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보재이상설선생.

을사늑약 상소문(乙巳勒約上疏文)

야촌(1) 2023. 1. 3. 21:48

작성일 : 2014. 01. 21.  18;30

 

■ 을사늑약 상소문(乙巳勒約上疏文)

    이상설(李相卨). 이근명(李根命). 이유승(李裕承). 박제빈(朴齊斌). 정홍석(鄭鴻錫). 정명섭(丁明燮)의 상소.

 

 1905년 11월 17일 특명전권공사(特命全權公使) 하야시 곤노스께가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불법 늑결하였다. 을사늑약문(乙巳勒約文)은 일본국 정부(日本國 政府)와 한국 정부(韓國 政府)는 두 제국(帝國)을 결합하는 이해공통주의(利害共通主義)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국이 실지로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때까지 이 목적으로 아래에 열거한 조관(條款)을 약정한다. 

 

제1조 일본국 정부는 동경(東京)에 있는 외무성(外務省)을 통하여 금후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

            (監理 指揮)할 수 있고 본국의 외교 대표자와 영사(領事)는 외국에 있는 한국의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하는 책임을 지며 한국 정부는 이후부터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을 기약한다.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서 1명의 통감(統監)을 두되 통감은 한국의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하여

           한성(漢城)에 주재하면직접 한국 황제 폐하를 궁중에 알현하는 권리를 가진다. 일본국 정부는 또 한국의

           각 개항장과 기타 일본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곳에 이사관(理事官)을 두는 권리를 가지되 이사관

          은 통감의 지휘 밑에 종래의 재한국 일본 영사(在韓國 日本 領事)에게 속하던 일체 직권(職權)을 집행하고

          아울러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체 사무를 장리(掌理)할 수 있다.

 

제4조 일본국과 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의 조관에 저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그 효력이 계

            속되는 것으로 한다.

 

제5조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함을 보증한다.이상의 증거로써 아래의 사람들은 각기 자기 나

            라 정부에서 상당(相當)위임을 받아 본 협약에 기명(記名) 조인(調印)한다.(이토 히로부미 대사가 군사

            령관(軍司令官) 하세가와와 헌병 사령관(憲兵司令官)과 군사령부 부관(軍司令部 副官)이 함께 을사늑약

           조인을 강요하였고 대한제국 조약 체결 비준권자 고조 광무제가 비준하지 않았다.)

 

1905년 11월 24일 태의원 도제조(太醫院 都提調) 이근명李根命,1840년(헌종 6)~1916년)/본관 全義』이 아뢰기를, “500년 동안 강토와 4천리의 백성들을 이런 무리들의 손에 맡겨 외국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었으니 천하 만고에 없었던 일대 사변입니다.

 

상소문은 날이 갈수록 쌓이고 사람들이 울분을 토하며 누구나 얼굴을 피로 물들이며 눈물을 삼키면서 저 하늘을 같이 이고 살려고 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매국 역적들은 나라의 법에서 반드시 처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벌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중임을 맡기니 더 줌으로써 충성과 반역의 구분 없어지고 의리가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빨리 처분을 내려 전형(典刑)을 명백하게 처리하여 귀신과 사람들의 울분을 씻으며 조정의 신하들 중에서 다시 어질고 재주 있는 사람을 선발 임용하여 그로 하여금 늑결한 약관(約款)을 사리에 근거해서 반드시 철회하게 하소서.”하였다.

 

의정부 참찬(議政府 參贊) 이상설(李相卨)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의 생각에는 이 번에 늑결된 을사늑약은 강요에 의해서 맺어진 것이니 이치상 무효로 되어야 마땅하고 회의에서 동의한 여러 흉역들은 나라의 역적이니 법에서 용서할 수 없는데도 지금까지도 성토하는 소리가 잠잠하여 수일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폐하가 무효를 극력 주장하고 준절히 따지고 엄하게 물리쳐야 하는데 역시 주벌을 단행하여 빨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였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도리어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 두목을 의정대신의 대리로 임용하여 신으로 하여금 그의 아래 반열에 애써 나가도록 하니, 신은 울분의 피가 가슴에 가득 차고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넘쳐흘러 정말 당장 죽어버려 모든 것을 잊어버렸으면 합니다.

 

폐하가 만약 역적을 비호한다면 무엇이 아까워서 신을 그냥 두며, 또 신을 그냥 둔다면 무엇이 두려워 역적을 등용합니까?

아! 장차 황실이 쇠해지고 태묘(太廟)가 무너질 것이며 조종조(祖宗朝)의 유민(遺民)들이 서로 이끌고 들어가 남의 신하와 종으로 되어버릴 것입니다.

 

신도 사람입니다. 어찌 치욕을 머금고 수치를 참으며 천연스럽게 다시 더러운 역적들과 함께 한 관청에 드나들 수 있겠습니까?

신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고 신의 말도 이미 다하였습니다. 이후로 열번 상소문을 올려서라도 벼슬에서 반드시 교체되기를 힘써서 삼가 엄한 처단을 기다릴 뿐이니 폐하는 특별히 가엾게 여겨주기 바랍니다.”

