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고사(上古史)

<고구리>의 3도성과 평양의 위치 찾기

야촌(1) 2020. 4. 4. 17:13

2008-06-21 16:33:20, Hit : 4210, Vote : 82)

<고구리>3도성과 평양의 위치 찾기

 

김성경

 

고구리의 2세 유리 명제의 무덤이 작금 북경의 서남 유리하진 근처임과 시조 추모 대제와 3세 대 무신제의 무덤 역시 작금 북경의 근처임을 전제로 해놓고 비류 곡/졸본 서성산인 초도=동도와 북경 자금성 지근이었을 서도=서경과 이 서도에서 서진하기 위해 만든 북도의 위치를 아래에 옮겨 놓은 고구리 사초/사략의 기록을 근거하여 찾아보시면 어떠하실른지요?


소위 보장왕의 평양과 장수왕의 평양이 다르지 않았다면, <고구리>의 망도 평양성은 어디였을까요?
영락 대제[국강상 광개토 평안 호태왕]와 장수 대제[장수왕]및 몇몇의 귀골들이 黃山에 묻혔다는 기록이 있는 바, 그곳은 또 어디쯤일까요? 지금의 압록강 변 무덤 촌에 묻혔을까요?


그리고 영락 대제와 장수 대제 시절의 최대 역사 강역은 어디까지 였을까요?
함께 힘써 보아주시길 앙청합니다...저 나름대로 찾은 실마리들을 붙여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조 추모대제>

辛巳, , 與四豪(烏伊摩離陜父芬奴)南來, 乘玄武(方丈大龜), 而至<普述>. 與三賢(再思武骨黙居), <><>以開<順奴>.


신사(단기2294/BC40), 여름, 호걸 네 명(오이마리협보분노)과 함께 남쪽으로 와서 현무(玄武 : 방장대구)를 타고 <보술(普述)>수에 이르렀다. 현자 세 명(재사무골묵거)과 함께 <()>족을 축출하고 <()>족을 쫓아내어 <순노(順奴 : 혹시 順義縣印以南?)>를 열었다.



<東明>元年甲申(二二九七), 二月...<卒本>之民推上爲皇帝, 卽位於<沸流谷><西城山>.  國號<高句麗>,

     建元曰<東明>.
<동명>원년(단기2297/BC37) 갑신, 2...<졸본>사람들이 상을 받들어 황제로 모시니, <비류곡(沸流谷)>

     <서성(西城)즉위하였다.



十年癸巳: 二月, 營『西 都』<鴨水>, 以質朴爲主. 九月, 白鸞來集『 西都『 王臺, 故名之曰<鸞臺

       >. , <> 皇后.


10(단기2306/BC28) 계사, 2, <압수(鴨水)>에 『 서도(西都)를 세웠으며, 질박하게[꾸밈없이 수수하

     게] 지었다.  9, 흰 란새 들이 날아와 서도』의 왕대(王臺)에 모여들었기에, <란대(鸞臺)>라 이름 하였

     다. 상과 <()>황후가 이곳에 기거하였다.



十九年壬寅, 正月, <類利>爲東宮.  二月, <>氏生<>太子.  四月, , 崩於西 都』, 東宮卽位.

     記曰: , 不樂居位, 傳釼璽于東宮.  , 乘龍上天, 遺棄玉鞭処爲<龍山陵>.”

 


19(단기2315/BC19) 임인, 정월, <유리(類利)>를 동궁으로 삼았다.  2, <()>씨가 <()>태자를 낳

      았다.  4, 상이 서도: 현 금북경주변에서 죽고, 동궁이 즉위하였다선기(仙記)상은 보위에 있는

      것이 즐겁지 않아 동궁에게 인과 옥새를 넘겨주었고, 9월에 룡을 타고 상천하였으며, 옥 채찍을 버려 둔 곳이

      <룡산릉(龍山陵)>이 되었다.”라 쓰여있다.

 



<2세 광명대제>

元年壬寅, 九月, 葬先帝于<龍山>, 以遺命禁殉.
원년(단기2315/BC19) 임인, 9, 선제를 <룡산(龍山)>에 장사하고, 선제의 유명으로 순사(殉死)를 금했다.

 

二十二年癸亥, 十月, 移居<尉那岩>, 是爲北都.  作新宮於 <銀川岺>.
22(단기2336/AD3) 계해, 10,  <위나암(尉那岩)>으로 이거하니, 이곳이 북도(北都)이다.  

 

   <은천령(銀川岺)> 아래에 새 궁전을 지었다.

四十七年戊子, 八月, 太后崩, 春秋八十五. 葬於<豆谷>東原. 十月, , 與皇后, 崩于 <豆谷> 離宮. 上春秋

     六十八, 皇后八十. 皆葬于太后陵內東宮卽位於<豆谷>離宮.


47(단기2361/AD28) 무자, 8,  <예태후>가 춘추 85세에 죽어,  <두곡(豆谷=콩밭골)> 동쪽 언덕에 장사

     했다.  10, 상과 소황후가 <두곡> 별궁에서 죽었다. 상은 춘추 예순 여덟이었고, 황후는 춘추 여든 셋이었다.

    둘 다 태후릉 경내에 장사했다. 동궁이 <두곡> 이궁에서 즉위하였다.

    <> 태후와 <유리명제> <>황후의 무덤은 한 곳인 <두곡>에 몰려 있음! 표지 참조.

 



<3세 대무신제>

三十七年甲子...冬十月, , 崩於 西 都. 遺命傳位於皇太弟<解邑朱>. 春秋六十一, 葬于<大獸林原>.
37(단기2397/AD64) 갑자...10, 상이 서도(西 都)에서 죽었다. 황태제인 <해읍주(解邑朱)>에게

     전위한다는 명남겼다. 춘추 예순 하나였으며, <대수림원(大獸林原 =大楡樹林原)>에 묻혔다.

 



<4세 민중제>

群臣以<慕本>爲不肖而立之. 卽位於<鸞臺>,  <解憂>爲太子, 戒之以善.
군신들이, <모본(慕本)>이 불초한 까닭에, <해읍주>를 보위에 세웠다. <란대(鸞臺=『서도』>에서 즉위하였다.



五年戊辰...五月, , 崩『 東都』, 春秋六十二. 遺命立<解憂>太子. 太子, 卽位於東都神宮,

     元<慕本>, 帝于. 臣欲作陵, <>后曰 :  “吾止禪位之事以違夫志, 且作新陵, 是重違夫志也. 吾亦

     死, 當歸此. 使後人知帝之儉, 而爲勿違夫志, .” 群臣拜伏.


5(단기2401/AD68) 무진...5, 상이 『동도(初都)』에서 춘추 예순 둘에 죽었다.

   <해우(解憂)>태자를 보위에 세우라고 명을 남겼다. 태자는동도신궁(東都神宮)』에서 즉위하고, 연호를 <

    본(慕本)>으로 꿨으, 제를 석굴에 장사했다.

 



<5세 모본제>

六年癸酉, 二月, <慕本>新宮成, 以爲『東都遊幸之所...至十一月, 又動之, , 欲射之. <>, 以所藏宝

     刀刺帝, 出血如...<再思>,  不得已, 卽位『 東都神宮...葬大行于<慕本原>, <杜魯><尼滿>于其側.

     <尼滿>, 宝刀之主. <崔理>.


6(단기2406/AD73) 계유, 2,  <모본(慕本)>의 새 궁궐이 완성되자, 『동도(東都=初都)의 유희 장소

     가 되었다... 11월이 되어서도, 또 움직였더니, 상은 <두로>를 쏘아 죽이려 하였다.

 

이에 <두로>는 숨겨 둔 보도로 제를 칼질하였다.

피가 솟구치자...<재사>가 부득이 동도신궁(東都神宮)에서 즉위하였다...대행은 <모본원(慕本原=三賢古基熊心山聖母古宅주변)>에 장사하였으며,  <두로(杜魯)><니만(尼滿)>도 그 곁에 묻어 주었다. <니만>,

보도의 주인으로,  <최리(崔理=낙랑국 말왕)>의 딸이었다.

