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석곡심서(石谷心書)

야촌(1) 2021. 4. 11. 11:58

[도서내용]

 

大正 11年(1922) 李圭晙 家에서 연활자본으로 발행한 조선말기의 혁신적 유학자이자 대사상가이며 名醫였던 石谷 李奎晙 선생의 문집 석곡심서(石谷心書) 單冊이다.
<크기> 14.8(가로) × 21.8cm(세로)이다.

 

[참고]

 

석곡 이규준『石谷 李奎晙,1855년(철종 6)~1923년』


子는 叔玄 號는 石谷 慶北 月城人으로 哲宗 乙卯(서기 1855년) 慶北 迎日郡 夫山面(오늘날 東海面) 林谷里에서 誕生하셨고, 後에 石洞에 移居하여 石谷이라 自號하고, 癸亥(1923년)에 卒하니 享年 六九才였다.

 

家事가 極貧으로 樵勞辛務하여 學習을 연마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여서는 큰 뜻을 품고 스승 없이 독학으로 학문에 몰두하여 유학(13경)을 연구하여 심오한 경지에 달하였다.

 

조선말기의 혁신적 유학자이자 대사상가 석곡은 송나라의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육경주소(六經注)에 의문을 가지고 연구하여 30세부터 육경을 바로잡아 육경26책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경서나 제자백가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심오한 연구로 이치를 깨달아 경수3편(大學,中庸,禮運), 예전, 논어, 효경, 당송고시, 후천자를 정리하였다. 수학과 서양역법을 논한 구장요결과 포상기문을 저술하였고 문집으로 석곡심서(石谷心書)와 석곡산고(石谷散稿)를 남겼다.

 

석곡은 하늘과 인간의 참된 이치에 입각하여 주자학을 비판하고,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상으로 많은 경서를 바로잡았다. 석곡의 경서에 대한 정리는 주자 등의 주석을 바로잡는 것이어서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작업이었다.

 

석곡의 이러한 자유분방한 사상은 주자학을 신봉하는 영남유림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고,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리어 제자도 양성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석곡의 위대한 업적은 당대 유학자들의 견제 때문에 오늘날에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석곡은 성품이 정의롭고 강직하였고 재물에 관심이 적어 가난하게 일생을 보냈고 시세에 편승하지 않는 곧은 기상을 가지고 뜻과 실행이 일치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유학자들의 병폐라 할 수 있는 권위적인 허례와 허세를 극히 싫어하고, 있는 그대로의 참된 것을 장려하였는데, 이런 모습은 석곡이 제자들에게 적어준 말에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