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 10. 19(일)
■ 안동 도산서원(安東 陶山書院)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연산군 7)~1570년(선조 3)』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
여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토계리 680)에 세운 서원을 말한다.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에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고.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1969년~1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尙德祠:보물 제211호)와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과 향례(享禮) 때 제수(祭需)를 두던 전사청(典祠廳)과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장서(藏書)를 보관하던 광명실(光明室)·장판각(藏板閣), 또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농운정사(隴雲精舍) 등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낸다. 1969년에 경상북도 사적 제170호로 지정 되었다.
▲도산서원 배치도
▲도산서원의 정문인 진도문(進道門)이다.
도산서원의 전교당(典敎堂)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도(道)를 닦기 위하여 들어가는 문이다.
▲전교당(典敎堂) /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모여 학문을 강론하
던 대강당
▲1575년(선조 7) 한석봉(韓石鳳)이 쓴 도산서원 편액
▲전교당 강당과 퇴계가 거처 하던 방
▲동제(東霽)
전교당 앞동쪽에 있는 건물로 어린 유생들이 거처하던 건물로 박약제(博約齊)가 있고
동제 맞은편에는 나이가든 유생들이 거처하던 홍의제(弘懿霽)가 있다.
▲광명실(光明室)
책을 보관하는 서고(書庫)로서 동.서 두곳으로 나뉘어저 있으며 습해(濕害)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으로 지었다고 한다.
▲장판각(臟板閣)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선조어필,퇴계선생 문집, 언행록등이
보관 되었다가 2003년 5월에 국학진흥원으로 이관 되었다.
▲상덕사 (尙德詞) 삼문
퇴계 선생의 위패와 제자 인조목(趙穆)의 위패가 함께 모셔저있고 매년 봄.가을(음 2월.
8월 中丁일)에 향사(享祀)를 지낸다는 상덕사의 삼문이다.
▲농운정사(隴雲精舍)
퇴계 선생이 지은 건물로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서 공부에 열중 하기를 권장하는 뜻
에서 "工"자 모양으로 지어서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觀瀾軒)이라하였다.
▲농운정사(隴雲精舍)의 동편 마루
동편 마루를 시습제(時習齊)라고 하는 현판이 있다.
▲역락서제(亦樂書齊)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때 제자 정사성(鄭士誠 :芝軒/號)을 비롯한 뜻
있는 제자들이 힘을합쳐 건립하였다고 한다.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라 한다.
▲도산서당 정문(삽작문)
도산서당에 들어가는 정문이다. 아마도 1969년도에 사적으로지정 정비되면서 원래대로
존치키로 했나보다. 정겨워 보인다.
▲도산서당(陶山書堂)
퇴계선생께서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란다
거처 하시던 방은 완락제(玩樂齊)라 이름하고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는 현판이다.
▲몽천(蒙泉)
도산서당 입구에 있는 우물이다. 제자들의 어리석고 몽매한 심성을 깨우처서 한방울의 샘
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라는 교훈을 주는샘이라고
한다.
▲정우당(淨友塘)
도산서당 마당에 있는 정우당의 교훈은 진흙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연을 꽃
중의 군자라하여 퇴계선생께서 좋아 하셨다고 전한다.
▲소슬대문
서원과 서당내의 모든 대문이 좁고 낮음은 왕래하는 모든 분들이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
여 경건한 마음을 갖이라는 퇴계 선생의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사단(詩士壇)
서원입구 낙동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2년(정조 16)에 정조 임금님이 평소에 흠모하
던 퇴계선생의 학덕을기리고 지방선비들의 사기를 높여 주기위하여 어명으로 특별과거
인 "도산별과(陶山別科)"를 보인 장소랍니다. 당시 응시자가 칠천여명 이였고 임금이 직
접11명을 뽑아 시상 하였다네요.
▲서원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의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물이 더욱 푸르고 도도 하게 느껴
집니다 .
[출처] 도산서원(陶山書院) 답사(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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