 



<6세 신명선제>

四十年壬子...五月, , <海山>. 禅位于<>太子, 自爲<海山仙皇>,  總執內外仙政...於是, 軍國之政總

     歸於太子, 卽位西都(서도)  臺(난대).


40(단기2445/AD112) 임자...5, 상이 <해산(海山 : 渤海沿岸의 섬, 작금 韓半島, 山東半島南部)>으로

      거둥했다<()>태자에게 선위하고, 자신은 <해산선황(海山仙皇)>이 되어 내외 선정을 총괄한 것이다...

      이때에 모든 군국 정사가 <>태자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서도(西都)  란대에서 즉위하였다.


 


<7세 태조황제>

三十五年丙戌...十二月, , 禅位于<遂成>, 退去<鶻川>別宮, 春秋七十九. <遂成>, 卽位於 鸞宮...
35(단기2479/AD146) 병술...12, 상이 <수성(遂成)>에게 선위하고 <골천(鶻川)>별궁으로 물러났

     다. 춘추 일흔 아홉이었다.   <수성>, 『 란궁(鸞宮; 在西 都)에서 즉위하고...

 



<폐주 차 대제>

二十年乙巳...上皇, 大喜, 遂復幸后而崩. 乃三月朔頭也, 春秋九十八. 殯于<鶻川宮>. 十月, 以遺詔以宮爲

     陵... <明臨答夫>, 遂入帳刺脅而殺之..., <伯固>太子卽位...


20(단기2498/AD165) 을사...이에 상황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금 후와 정을 나누고 생을 마쳤다.

    때는 3월 초 두였고 춘추 아흔 여덟이었다. <골천궁(鶻川宮)>에 빈소를 차렸다. 10, 유언에 따라 <골천궁>

    릉으로 만들었.

    <명림답부(明臨答夫)>가 이윽고 장막으로 들어와 <수성>을 칼질하고 졸라 죽였으며...그런 연후 <백고(伯固)>

    태자를 맞아들위하게 하였다...

 



<8세 신대제>

迎帝于<淌水宮>卽位.
제를 <창수궁(淌水宮=탕수궁)>으로 맞아들였더니, 즉위하게 되었다.

十五年己未...十二月, , 崩於西都<鸞宮>, 春秋五十九, 葬于<故國谷>...
15(단기2512/AD179) 기미...12, 상이 서도<란궁(鸞宮)>에서 춘추 쉰아홉에 죽어, <고국곡(故國谷)>

     에 장사했다.

 



<9세 고국천제>
 
卽位於西都』之皇檀(在鸞坮之樹王).
서도』황단(재란대지수왕)에서 즉위하였다.

十九年丁丑...五月, , 崩於<金川宮>. 春秋四十三. 葬于<故國川>.
19(단기2530/AD197) 정축...5, 상이 <금천궁(金川宮 =西都)>에서 춘추 마흔셋에 죽었다.

   <고국천(故國川 : 나라의 옛터 또는 옛 나라의 터전에 있는 냇가의 언덕)>에 장사했다.

 



<10세 산상대제>

元年丁丑, 夏五月七日, <>皇后, 迎上入<金川宮>, 以大行遺詔, 婚于殯宮...
원년(단기2530/AD197) 정축, 여름 7, <()>황후가 상을 <금천궁(金川宮 =西都)>으로 맞아들여, 대행

     [신대]의 유명에 따라 빈궁에서 혼인하였다...



二年戊寅, 二月, 築城於<牛山>.
2(단기2531/AD198) 무인, 2, <우산(牛山)>에 성을 쌓았다.



十三年己丑...十月, 移居于<淌南><牛山>, 改爲<丸都>, <桂婁>之都也.  <>有大風拔木.
13(단기2542/AD209) 기축...10, <창남(淌南 : 창수=탕수의 남쪽)><우산(牛山)>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의 이름을  <환도(丸都 =창남산성=탕남산성=상남산성)>로 바꿨다. 이곳은 본래 <계루(桂婁)>의 도읍이었

     다.



十三年己丑...十月, 移居于<淌南><牛山>, 改爲<丸都>, <桂婁>之都也.

13(단기2542/AD209) 기축...10, <창남(淌南 : 창수=탕수의 남쪽)><우산(牛山)>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의 이름을  <환도(丸都 =창남산성=탕남산성=상남산성)>로 바꿨다. 이곳은 본래 <계루(桂婁)>의 도읍이었

    다.



三十一年丁未, 夏五月, , 崩於西 都<金川宮>, 春秋五十五, 葬于<山上陵>.
31(단기2560/AD227) 정미, 여름 5, 상이 『서도(西都)<금천궁(金川宮)>에서 춘추 55세에 죽어, <

    상릉(山上陵)>에 장사하였다.

 



<11세 동양대제>

元年丁未, 夏五月七日夜, <山上大帝>, 以癰潰之證, 崩于<金川宮>. <>皇后, 急召太子, 行祥于殯, 召太

      輔<穆登><于目>右輔<尙齊>國相<高優婁>中畏大夫<明臨息夫>, 入內殿, 行太子卽位禮, 宝令

      十九.


원년(단기2560/AD227) 정미, 57일 밤, <산상대제(山上大帝)>가 종창으로 몸이 문드러져 <금천궁(

      川宮=西都)>서 죽자, <()>황후가 급히 태자를 불러 빈궁에서 상제(喪祭=服祭)를 올리고, 태보<목등(

      穆登)>좌보<우목(于目)>우보 <상제(尙齊)><고우루(高優婁)>중외대부<명림식부(明臨息夫)>

      불러 내전으로 들여서 태자의 즉위 예식을 치렀다보령 열아홉이었다.



四年庚戌, 春正月, 親習兵馬于<中川之原>.
4(단기2563/AD230) 경술, 춘정월, <중천원(中川之原 : 箕丘黃龍國近地)>에서 친히 병마=용병과 기사)

     를 익혔다.



[二十]年丙寅...秋八月, , <><><>妃等, 閱兵于<西川>而畋[]<杜訥之原>, 忽聞<>

      迂回而來. <>等迎戰, 我寡彼衆且接其銳鋒, 頗有難色. , 乃抄鐵騎五千, 衝其陣於<梁口>之西,

      大破之, 獲其兵仗馬匹無数. , <>, 受俘. <>之大軍又至, <于根>戰死. <>方陣而前勢如破竹,

      又聞南路失守且挾后妃, 不得如意, 乃引勁騎余而退<鴨淥之原>. <朱全>軍亦敗, 死者萬人. , 東遷

      <>.

 

    十月, <>入都城掠民收宝. , 聞之痛哭, ;“恨不聼<穆能>之言.” <>妃請奔其鄕, 乃至<竹嶺>, 軍士

     盡. 『東部』于台<密友>募士力戰., 間行入山谷中, 聚散卒自衛. 百姓, 素慕聖德, 皆願死戰. <王頎>

     兵, 與田民山尺, 相持. 敵衆我寡, 且無寸鐵, 勢其危急. 廚使<紐由>, 詐降饋<>, 隱刀刺殺之, 斬其幕將数

     人, 賊大亂. , 遂督民, 大破<>. , <>賊已退. <穆萇>來迎, 上曰;“, 不聼汝父之諫, 而至此.”

     追贈<>太輔<安國公>, <得來>大注簿, <>中畏大夫. <>, , <山上><玉川>公主. 至是, 又以上

     女<>公主妻之, <于術>出也. 追贈<紐由>『東部』大使者, 使其子<多優>継之. <密友><巨谷><

     木谷>. <屋句><鴨淥><杜訥河原>.  <>, 多産謹守, 故進封爲皇后.  <>,<古爾(一三)>...<>賊之

      乱, <樂浪><劉茂><帶方> <王遵>亦自南入助<>. <古爾>, 乘其虗, 襲二國多掠邊民.

