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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리(徐貞履)가 소장한 화첩(畫帖)의 서문

야촌(1) 2022. 1. 4. 23:51

■ 동명 정두경(東溟 鄭斗卿)

 

사군(使君) 서정리(徐貞履)는 나의 죽마고우이다. 나에게 화첩(畫帖)과 화첩을 서술한 시문 하나를 보여 주었는데, 그림은 화사(畫師)인 허주(虛舟) 이징(李澄)이 그린 것이고, 시문은 현주(玄洲) 이소한(李昭漢)과 동회(東淮) 신익성(申翊聖) 두 도위(都尉)와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과 택당(澤堂) 이식(李植) 두 상서(尙書)가 지은 것이었다.

 

시문과 그림이 모두 한 시대에 절묘하여 그 그림을 마주하고 그 작품을 읽으면, 진토에 찌든 흉금을 씻어 내고 창주(滄洲)의 아취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다만 백주와 동회는 이미 고인(古人)이 되어 버렸기에 작품을 펼쳐서 완상한 끝에 나도 모르게 창연한 마음이 들었다.

 

서정리가 나에게 뒤를 이어 화답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나는 스스로 서정리를 통하여 절묘한 시와 그림을 보고 진토에 찌든 흉금을 씻어 내고 창주의 아취를 일으킬 수 있는 점을 다행으로 여겼으며, 또한 제공들의 아래에 이름을 나란히 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또 중국 하남(河南)의 산양(山陽)에서 옛일에 대해 느꺼운 마음이 들었다. 이에 드디어 절구(絶句) 10수를 지어 화답하고 다시 서문을 지었다. 1647년(인조 25) 1월에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