 

11월 25일 종1품 이유승(李裕承)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지금 일본과의 을사늑약에 대한 말을 듣고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려서 자리에 누워 눈물만 흘리는데, 죽은 곳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다행히도 을사늑약이 폐하의 재가를 거치지 않았고 여러 신하들의 상소가 연속 올라와 쌓여 아마도 폐하의 뜻이 확고해지고 분연히 결단하여 이미 가버린 천명을 도로 맞게 되고 망해가던 나라의 형세가 회복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외부 대신(外部大臣) 박제순(朴齊純)을 의정 대신 대리로 임용하였습니다.

 

아! 저 박제순으로 말하면 얼이 빠져서 충성과 반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을 달게 여기며 저들의 첫 앞잡이로 된 자인데 마치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표창이나 하는 것처럼 지금 외부의 사무를 그냥 보게 하고 정사의 으뜸이 되는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일 늑결에서 ‘가(可)’라고 쓴 역적들도 장차 높은 벼슬에 등용될 것이니 영영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거듭 큰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폐하는 태묘(太廟)와 사직(社稷)을 이 무리들의 독살스러운 손에 떠맡겨 제멋대로 끊어버리도록 하는 것을 어찌 차마 할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폐하는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 ‘가(可)’ 자를 쓴 역적들을 나라의 법으로 다스리고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을 다시 선발하여 준엄한 말로 조약을 물리친다면 나라의 권위가 보존되고 나라의 법이 시행될 것입니다.”

 

종2품 박제빈(朴齊斌)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아! 통분스럽습니다. 이 번 다섯 가지 약관(約款)이 일본 공사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만 실상은 늑결한 역적들이 처음에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바쳐 그들의 주구가 되고 마지막에는 우리 백성들을 몰아다가 그들의 신하로 만든 것입니다.

 

천하에는 물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기는 했지만 어찌 한밤중에 갑자기 한 방에서 입술과 혀끝으로 나라를 떠넘겨준 이런 간사한 아첨꾼들이야 있었겠습니까? 이런 역적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국가의 대사(大事)는 전부터 시임, 원임 대신과 재야에 있는 훌륭한 선비, 시골의 사서(士庶)들까지 모두 좋다고 하지 않으면 임금의 위엄을 가지고도 오히려 진정시킬 수 없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대체로 천하의 큰일에 대해서는 천하 사람들의 공론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충신 악비(岳飛)를 모함해 처형한 남송의 재상 진회(秦檜)가 금(金) 나라와 화친을 하는 데서도 시비를 가르고 대간들과 시종신까지도 다같이 의논을 하게 하였는데 지금 이 흉악한 무리들은 무슨 큰 담력이 있어서 감히 오늘날 시국은 전날과 다르다고 말하면서 압박하며 억제하면서 일을 성사시키는 것입니까?

 

그리고 일본인들로 말하면 동서양(東西洋)에서 각기 한 개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이런 때에 직면하여 세 나라가 연합해도 오히려 그것을 지탱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해야 할 형편인데도 대세가 어떠한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만 욕심나는 자그마한 이득을 탐내어 전날의 맹약을 저버리고 감히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떳떳한 성품을 갖춘 세상 사람들치고 누군들 침을 뱉으며 함께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에는 아직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아오는 2천만의 인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불평불만으로 답답해하는 복수심을 품고 있으니 결국은  초(楚)가 멸국의 위기에 놓이자 진(秦)으로 달려가 구원병을 요청한 신포서(申包胥)같은 수많은 사람이 나오리라는 것은 마치 불을 보듯 명백합니다.

 

이 것은 저들이 우리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것이니 그들 자신을 위한 도모에서도 크게 개탄할 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의리를 가지고, 늑결한 역적들을 처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민영기(閔泳綺), 이하영(李夏榮)으로 말하면 역시 평소에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들로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는 솜씨가 있었습니다.

 

이번 그 자리에서 을사늑약문을 찢어버리고 공사를 규탄하는 것으로 말하면 도리가 아니라고 걱정할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일찍이 준엄한 말로 굳게 거절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부(不)’ 자를 씀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엄한 눈을 가려보려고 하였지만 화응(和應)을 비밀리에 모의하여 결국 똑같이 귀착된 것입니다.

 

아! 참혹합니다. 이들도 그들과 같은 죄를 모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참정이 적임자가 못되면 또 다시 일을 그르칠 것 같으니 바라건대 공명정대하고 강단 있는 사람을 다시 선발해서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 같습니다.”

 

비서감 낭(祕書監 郞) 정홍석(鄭鴻錫)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옛날 춘추 시대 말기 초(楚)나라 사람 백비(伯嚭)가 오(吳) 나라를 팔아먹고 주전론(主戰論)을 펴는 충신 악비(岳飛)를 모함해 처형한 남송의 재상 진회(秦檜)가 송(宋)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몇 년 동안이나 머뭇거렸고 많은 시일에 걸쳐 짜고 들었습니다.

 

지금 하루 저녁에 ‘가(可)’자 한 글자를 써서 막중한 한 나라를 떠넘겨준 이런 간사한 역적으로 말하면 백비를 능가하고 진회를 뛰어넘은 자들이니 빨리 여러 역적들의 죄를 다스려서 나라의 법을 바로 잡으소서.”

 

법관 양성소 교관(法官養成所 敎官) 정명섭(丁明燮) 등이 상소하여 “을사늑약 늑결에 찬동한 여러 신하들을 법부에 넘겨서 국법을 바로잡고 늑약문을 철회하고 온 나라에 선포함으로써 그 것이 무효임을 보이소서.”  <이하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