 

[20](단기2579/AD246) 병인...8월에 상이 <()><연엽()><()>비 등을 데리고 <서천

     (西川)>으로 가서 사를 사열하고, <두눌원(杜訥之原 : 達里湖주변 平原)>에서 사냥을 하다가, 돌연히 <

     ()>적이 우회하여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근(于根)> 등을 채근하여 맞아 싸웠으나, 우리는 수가 적고 저쪽은 수가 많은데다가, 그들의 예봉을 마주하

     더, 자못 어려워 였다. 이에 상이 철기(鐵騎) 5천을 추려서 그들의 진영을 <양구(梁口)> 서쪽에서 들이쳐서

     크게 이겼고, 노획한 병장과 마필없이 많았다.

 

   상이 <>후와 함께 포로를 접수하였다. <관구검()>의 대군이 또다시 밀려오니, <우근>이 싸우다 죽었다.

   <관구검>이 방진(方陣 : 큰 평원에서 하는 진법)을 펼쳐 그 전봉의 위세가 파죽인데, 남쪽의 통로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자, 까지 데리고 있었으니 상황이 녹녹하지 않아, 날랜 기병 천여 기와 함께 <압록원(鴨淥之原

    : 鴨水之原)>으로 물러났다.

 

   <주전(朱全)>의 군대 역시 패하여, 죽은 이가 만 명이나 되었다. 상은 <옹구(壅口 : 어디)>로 동천하였다. 10, <

   관구검()>(西都 : 角宮=西都還御後未遷都)에 들어가 백성을 약탈하고 보물들을 챙겼고, 이 소식을

   들은 상은 통곡하면서 <목능()>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

 

  <()>비가 자기의 고향으로 피하기를 청하여서, <죽령(竹嶺 : 竹嶺이 두 곳이라면 어느 竹嶺)>에 이르렀더니,

  거의 모든 군사들잃었다. 『동부』우태 <밀우(密友)>가 무사들을 모아서 힘써 싸우고, 상은 산곡으로 숨어들

  어 흩어진 군졸을 모아 스스로를 지켰더니, 백성들은 평소에 상의 성덕을 흠모하였던지라 모두들 죽기로 싸우길

  원하였다.

 

<왕기(王頎)>의 추격 군이 들판에서 농사를 짓거나 산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적은 수가 많고

우리 쪽은 수가 적을뿐더러 짧은 쇠토막(寸鐵=약간의 병력이나 병장기)도 없어서 그 형세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창간 관리 <뉴유(紐由)>, 거짓으로 항복하고는, 음식으로 <왕기(王頎)>를 대접하면서, 숨겼던 칼로 그를 찔러 죽

이고, 여러 막들의 목을 베었더니, 적들은 어지러워졌다. 이에 상이 백성과 병사를 독려하여 <왕기>의 군대를 크

게 무찔렀다. 이때, <()>적은 이미 물러나 있었고, <목장(穆萇)>이 와서 {상을} 맞아들였더니, 상은 짐이 자네

부친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되었네.”하였다.

 

<목능()>을 태보<안국공(安國公)>으로 추증하였으며, <득래(得來)>를 대주부로, <목장()>을 중외대부로

삼았다. <목장()>은 애초 <산상(山上)>의 딸 <옥천(玉川)>공주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지금 또 <우술(于術)>

낳은 상의 딸 <()>공주를 처로 삼게 되었다.

 

<뉴유(紐由)>에게는 동부대사자를 추증하고, 그의 아들 <다우(多優)>가 그 자리를 잇게 하였다. <밀우(密友)>

에게는 <(巨谷)><청목곡(靑木谷)>을 하사하고, <옥구(屋句)>에게는 <압록원(鴨淥原)><두눌하원(杜訥

 

河原)>을 하사하였다.  

 

<()>비를, 자식을 많이 낳았으며 근신하여 자신을 지키었다 하여, 황후로 봉하였다.  <백제()(고이13)>

...<()>적의 난리 중에 <락랑(樂浪)><유무(劉茂)><대방(帶方)><왕준(王遵)>이 남쪽으로부터

들어와서 <관구검>을 돕자, <고이()>는 그 허를 틈타서 이 두 나라를 기습하여 많은 수의 변방 백성을 노략

하였다.



二十一年丁卯, 春二月, 移都『平壤』.
21(단기2580/AD247) 정묘, 2, 『평양(平壤)』(河北 朝陽 현금 朝陽近地 瀋陽近地 北京 東方

     또는 南方)으로  읍을 옮겼다.



二十二年戊辰...九月, , 畋于<狐川><酒桶陵>, 有感而疾作, 不能言而崩. 葬于<東川> <烏壤>之岡.
22(단기2581/AD248) 무진...9월에 상이, <호천(狐川)>에서 사냥하고 <주통릉(酒桶陵)>을 찾아보았

     다가, 감응하병이 들더, 말도 못하게 되어서 죽었다. <동천(東川)<오양(烏壤)>쪽 산줄기에 장사하

     였다. (狐川, 東川, 平壤 酒桶村은 서로 간에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닐 것으로 보임.

 



<12세 중천대제>

元年戊辰, 九月, 大行帝自<狐川>興疾而歸, 召太子授神鐱而不能言, 須臾而崩, 太子卽位. , 年二十

      五.  冬十月, <>.
원년(단기2581/AD248) 무진, 9, 대행제가 <호천(狐川)>땅에서부터 병을 얻어 평양으로 돌아와서, 태자를

     불러서 신검을 넘겨주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채 오래지 않아 죽어서, 태자가 즉위하였고, 이때 나이는 스물다섯

     이었다.  10, <동천(東川)>장사하였다.



七年甲戌...七月, 地震....大閱于<中川之原>.
7(단기2587/AD254) 갑술...7월에 지진이 있었다...<중천원(中川原)>에서 군사사열을 크게 벌였다.



十一年戊寅, 春二月...五月, 上送<玉帽><>. <大嶺>獵後, 二聖同居<沸流>行宮.
11(단기2591/AD258) 무인...5, 상이 <옥모(玉帽)><()>상에서 돌려보냈다. <대령(大嶺)>에서

     함께 사냥한 이후 두 성인은 <비류(沸流)>행궁에서 함께 지냈었고, 이때가 되어 해로를 따라 고국으로 돌아가

     게 된 것이었다.

十二年乙卯, 春正月, <椽邦><玉帽>, 賜衣匹段玉佩薬物等百事, <沾解><[]>

      帝<東海大王> ・衛大將軍賜金銀印二顆.

 

     <玉帽>生皇女<>公主.
12(단기2592/AD259) 을묘, 춘정월, <연방(椽邦)>을 보내서 <옥모(玉帽)>포목옥패약물

     등 100가지를 하사하, <첨해(沾解)><[]>황제<동해대왕>우위대장군으로 봉하고 금은 도장

     2개를 하사했다<옥모>가 황녀 <()> 공주를 낳았다.


十五年壬午...秋七月, , <玉帽>, 畋于<箕丘>, 得白獐.
15(단기2595/AD262) 임오...7, 상은 <옥모>를 데리고 <기구(箕丘=北箕山)>에서 사냥하여 흰
노루

      를 잡았다.



二十三年庚寅, 冬十月, <杜訥原>, <貫那>遊連十日, 疾作而崩. 又云, 灌太后於<靑木宮>而崩.
春秋

      四十六. 葬於<中川之原>. 是年四月, 畋于 <平山>, <觧熟><>而歸, 年十五. 至是娠.
23(단기2603/AD270) 경인, 10, <두눌원(杜訥原 : 達泊湖 인근)>으로 거둥하여 <관나(貫那)>와 함

     께 연달아서 즐기기 열흘에 병들어 죽었다. <청목궁{靑木宮}>에서 태후에게 정성을 쏟다가{태후의 시신을 씻

     다가?}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춘추 마흔 여섯이었다.

