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개립 - 국당공후 제정공파

야촌(1) 2006. 1. 17. 16:54

■ 이개립(李介立)

   [생졸년] 1546년(명종 1) ~ 1625년(인조 3) 

   [생원진사시] 선조(宣祖) 1년(156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31위
   [세계]22世 국당공후 제정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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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의 성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자(字)는 대중(大中). 호(號)는 성오당(省吾堂). 또는 역봉(櫟峯)으로 어모장군(禦侮將軍), 해(瀣)의 아들.  영천(오늘날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에서 태어났고 제정공 달충(霽亭公 達衷)의 팔대손(八代孫) 이다.

 

세한제(歲寒齋) 김성일(金成一)의 문인(文人)으로 1567년(선조 즉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고 1586년(선조19)엔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참봉(參奉)에 임명 되었으나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퇴 하였고, 1591년(선조24) 장현광(張顯光)과 함께 유일(遺逸)로 천거되여, 다시 참봉(參奉)이 되었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어켜 활약하고 특히 부족한 군량 조달에 공이 컸다.

 

이러한 공로로 수령(首令)을 역임할 인재 30명을 천거할시 공(公)도 포함되어 1594년(선조27)에 자여찰방(自如察訪)에 임명되고 다음해 낭천현감((狼川縣監)에 임명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다시 1596년(선조24) 산은현감(山隱縣監)에 임명되고, 다음해인 정유재란(丁酉再亂)때 당시 체찰사 종사관(體察使 從使官)인 황여일(黃汝一)의 천거로 향병대장(鄕兵大將)이 되었으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인 김경서(金景瑞)가 병사들을 자기(自己)휘하에 속하게 하지 않은데 사감을 품고 무고하자, 고향에 돌아와 오직 후학 양성에만 전진하였다. 

 

조경(趙絅)이 찬(撰)한 묘갈명이 있고 의산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성오당 문집(成吾堂 文集)이 있다. 산소는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 석종산(石 宗山), 자좌(子坐)다. 

 

17세---18세---19세----20세----21세---22세-- 23세--24세---25세---26세

천         달충     수           흥적       의         숙정       욱      선동       해        개립

蒨        達衷   (立+需)  興啇      ○         肅靖      昱     善童       瀣        介立

 

[자료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이개립의 세계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송정현(宋正炫),저    

 


집필 : 야촌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