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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야촌(1) 2022. 12. 25. 12:49

작성일 : 2022. 5. 28.  13:00

 

▲미국 제33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 모습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미국의 역사가들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라고 후한 점수를 준다. 트루먼은 1884년 조그마한 미주리주의 조그마한 도시의 한 가난한 소작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세기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정치인으로 부각이 되자 사람들은 ‘미주리 촌뜨기’라 불리기도 했다.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됐다. 그러다가 부통령이 된지 단지 82일째, 루스벨트가 뇌출혈로 세상을 뜨면서 '어부지리'(漁父之利)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급서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그에겐 숨 막힌 결단의 연속이었다. 특히 6․25전쟁 참전이라는 결정으로 지지율은 20%대로 뚝 떨어져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당시에는 꼽혔다. 그러나 퇴임 후 그의 위상은 대대적인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지도자로 재평가됐다.

 

지금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유능한 대통령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오벌오피스(Oval Office)-대통령 집무실로 책상 위에 ‘The buck stops here!’란 말이 쓰인 패가 놓여있었다.

 

직역하자니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 곧,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반대로 'Pass the buck'이라는 말은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하고, 또 전가한다'라는 말이다. 실제로 트루먼은 결정을 망설이는 각료들이 있으면 그 패를 가리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자신을 가지고 추진하라”라고 격려했다 한다.

 

1945년 8월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를 명령했다. 14만여 명이 숨졌다. 7만 명이 즉사했고 그 해가 저물기 전에 7만여 명이 더 사망했다. 6만 2,000여 채의 가옥이 파괴됐으며 35만여 명이 방사선에 피폭됐다. 끝까지 버티던 일본은 결국 항복했고 태평양전쟁도 끝났다.

 

‘원폭(原爆) 투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힘든 결정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불과 83일 만이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좌우명 아래 수많은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트루먼은 ‘The buck stops here!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좌우명을 가슴에 새기며 하나씩 고독한 결정을 내려 나갔다. 국민들로부터 인기가 없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1947년에는 소련의 압박에 맞서 그리스․터키 지원을 천명한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선언하며 유럽 부흥을 위한 ‘마셜 플랜’을 가동시켰다. 1948년 대통령에 재선된 이듬해 유럽 10개국을 묶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창설했다.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그의 좌우명은 키 170㎝ 남짓한 ‘리틀 맨’을,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리틀 빅맨(작은 거인)’으로 또 '미주리 촌뜨기'에 불과했던 그를 루스벨트와 링컨 들과 함께 일약 명예의 전당의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벅(buck)’이란 단어가 ‘책임’이라는 뜻을 갖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호이트 벅이라는 이름의 대장장이가 칼날이 날카로우면서도 오래가는 주머니칼을 만들었다. 그는 1902년 칼끝이 살짝 치올라간 모양의 이 칼을 ‘벅 나이프’란 상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 이 칼이 그때 이미 인기가 있었나 보다. 과거 서부의 술집에서 도박꾼들이 포커할 때 이 칼을 썼다. 참여자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카드를 섞고 패를 나눠주는데, 그 역할을 하는 딜러 앞에 이 칼을 놓았다.

 

패를 잘못 돌려 게임을 망칠 때 딜러가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였다. 실제로 트루먼은 결정을 망설이는 각료들이 있으면 그 패를 가리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자신을 가지고 추진하라”라고 격려했다 한다.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