 

   <중천원(中川之原)>에 장사했다. 이 해 4월엔 <평산(平山)>에서 사냥하고 나서 <해숙(觧熟)>의 딸 <()>

     을 태우고 돌아왔는데, 열다섯 살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서 아이가 생겼다.

 



< 13세 서천대제>

二十三年壬子, 二月, 上暴崩于<西川宮>, 春秋五十三, 葬于<西川陵>.
23(단기2625/AD292) 임자, 2, 상이 <서천궁(西川宮)>에서 갑자기 죽었다. 춘추 쉰셋이었고, <서천릉

     (西川陵)>에 장사하였다.

 



<14세 봉상제>

< 西川帝>久無傳國之志, 及其暴崩. <>, 矯詔立之.
<서천제>는 오래도록 나라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는데, <서천제>가 갑자기 죽자, <>후가 거짓 조서로 제를 세웠

.



九年庚申...秋八月...<助利>, 不得已, 與群臣, <乙弗>爲帝, 廢上幽之. 知不免而自經, 二子亦從焉. 葬于

      <烽山之原>.
9(단기2633/AD300) 경신...8...<창조리(助利)>, 어찌하는 수가 없어서, 군신들과 더불어 <을불(

     弗)>을 맞아들 제로 세우고, 상을 폐하여 가두었다.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알았던지라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두 아들 또한 뒤따라 죽었다<산원(烽山之原)>에 묻어 주었다.

 



<15세 미천대제>

二年辛酉...五月, 廢帝崩于<候山>別宮. <再生>, 令自經.
2(단기2634/AD301) 신유...5, 폐제가 <후산(候山 : 張北 候兒山, 懷柔 北 後山舖)>의 별궁에서 죽었

     다. <재생(再生)>이 핍박하여,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三年壬戌, 春正月, 移御新[]. 自廢帝時營是宮, 三年而成.
3(단기2635/AD302) 임술, 춘정월, 새로 지은 궁[西 都 西川神宮=西川宮]으로 이어하였다. 폐제 때부터

     이 궁을 짓기 시하여 3년 만에 완성된 것이다.



八年丁卯, 秋九月, 大閱水陸軍三十万于<鴨淥之原>, 考其債而賞其優.
8(단기2640/AD307) 정묘, 9, 수군육군 30만을 <압록지원(鴨淥之原)>에서 대거 사열하고, 그들에

     게 신세진 것(30군 육성에 재물을 들이고 수고하였음)을 참작하여 넉넉하게 보상하여 주었다.



九年戊辰...秋八月, 重修山宮. <山上帝>敬神之所也. <黃山>大川之上, 有瀑與湯鳥之勝. , <

      >太后, 修之爲其貴玩遊憩之所.

9(단기2641/AD308) 무진...8, 산궁을 고쳐 짓게 하였다. 산궁은 <산상제(山上帝)>의 신위를 모신 곳

     으로, <황산()>의 큰 물줄기 위쪽(류 북쪽)에 있었다. 폭포와 온탕이 있고 꽃과 새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상이 <()>태후를 위하여 고쳐지어서, 그 귀하신 분이 놀이 하거나 쉬시게 한 것이었다.



三十二年辛卯...二月, , 疾篤, 召太子, 至前授神釼(光明所傳其釼或云最彘宝釼)...戒畢而崩, 春秋五十

     四.
32{단기2664/AD331}신묘...2, 상은 병이 위독하여지니 태자를 불러서 눈앞에 다가서게 하더니 신검{=

      神釼}(광명소전기인.혹운최체보인)을 주고는...타이르기를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춘추 쉰 넷이었다.

 



< 16세 고국원제>

四年甲午, 二月, 巡至<東海>, 五月還都.  秋八月, 增築『 平壤城』, <丸都>新宮.
4(단기2667/AD334) 갑오, 2월에 순시하여 <동해(東海 =요하평원)>에 이르렀다가, 5월에 환도하였다.  

    추8월에『평양성(平壤城)』을 늘려 짓고, <환도(丸都=北都 : 淌南山城)>에 새 궁전을 지었다.



五年乙未, 春正月, 築國北新城.  三月, <乙弗大王>[]<美川>.  
5(단기2668/AD335) 을미, 춘정월, 나라의 북쪽에 새 성을 쌓았다.  3월에 <을불대왕(乙弗大王)><미천

     (美川)>에 장사하였다.



六年丙申...夏五月, 宴宗室女于<丸都>新宮...秋八月, <東黃城>役卒五千人赴<丸都><五龍宮>, <

      樂浪>人二千<帶方>人一千<扶余>人二千<東黃城>, <毳芾阿佛和>監之.(<東黃城>平壤之南,

     本<百濟>之地,近于<新羅>,<><>連和而欲復此地.王欲以此爲密都,固其城池以爲鎭南之衝). 冬十

     月, 大豊, 賜宴父老.  <于覃>爲『西部』于臺.


6(단기2669/AD336) 병신...5, 종실의 여인들에게 <환도(丸都=北都창남산성)>의 새 궁궐에서 연

     회를 베풀었다...8, <동황성(東黃城)>에 명을 내려 역졸 5천인을 <환도(丸都=北都=창남산성)>로 보내서

      <오룡궁(五龍宮)>을 수리하게 하였고, <락랑(樂浪)>2<대방()>1천 및 <부여(扶余)>2천에

      게는 <동황성>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취불아불화(毳芾阿佛和)>를 시켜서 이 공역을 감독하게 하였다.

 

(<동황성>은 『평양』의 남쪽에 있었으며, 본래 <백제>의 땅이었고, <신라>와는 가까이 있던 까닭에, <신라>

<백제>가 연이어 화친하면서도 이곳을 가지려 하였었다. 왕은, 이곳을 밀도로 삼고 튼튼히 하여서, 남쪽에 대비할 요충으로 삼고자 하였다. <남당>의 견해임)

十年更子...秋七月, <丸都><長安宮>, 以爲<>太后行宮...<石虎>使越海而至, 迎于<丸都>新宮, 共議

      討<>.
10(단기2673/AD340) 경자...7, <환도(丸都=北都 : 창남산성)><장안궁(長安宮)>이 완성되어, <

      ()>태후 행궁을 삼았다...<석호(石虎)>의 사신이 물(: 바다 강)을 건너 다다랐기에 <환도(丸都=北都 :

      남산성우산성)>의 새로 지은  궁전으로 맞아들여서 <()>을 토벌하는 것을 함께 논의하였다.



十二年壬寅...二月, <再逢>修葺<丸都城>, <藍國><國內城(丸都之王在城也.非儒留王立尉那岩城

      也)>.  秋八月, 遷都<丸都城>, 盖有西進之志也. <>欲東進, 而上欲西進, 其勢必衝乃己...十月, <>,

      都<龍城>, 自以爲先㝎<句麗>以後滅<宇文>, 圖中原可也. <>;“<>二道. 北平南險, 彼必守北.

      下, 宜南入而出其不意, <丸都>可取也.” <>, 然之, 使<王寓>將兵万余而出北聲言大軍在此, 自將勁兵

       四万而南入., <>大軍在北, 命王弟<>引精兵五万拒之, 自以老弱殘兵守都備南. 十一月, 賊猝至

       <蛇川><泥河>, 大軍継至, <阿旦><安平>等城皆陷. 右龍將軍<阿佛和>力戦于 <黃山>而死之. 敵衆我

       寡, 勢不能持. , 方知大軍在此墮其術中, 収㪚卒欲就平壤, <韓壽>等進之甚急, 欲隱於林中,<觧發

        >引兵至入<断熊谷>. <丸都>已陷太后被虜, 痛哭. 左右慰之, ;“北軍滅<王寓>而來救, 賊不可安.

