 이상설선생은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비참한 실정을 호소하고 국권(國權)을 회복하기 위해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때 이상설선생은 여러 나라에서 뜨거운 후대를 받았는데, 루우즈벨트 미국대통령은 사견례(私見禮)로써 면접을 하락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재미 한교(在美韓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