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고려사(高麗史) 16

고려말의 고승들 국정개혁 힘쓰다.

여말선초 고승들, 내부 자정…국정개혁 힘썼다. - 황인규교수 ■ 사극 ‘정도전’으로 본 여말선초 불교(上) 격동기 불교계의 동향 여말선초 격동기 불교계는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퇴락해 자연히 불교에서 유교로 교체된 줄 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전국의 주요 스님들은 자정과 혁신을 위해 온 몸을 바쳤을 뿐 아니라 정도전, 권근 등 신왕조 창업 핵심인물과 교류하며 조선왕조 창업에도 참여했다. 최근 사극 ‘정도전’의 인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당시 불교계의 전반적인 상황과 정치인들과의 관계, 고승들의 자정 노력 등을 주제로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고려에서 조선의 왕조 교체기에 불교의 자리를 유교가 차지하게 된 것을 자연스러운 역사흐름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불..

고려시대의 수학

고려시대의 수학 수학의 발전에 대해 고대문명의 뿌리까지 추적하는 연구. 고려시대 수학의 성격을 살펴보면 먼저 신라 산학제도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것과 수학의 중요성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초기에는 국자감에 소속시켜 학문적인 성격을 인정했으나 중기 이후에는 잡과(雜科) 중의 하나로 격하시켰다. 또한 극히 제한된 특수신분층에서 세습적으로 수학을 다루었기 때문에 이것은 수학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말기에는 중국으로부터 〈상명산법 詳明算法〉·〈산학계몽 算學啓蒙〉 등 많은 산서를 도입하여 조선수학 발전의 기반을 닦았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과거시험에 산학과 관련된 명산과가 실시되었다. 고려의 명산과는 그 내용이 당·송의 것과는 달리 신라의 산학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

태조 이성계는 여진족임을 확인하는 글---朝鮮(Joseon)

고려사절요[원문] 공민왕 4년 12월(1355년) ○我桓祖, 以雙城等處千戶, 來見, 王曰, 乃祖乃父, 身雖在外, 乃心王室, 我祖考, 實寵嘉之, 今卿無忝祖考, 予 將玉汝於成, 雙城, 地頗沃饒, 東南民無恒產者, 多歸焉, 本國聞于中書省, 奉聖旨差官來,遼陽省, 亦差官來, 王, 遣省郞中李壽山, 往會, 分新舊籍民, 謂之三省照勘戶計, 其後撫綏失宜, 稍稍流徒, 命桓祖主之, 民由是 得安其業。 -------------------------------------------------------------------------------------------------------------------------------------- [국역] 고려사절요 공민왕 4년 12월 (1355년) ○우리 환조(桓祖 이자춘)가 쌍성(雙城..

공민왕 16년(1367) 정미년 - 고려사

고려사 공민왕 16년(1367) 丁未 ●봄 정월 [정해일] 원나라에서 전 요양이문(遼陽理問) 쿠두테무르[忽都帖木兒]를 보내 영릉(永陵 : 충혜왕)에게는 터성선 충숭인병덕 협공인량공신(攄城宣忠崇仁秉德協恭寅亮功臣)의 칭호와 충혜(忠惠)라는 시호를, 명릉(明陵 : 충목왕)에게는 협성보리연덕선혜봉화보경공신(協誠輔理演德宣惠奉化保慶功臣)의 칭호와 충목(忠穆)이라는 시호를, 총릉(聰陵 : 충정왕)에는 수성이정좌리익순보의적경공신(守誠履正佐理翊順保義迪慶功臣)의 칭호와 충정(忠定)이라는 시호를 각각 추서했다. 충숙왕의 왕비 바얀쿠둑공주[伯顔忽都公主]1)에게는 숙공휘녕공주(肅恭徽寧公主), 공민왕의 왕비 부다시리[寶塔實里公主]에게는 노국휘익대장공주(魯國徽翼大長公主)라는 칭호를 내렸으며 충혜왕비인 이린지발공주[亦憐眞班公主]2)..

고려 충선왕이 티벳으로 유배간 이유는?

1. 700년전.... 충선왕은 티벳으로.... 만 오천리의 유배길을 갔다. 고려 26대왕인 충선왕! 마흔 여섯이 되던 1320년, 예기치 못한 운명을 맞게 된다. 한 나라의 국왕인 그에게 유배 명령이 떨어진다. 충선왕의 유배지는 당시의 토번으로, 지금의 티벳! 그곳에 도착하는데만도 반 년이 걸리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럼 고려 충선왕이 티벳까지 유배를 간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 26대 충선왕! 공민왕이나 혹은 조선 시대 여러 왕들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죠. 그런데 그는 우리 역사상 그 어느 왕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왕입니다. 먼 이국 티베트까지 유배를 갔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티벳이라면 여기, 아시아 서쪽 끝이죠. 지도상으..

삼국유사 발문(跋文) - 慶州府尹 李繼福

이계복(李繼福)의 삼국유사 발문(跋文) 우리 동방 삼국(三國)의 본사(本史)나 유사(遺事) 두 책이 딴 곳에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본부(本府)에만 있었다. 세월이 오래 되매 완결(완缺)되어 한 줄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겨우 4, 5 자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건대, 선비가 이 세상에 나서 여러 역사책을 두루 보고 천하의 치란(治亂)과 흥망(興亡), 그리고 모든 이상한 사적에 대해서 오히려 그 견식을 넓히려 하는 것인데, 하물며 이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일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에 이 책을 다시 간행하려 하여 완본(完本)을 널리 구하기를 몇 해가 되어도 이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일찍이 이 책이 세상에 드물게 유포되어 사람들이 쉽게 얻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지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