       下, 宜自寬, 而存社稷.” 敵圍<断熊谷>, <于莘>伏兵于谷中而破之. , <觧發>, 密踰<断岺>而至

       壤. <>, 孤軍深入不得主, 深以爲憂, 遣王弟<><高喜><觧玄>平壤而請相見. , 皆留之,

       而命緫船將軍<免江>引水軍三万, 把守<>, 累破<>. 王弟<>大軍亦將至. <>, 大怒, <美川

       陵>. , , <>太后万歲後, 欲合葬于<美川陵>, 而不封羡門, 故賊易取梓宮, 樊宮室, 毁都城, 驅男女

       万口, 盡財宝而去. 我軍欲遮路, <>, <>太后詔, 禁我軍民來抗. , 亦爲母太后及諸后王子, 而不

       敢追擊. 賊乃晏然而退. <><><[褚裒]>, 徙其家于<靑山>.


12(단기2675/AD342) 임인...2, <재봉(再逢)>에게 명하여 <환도성(丸都城=淌南山城=北都=牛山城)>

      의 지붕을 고쳐 잇게 하였다. <람국(藍國)>에게 명하여 <국내성(國內城)(환도지왕재성야.비유류왕립위나암성

     야 : 남당견해)>을 쌓게 하였다.  

 

    8, <환도성>으로 천도하였다. 대략 서진하려는 뜻이었다(丸都城=北都=淌南山城=牛山城=國內尉那岩

    城西 都의 북쪽 山岳너머에 있었을 것). <모용황()>은 동진(東進)하고자 하였고, 상은 서진(西進)하고자

     하였으니, 이 세력들은 충돌할 것이었고, 그리 되었다...

 

    10, <모용황()><룡성(龍城)>으로 천도하였다. 스스로 <고구리(句麗)>를 먼저 평정한 이후에 <우문(

    文)>을 멸하고서야 중원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용한(0>이 말하길 : “<고구리(句麗)>를 치는 데

     는 두 길이 있습니다.

 

    북쪽 길은 평탄하고 남쪽 길은 험하니, 저들은 필시 북쪽을 지킬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의당 남쪽으로 가셔서 불

    의에 나아가시면 <환도(丸都)>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 그렇겠다고 여기고, <왕우(

    寓)>에게 일만 여의 군병을 이끌고 북쪽 길로 나가서 대군을 끌고 온 듯이 하게 하였고, 자신은 강군 4만을 이끌고 남쪽 길로 들어왔다.

 

    왕은, <()>의 대군이 북쪽에 있는 것으로 듣고, 동생 <()>에게 정병 5만을 이끌고 가서 막게 하였으며, 자신은 늙고 약한 군병으로 도읍(丸都城)을 지켜 남로 침입을 대비하였다. 11월에 적들이 느닷없이 <사천(蛇川)><니하(泥河)>(두 하천은 가까이 있다) 다가왔다. 대군이 꼬리를 물고 밀려와서, <아단(阿旦)>성과 <안평(安平)>성 등이 모두 무너졌다(두 성은 蛇川泥河에 인접했다.).

 

 우룡장군 <취불아불화(阿佛和)>가 힘을 다하여 <황산(黃山)>에서 싸우다 죽었다. 적은 수가 많고 우리는 수가 적었으니 지켜 낼 수가 없었다. 상은 그때서야 적의 대군은 남쪽에 있으며, 저들의 술수에 빠졌음을 알았다.

 

상은, 흩어진 군사를 모아서 평양(平壤)으로 나아가려 하였는데, <한수(漢壽)> 등이 그곳으로 매우 급하게 다가오기에 산림 속으로 숨으려 하던 차에, <해발(觧發)>이 군사를 이끌고 <단웅곡(断熊谷)>으로 들어왔다. (상은) 이미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되고 태후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더니, 통곡하였다.

 

 이에 좌우의 사람들이 위로하며 아뢰길; “북쪽으로 간 (<>) 군대가 <왕우(王寓)>를 깨고 우리를 구하러 오고 있으니, 적들은 편안치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응당 느긋하게 계시면서 사직을 살피십시오.”라 하였다. 적들이 <단웅곡>을 포위하자, <우신(于莘)>이 계곡 속에 깔아 놓았던 복병으로 이들을 깼다.

 

상은 <해발(觧發)> 등을 데리고 은밀히 <단령(断岺)>을 넘어 평양(平壤)에 다다랐다.(平壤断岺 부근에 있었다). <모용황()>, 고군분투하며 깊숙이 들어오긴 하였으나 주상을 잡지 못한 것이 심히 걱정되자, 왕제 <()><고희(高喜)> <해현(觧玄)> 등을 평양(平壤)으로 보내서 서로 만나자고 청하였다.

 

이에, 상은 그들 모두를 눌러 있게 하고는, 총선장군 <면강(免江)>에게 명하여 수군 3만을 이끌고 <강구(江口)>를 차지하게 하였더니, 여러 차례 <()>의 군대를 깼다. 왕제 <()>의 대군이 역시 곧 도착하게 되었더니, <()>은 화가 치밀어서 <미천릉(美川陵)>을 파헤쳤다.

 

애초에 상은 <()>태후가 만수를 누리신 연후에 <미천릉>에 합장하려고 (<미천릉>) 큰 문을 봉하지 않았었다. 때문에 적들은 손쉽게 재궁(帝王屍身)을 탈취하였고, 궁실을 불태우고 도성을 훼손하였으며, 남녀 백성 1만을 몰아가고, 모든 재물과 보물도 거두어 돌아갔다.

 

아군이 퇴로를 막고자 하였더니, <()><()>태후의 조서로써 아군과 백성들이 저지하지 못하게 하였다. 상 또한 잡혀 있는 모친이신 태후와 여러 후 및 왕자들의 안위 때문에 감히 추격할 수도 없었다. 이리하여 적들은 아무 탈 없이 돌아갔다.

 

<()><고운()>의 아비 <저부(褚裒)>를 아껴, 그 집안을 <청산(靑山)>으로 옮겨 살게 하였다.

十三年癸卯...秋七月, 移居于<東黃城>(臨時之居,非遷都于此地也). <尙弗><東晉>, <>無道.
13(단기2676/AD343) 계묘...7, <동황성(東黃城)>으로 거처를 옮기고(임시지거, 비천도우차지야;

     당견해), <상불(尙弗)><동진()>으로 보내서 <>의 무도함을 하소연하였다.



十五年乙巳, 春正月, , <龍江>龍珠戱,平壤父老七十人.
15(단기2678/AD345) 을사, 춘정월, 왕이 <룡강(龍江)>엘 가서 <룡주희(龍珠戱)>를 열고 평양(平壤)

      부로 71인에게 연회를 베풀었다(平壤龍江 부근에 있었다).



十七年丁未...九月, <北山><熊王殿>, 極其奢侈. 置仙人, 招隱者...十一月, 以太子<><新城>太守,

      置小守二人將軍三人, 以輔之. <芙平>右輔, <免江><丸都>大加.
17(단기2680/AD347) 정미...9, <북산(北山)><웅왕전(熊王殿)>이 완성되었다. 사치스럽기가 지극

     하였다. 선인()들을 두고 운둔한 이들을 불러들였다...11, 태자 <()><신성(新城)>태수(太守)

    삼고, 소수(小守) 2인과 장군() 3인을 딸려 주어 보좌케 하였다. <부평(芙平)>을 우보로, <면강><환도

    (丸都)>대가로 삼았다.



二十四年甲寅...九月, 祭鹿於<龍山>. 閱四衛于<丸都>, 命諸將薦武才授以小幢, 賞良刀匠十二人.
24(단기2687/AD354) 갑인...9, <룡산(龍山)>에서 사슴제를 올렸다. 4위군(四衛軍)<환도(丸都)>

     서 사열하고는, 모든 장수들에게 명하여 무재(武才)를 천거하게 하여서, (선발된 이들에게는) 소당(小幢 : 군대

     편제상 작은 깃발 하나에 해당하는 무리의 우두머리)의 직분을 주었고, 좋은 칼을 만드는 장인 12명에게도 상을

     내렸다.



