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필성(朴弼成)
[자(字)] 자는 사홍(士弘),
[호(號) 설송재(雪松齋).
[생년] 1652년(효종 3)
[졸년] 1747년(연조 23) 壽96歲
[본관] 반남(潘南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아버지] 도정(都正) 박태장(朴泰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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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사은사, 주청사, 영릉도위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사홍(士弘), 호는 설송재(雪松齋). 아버지는 도정(都正) 박태장(朴泰長)이다.
공(公)은 효종의 사위로 1662년(현종 3)에 효종의 딸 숙녕옹주(淑寧翁主/어머니는 安嬪 慶州李氏 )와 혼인하여 금평위(錦平尉)에 봉해졌으나, 1668년에 숙녕옹주는 두환(痘患-天然痘)으로 죽었다. 설하에 딸 하나를 두었다.
숙종 때에는 1685년부터 1717년까지 네 차례나 사은사 또는 주청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영조 때에는 박필성의 장수(長壽)를 치하하여 1738년(영조 14)에 시(詩)를 내리고, 1741년에는 오언시와 궤장(几杖)을 내렸으며, 1746년에는 우대하여 영릉도위(寧陵都尉)에 봉했다.
공(公)은 학문이 출충하였는데, 영조의 명으로 1725년(영조 즉위)에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淑嬪崔氏)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지었고 합천수령으로 재직시엔 합천 화양동 병사기(陜川華陽洞丙舍記)를 지었다.
1747년 7월에 96세의 나이로 죽자 8월에 효행을 치하해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참고문헌]
◇현종실록(顯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
[집필자(1996년)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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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평위(錦平尉) 박필성(朴弼成)의 묘소에 치제한 글
조선국 제22대 정조대왕
효종(孝宗)의 의빈으로서 / 寧廟儀賓
성대한 명문이었으니 / 藹厥名門
누가 반남 박씨만 했으랴 / 孰如潘南
온화하게 정성스러운 자품이었네 / 肫肫其溫
좋은 시절의 금련이고 / 淸時禁臠
심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지냈으니 / 沁水芳園
또한 동평위(東平尉)가 있어 / 亦惟東平
훈지가 화답하는 즐거움이 있었네 / 如篪如塤
아흔 살의 높은 수를 누리고 / 九耋卲齡
네 임금에 걸쳐 특별한 은혜를 입었으니 / 四朝殊恩
참으로 이렇게 큰 복은 / 展也遐福
더불어 견줄 이가 없다네 / 曾莫與軒
선침의 동쪽에 / 仙寢之東
이 유택이 있는 언덕이 보이는데 / 睠玆幽原
나의 행차가 이르러 제사를 드리게 하니 / 蹕路致侑
나의 존속이로다. / 曰我屬尊
전후로 영광스러운 잔을 드리니 / 前後榮酹
나의 말을 들어주길 바라네 / 儻聽斯言
[주01]의빈(儀賓) : 임금의 사위인 부마(駙馬)를 이르는 말이다.
[주02]동평위(東平尉) : 효종의 딸인 숙정공주(淑靜公主)와 혼인한 정재륜(鄭載崙)의 봉호로, 박필성(朴弼成)과 동서지간
이다.
[주03]훈지(塤篪) : 질나발과 저라는 악기를 말하는데, 형제가 서로 화목한 것을 비유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백씨가 질나발을 불면 중씨는 저를 분다.
《백씨취훈 중씨취지(伯氏吹塤 仲氏吹篪)》”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출처 : 홍제전서 제22권>제문(祭文)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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