三十年金神(庚申), 正月, 受朝於<平山>行宮. 百官一宿値三羊.
30(단기2693/AD360) 금신(경신), 정월, <평산(平山)>행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백관들은 하루를 묵는데

     양 세 마리를 치렀다.



三十一年辛酉...三月, <高成>, <北海>, 拓地千里, 置『撫夷』十二人.  祭鹿於<龍山>, 頒獣於王師<

      天><奉箕><封時><溫駝>.
31(단기2694/AD361) 신유...3, <고성(高成)><북해(北海 : 바이칼호)>를 정벌하여 천리의 영토를 늘

      리고, 무이()』 12인을 곳에 배치하였다.  <룡산(龍山)>에서 사슴제를 올리고, 제수(또는, 짐승고기,

      린 고기)는 나누어서 왕사() <소천(蕭天)><봉기(奉箕)><봉시()><온타(溫駝)> 등에게 보냈다.



三十二年玄狗(壬戌), 三月, <觧發><東海公>, <陽疇><仙克><方式>, 營南下理東之計.
32(단기2695/AD362) 현구(임술), 3, <해발(觧發)><동해공(東海公)>이 되어, <양주(陽疇)><선극

      (仙克)><방식()>등과 함께, 남하하여 동쪽을 다스릴 계책을 세웠다.



三十三年黑豕(癸亥)...三月, 以京都人口稠密, 量移諸府于『平壤』.  八月, <北海><水㹮>三百人入朝,

     爵及衣, 妻以京都女以安其.  九月, 上與巡至<最彘>還自湯宮.  十月, <><東海公>, <于永>左輔, <

     發>右輔.  十一月, <白龍><陽隧祭>. <東海>巨魚三十尾, 長皆四五十尺, 高皆八九尺, 解頒宗戚

     大臣及三品公卿, 以爲例.


33(단기2696/AD363) 흑시(계해)...3, 경도(京都 : 當時都邑)의 인구가 조밀하여 헤아려서 여러 관부

     를 『평양()』으로 옮겼다.   8, <북해(北海)><수맥(水㹮)>사람 300명이 입조하였기에, 작위와 옷을 내

     려 주고, 경도의 여인으로 처를 삼아 주어 편히 살게 하였다

 

   9, 상이 <최체(最彘)>에 순행(巡幸)을 베풀고 <탕궁(湯宮 : <達里湖>東方<湯山>行宮 今<北京>西北<小湯

   山>湯宮)>을 들렀다 돌아왔다(그림43). 10, <()><동해공(東海公)>, <우영(于永)>을 좌보, <해발(

   發)>을 우보로 삼았다.  

 

   11, <백룡원(白龍院)>에 거둥하여 <양수제(陽隧祭)>를 올렸다. <동해(東海)>에서 잡힌 거대한 물고기{=

    래} 30마리를 운반하였. 길이는 모두 40~50척에 체고는 모두 89척이나 되었다. 해체하여 종척들과 대신

    들 3품 공경들에게 나누어 보냈, 이후에도 그리하게 되었다.



四十年庚午, 十一月, <苻堅><>, <><>出奔<高陽><>軍所擒, 送于<長安>.  <慕容評><

     >逃來于. , <><><藍國>, 引軍取<平郭><安平>. <方式><星白><于徹>, <玄菟><

     蘇>, 鎭之. , <>不忠之罪.


40(단기2703/AD370) 경오, 11월에 <부견(苻堅)><()>으로 들어갔더니, <()><()><

     고양(高陽)>로 도망 나가다  <()>=(苻堅軍)에게 사로잡혀 <장안(長安)>으로 보내졌다

 

    <모용평(慕容平)><>에서 우리에게로 도망하여 왔기에, 상은 <()><()> <람국(藍國)>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평곽(平郭)><안평(安平)>을 취하게 하였고, <방식(方式)><성백(星白)><

    우(于徹)>에게는 <현토(玄菟) ><남소(南蘇)>를 취하여 지키게 하였다. 상이 <모용평(慕容平)>의 불충

    하였던 죄를 조목조목 따지더니...



四十一年辛未...正月, <于莘>, 爲征西大將軍領軍十萬, 以爲伐<>之計. <><帶方公>, <>爲太

     輔, <>爲左輔,  <>[]<右輔>, <>爲廟王, <龍白><南蘇>太守, <藍國><新城>太守, <仲室孝><

     平郭>太守, <高長創><安平>太守, <周日><玄菟>太守, <牛鬲><濱江>太守, <再逢>大府卿, <談活>

     部大使者...三月, <觧茁><平山>太守, <方式><>太守...十月, <百濟>, 聞我移兵征西, 欲勝虗來攻.

     時, 上欲伐<>以雪恥故也. <樂浪>又大擧入寇, <陽疇>力戦死之. <大仇首>來攻<北漢城>, 我軍伏兵

     於<漢水>而大破之, 未幾, <大肖古>又引精兵三万自來助其子, <大仇首>士氣大振. 我軍欲征西而皆聚

     <遼東>, 故分禦<樂浪><肖古><仇首>, 兵力寡少. , 自將四衛軍, 躬詣陳前, 督勵將士, 故上下[]

     之. 至是, 大戦于<漢城>西山. 上中二流矢, 一肩一胷, 力拔之而復欲出陣, 左右極諫止之. <觧明>,

     創甚而諱之, 引軍固守陣地, 使<仙克><{}>力戦. <觧明>密扈上躬退至<[]>, 痛極而崩

      ...以翌年壬申二月二十五日, 葬于<故國(湯河原)>, 竟用玉棺金椁(稀以玉棺陵.嬰陽時爲末曷所極),

      春秋六十一.


41(단기2704/AD371) 신미...정월, <우신(于莘)>을 정서장군으로 삼고 10만군을 이끌게 하여 <>을 치

      려는 계책으로 하였다<()><대방공(帶方公)>으로, <()>을 태보로, <()>을 좌보로, <()

      >을 우보로, <()>를 묘왕()으로, <룡백(龍白)<남소(南蘇)>태수로, <람국(藍國)><신성(新城)

      >태수로, <중실효(仲室孝)><평곽(平郭)>태수, <고장창(高長創)><안평(安平)>태수로, <주일(周日

      )><현도(玄菟)>태수로, <우격(于鬲)><빈강(濱江)>태수로, <재봉(再逢)>을 대부경으로, <담활(淡活)

      >을 『북부』대사자로 삼았다...

 

3, <해줄(觧茁)><평산(平山)>태수로, <방식(方式)><락랑(樂浪)>태수로 삼았다.  

  10, <백제(百濟)>, 우리가 군대를 움직여서 서쪽을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틈을 타서, 공격해 왔다. 이때,

  상은 <()>을 쳐서 지난날을 설욕하고자 한 것이었다. <낙랑(樂浪)> 또한 대거 쳐들어와서, <양주(陽疇)>

   힘껏 싸우다 죽었다.

 

 <대구수(大仇首)><북한성(北漢城)>을 공격해 오자, 우리군대가 <한수(漢水)>에 복병을 깔았다가 이를 크게

  깰 무렵에, <초고(大肖古)>가 또 손수 3만 정병을 이끌고 와서 아들을 도우니, <대구수>의 군사들은 사기가 크

  게 진작되었다.

 

우리의 군대는 서쪽을 정벌할 생각으로 <요동(遼東)>에 집결되어 있었고, <낙랑(樂浪)><초고(肖古)> <구수

(仇首)>(나머지의 군대로) 나누어 막아야 했기에 (우리는) 병력의 수가 딸렸다. 이에 상이 친히 4위의 군대를 이

끌고 달려가 군진의 앞에 서서 장수와 병사들을 독려하였더니 상하가 잘 따랐다.

 

이리되어 <한성(漢城)>의 서산(西山 : 西)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상이 흐르는 화살 두 대를 맞았다.

하나는 어깨에 다하나는 가슴에 맞았다. 힘껏 화살을 뽑아내고 다시금 출진하려 하였더니, 좌우들이 죽기로 말

렸다.

 

 <해명(觧明)>, 상의 상처가 심함을 알아 이를 숨기고, 군사를 불러들여 진지를 굳게 지키게 하였으며, <선극(

)><람풍(藍豊)>을 시켜서 힘껏 싸우게 하였다. <해명>은 응당 성상을 철저히 옹호하여서 <고상령(高相岺)>

으로 물러났으나, 극심한 고통 끝에 죽었다..

 

다음해 임신년 225일에, <고국원{故國原}(탕하원)>에 장사하였다. 끝내 옥관{玉棺}과 금곽{金椁}(희이옥관

, 영양시위말갈소극)이 사용되었다. 춘추 예순 하나였다.

 



<17세 소수림대제>

二年壬申, 正月, <烽山>.  二月, 葬大行于<故國原>.  三月, 祭鹿于<龍山>...
2(단기2705/AD372) 임신, 정월, <봉산>이 무너졌다.  2, 대행을 <고국원(故國原 : 옛 나라의 언덕, 또는

     나라의 옛터에 있는 언덕)>에 장사하였다. 3, <룡산(龍山)>에서 사슴제를 지내고...



七年丁丑, 十月...<>兵三萬來侵平壤.  十一月, <>.
7(단기2710/AD377) 정축, 10...<백제()>3만병으로 평양(平壤)에 쳐들어왔다. 11, <백제>

     정벌하였다.



十四年甲申...十一月, 畋于<獣林>而不豫, 溫湯而崩, 春秋四十六. 依遺詔, 葬于<小獣林(卡盆河邊牛

      頭山)>.
14(단기2717/AD384) 갑신...11, <수림(獣林)>에서 사냥하다가 갑자기 몸이 위중하여, 온탕에 들어갔

     다가 붕어하였다. 춘추 마흔 여섯이었다. 유조(유언)를 따라 <소수림(小獣林)(잡분하변우두산)>에 장사하였

     다.

 



<18세 고국양대제>

<獣林>, 將崩, 傳釼璽于帝, ; "中國多乱, 唯東方稍安, 乃祖蔭也. , 其善守, 以傳<談德>.” , 涕泣, 受之.

 

[참조] : “...<小獸林>. <>太后命, 卽位於西 都<鸞宮>, 時春秋四十三...”라는 기록이 00322342.

               pdf의 말미 내표지에 쓰여 있.


              < 수림>, 죽음을 앞두고 보검과 옥새를 넘겨주며, “중원의 나라들은 소란한데, 오직 동방만은 점점 고요

              해지는구. 조상님들의 음덕이 있음인 것이야. 자네도 잘 지켜서 <담덕(談德)>에게 물려주게나.”라 일렀

              더니, 상은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받았다.
 

[참조] : “...<소수림>이 죽자, <>태후의 명으로, 서도<란궁>에서 즉위하였다.

           그때 춘추 마흔 셋이었다...”라는 기록이 00322342.pdf의 말미 표지 안쪽에 쓰여 있음.



四年丁亥, 九月, 命左將軍<觧猩><>兵攻<関彌城>, <>達率<眞嘉謨>恩率<豆知>等來拒于岺敗入

      城中不出, 圍之 .
4(단기2720/AD387) 정해, 9, 좌장군 <해성(觧猩)>에게 명하여 <말갈()>군을 이끌고 <관미성(関彌

      城)>을 치게 하였 더<백제()>의 달솔 <진가모(眞嘉謨)>와 은솔 <두지(豆知)>가 와서 고개에서 막아섰

      다 패하여 성안으로 들어가고 나오 았더니그 성을 포위는 하였었으나, 빼앗지는 못했다.



八年辛卯...五月, , 與后如溫湯, 飮酒而崩. , 東宮, 在西練兵, 聞報而至. 上已不能言命, 后傳璽而崩.

     東宮號泣而卽位於溫宮殯殿, 寶算十八. 嗚呼, 上以仁明, 好德之姿, 精通物人之心, 而自幼好色沈酒, 無意

      於世. 政之大者委於<觧克>, 細者委於<淵鞱>, 而使東宮監之. 至是, 中酒而棄民, 惜哉. 春秋四十九. 葬于

       <故國壤(羊角山之東)>.

 


8(단기2724/AD391) 신묘...5, 상이 후와 함께 온탕에 가서 술을 마시다 죽었다. 이때 동궁은 서쪽에서 군

     병을 조련하다가  식을 듣고 도착하였으나, 상은 이미 말로 명을 내릴 수 없었으며, 후가 옥새를 전하자 죽었다.

     동궁은 울부짖으며온궁』의 빈전에서 즉위하였다. 보산 18세였다. 슬프다.

 

   상은, 어질고 사리에 밝았으며, 덕행 하기를 좋아하는 성품이었고, 세간의 인심에 정통하였었으나, 어릴 적부터

   호색하고 술에 젖어 세상사에 뜻이 없었더니, 정사에 있어서는 큰일은 <해극(觧克)>에게 맡기고, 작은 일은 <

   도(淵鞱)>에게 맡겼으며, 동궁을 시켜서 이들을 감독하게 하였었다. 이때에 이르러 술 마시다 백성을 저버렸으

   니 애석하였다 할 것이다. 춘추 마흔 아홉이었고,  <고국양(故國壤; 옛 나라의 평양 땅) (양각산지동)>에 장사하

   였다.

 



<19세 영락대제>

元年辛卯, 六月, 葬大行于<故國壤(羊角山)>, 禁殉葬及珍宝, 只置烟戶及碑以記功德.
원년(단기2724/AD39) 신묘, 6월 대행을 <고국양(故國壤) (양각산)>에 장사하였다.

    순장을 금하고 진귀한 보물도 부장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단지 연호(烟戶=守墓人)를 두고 공덕을 기록한 비석

    ()만을 세우하였.



五年乙未, 二月..., <卑離>漸違王化, 親征<叵山><冨山><負山><鹽水>, 破其部落七百余所,

      牛馬羊豕万数. 二后亦騎馬而從上. , <>后有身止之, 而不聼. []生女, 名以<三山>.  八月, <眞武

       >又乘虗入寇. , 以七千騎馳<浿水>, 虜獲八千余級.  <末曷><><悉直>.  十一月, <>, 欲雪

       <浿水>之恥, 將七千人過<漢水><靑木岺>, 遇大雪多凍死, 廻歸<漢城>而勞軍.

 

5(단기2728/AD395) 을미, 2... 상은 <비리(卑離 : <弱水><西扶餘>)>가 점차 왕의 가르침을 어기

     기에, 친히 <파산(叵山)><부산(冨山)><부산(負山)>을 정벌하여 <염수(鹽水; <甘肅><祁連山> 또는 <合黎

     山>부근의 <鹽池>)>까지 이르면서, 그들의 부락 700여 곳을 깨뜨렸고, 돼지를 노획한 것이 만으로

     되었다.

 

   두 후 역시 기마하여 상을 따랐다. 상이 <()>후는 임신 중이라 말렸는데도 듣지 않았으며, 돌아와서 딸을 낳았

    더니, (이세산이름을 따서) 이름을 <삼산(三山)>이라 하였다.  

 

   8, <진무(眞武)>가 또 빈틈을 노려 쳐들어오니, 상이 기병 7천을 몰아 <패수(浿水) (或沮水)>위()쪽에서 8

   여 급을 노획.  <말갈(末曷)><신라(羅)><실직(悉直)>을 침입하였다.  11, <아신(莘)><패수(浿

   水) (或沮水)>수치를 설욕하려 7천병으로 <한수(漢水 : 그림36)>를 건너 <청목령(靑木岺)>에 이르렀다가,

    큰 눈을 만나 많은 이가 얼어 죽으니, 군사를 돌<성(漢城)>으로 돌아가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六年丙申, 三月, 躬率水軍討<帶方><>, 下十餘城, 質其弟而歸.  五月, <>使來献圡物及美女五人,

     以求仙籙』.
6년(단기2729/AD396) 병신, 3, 상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대방(帶方)><백제(濟)>를 토벌하여, 10여성

     을 함락시키그 동생을 인질로 잡아 돌아왔다.  5, <왜(倭)>가 사신을 보내 토산물과 미녀 5명을 바치고서

   『선록 (仙籙=仙道관련 서적) 』달라고 하였다.



七年丁酉, 正月, 大閱于<杜訥原>, 以驍勇爲貴, 不貴宂多.
7년(단기2730/AD397) 정유, 정월, <두눌원(杜訥原)>에서 크게 사열하고, 날쌘 말과 용맹한 이를 귀하게 쳤

     더니, 귀하지 않는 자가 지나치게 많았다.


八年戊戌, 三月...遣師<北㹮>, <莫斯國><加太國>, 男女三百人約修歲貢牛羊.
8년(단기2731/AD398}무술, 3...군사를 <북맥{北㹮}>{}으로 보내 <막사국{莫斯國}><가태국{加太

     國}>을 초략하였더니, 남녀 300사람이 소와 양으로 세공{歲貢}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다.



十年庚子, 二月, <慕容盛>引兵三万來侵<新城>, 先鋒<>迂入<南蘇>. , 引精騎八千, <><鵠林

      >, 大破之. <><龍臣>, 大戦于<新城>, 追擊于<>, 斬獲甚多. , 仍擊<章武>以西, 拓地七百余

      里, 徒戶五千余而還. <><>, <胥狗><觧猩>等將五万, 徃救退<>. <任那><安羅><加洛

      >等皆遣使來朝. 南方悉平.


10{단기2733/AD400}경자, 2, <모용성{慕容盛}>3만병으로 <신성{新城}>에 침입하였고, 선봉인 <

     용희{}>는  <남소{南蘇}>로 돌아서 들어왔다. 이에 상은 정예 기병 8천으로 <곡림{鵠林}>에서 <모용희>를 쳐

     서 대파하였고, <붕련{朋連} ><룡신{龍臣}><신성>에서 큰 싸움을 벌이고 <{}>의 위{?}쪽까지 추격

     하여 매우 많은 이들을 목 베고 붙잡았다.

 

    상은 거듭 <장무{章武}>의 서쪽을 쳐서 700여 리의 땅을 넓혔으며 5천여 호를 옮겨 놓고 돌아왔다. <{}>

    <신라{}>침입했다는 소식에, <서구{胥狗}><해성{觧猩}> 등을 보내 5만병을 끌고 가서 구원해 <{}

    >를 물러나게 하였다. <임나{}><안라{安羅}><가락{加洛}> 등 모두가 사신을 보내 입조하였다. 남방이

    모두 평정된 것이었다.



十二年壬寅, 二月, <>太子于<金城>, <奈密>, <宝金><>, <天星><>. 四月, <朋連

      ><龍臣><><契丹>, 虜其主<烏貴>, <句麗><大棘>等城. 仍擊<慕容歸><宿車>, 斬其先鋒.

     <段開歸>棄城西走, <>走保<遼隧>. <遼東>悉平. , <>太后于<鸞宮>, 大宴三日...九月, <東明

     大祭>. <><><><><><><><>八國之姬, 呈舞吹歌. 有國以來, 初有之盛典也.


12{단기2735/AD402}임인, 2, <{}>태자를 <금성{金城}>으로 보내 <내밀{奈密}>을 조상하고, <

     금{宝金}><신라{}>의 주인으로 <천성{天星}><신라>의 비로 책봉하였다. 4, <붕련{朋連}><룡신{

     臣}><서구{胥狗}> 등을 보<거란{契丹}>을 정벌하여 그 주인 <오귀{烏貴}>를 사로잡고, <구려성{句麗

     城}><대극성{大棘城}> 등을 빼앗았다.

 

     내친김<모용귀{慕容歸}><숙거{宿車}>에서 치고, 그 선봉을 참하였다. <단개귀{段開歸}>는 성을 버리고

     서쪽으로 도망하였고,  <{}>도 도망하여 <요수{遼隧, 或遼隊}>를 지켰다. 이리하여 <요동{遼東}>이 모두

      평정되었다.

 

     상이 <{}>태후를 모시<란궁{鸞宮}>에서 3일간 큰 연회를 열었다...9, <동명대제{東明大祭}>를 거행

     하였다. <{}><신라{}><{}><{}><{}><{}><백제{}><가야{}>의 여덟 나라

     여인들이 춤사위를 올리고 곡을 불어 바쳤다. 나라가 있어 온 이래 처음으로 있었던 성대한 제전이었다.



十七年丁未...二月...<朋連><觧猩>, 引兵五萬, <慕容熙>, 戰于<章武>之西. 殺蕩盡, 獲鎧甲萬領,

     資器械不可勝数. <沙溝>等六城. 四月, <><>[].  七月, <慕容雲><>爲王, 戊戌朔[日有

     食之].  <馮跋><高雲>等殺<>而來謝約貢.


17{단기2740/AD407}정미...2...<붕련{朋連}><해성{觧猩}>에게 명하여 5만병을 이끌고 나가 <모용

     희{慕容熙}>치게 하였더니, <장무{章武}>의 서쪽에서 싸웠다. 모조리 죽여서 쓸어 내고, 개갑{갑옷} 만 벌을

      노획하였으며, 군자{전쟁물자} 및 기계{무기류}는 그 수를 셀 수도 없었다. <사구{沙溝}> 등 여섯 성을 빼앗았

      다.  4, <>의 처 <>[]가 죽었다.  

 

     7, <모용운><>를 죽인 후 왕이 되었으며, 초하루 무술 날에 일식이 있었다.  <풍발{馮跋: 北燕太祖文成

     帝: AD409-430} ><고운{高雲: 北燕惠懿帝:AD407-409}><모용희{熙: 後燕昭文帝;AD401-407}>를 죽

     이고 나서 찾아와 용서를 빌고 조공을 약속하였다.



二十年庚戌, 正月, 議伐<馮跋>. <東扶餘>, 報至, 因伐<餘城>虜其王<恩普処>而還. 六十四城千四百餘

     村, 皆置新主. 以是, 停攻<>之事.
20{단기2743/AD410}경술, 정월, <풍발{馮跋> 정벌을 의논하던 중에, <동부여{東扶餘}>가 반란하여 그

     보답으로 <여성 {餘城}>을 토벌하고 그 왕 <은보처{恩普処}>를 붙잡아서 돌아왔다. 641,400여 촌락의 우

     두머리 모두를 다른 이들로 갈아치웠다. 이 일로 <풍발{}>을 치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二十一年辛亥, 正月, <馮跋>, 遣使來貢, ;“, 受先臣<高雲>之遺詔而継立, <>女爲妻. 世爲祖國之

     臣. 勤修土物以献, 芹誠.”
21{단기2744/AD411}신해, 정월, <풍발{馮跋}>이 사신을 보내와서 아뢰길; “신은, 앞선 신하였던 <고운

     {高雲}>이 남긴 조서를 좇아 보위를 이었고, <고운{}>의 딸을 처로 삼았습니다. 세세토록 조상 나라의 신하

     가 되겠습니다. 삼가 저희 땅에서 나는 것들을 챙겨 바쳐서 정성을 표시합니다.”라 하였다.



二十四年甲寅, 五月, , 與太后, 如溫湯. 六月, <國襄陵>, 仍居<沸流>溫湯宮. 疾作, 召二后及東宮

      二妃, 傳位. , 固辞不得, 卽位於北都<朱留宮>. 七月, 上崩於<朱留宮>, 春秋三十九. <平陽>后殉

      之. 葬於<黃山>.


24{단기2747/AD414}갑인, 5, 상이 태후와 함께 온탕에 갔다. 6월엔 <국양릉{國襄陵}>을 찾아뵙고 <

     류{沸流}><탕궁{溫湯宮}>에서 머물다가, 병이 들자 두 후와 동궁 및 두 동궁 비를 불러서 전위하였다. 동궁은,

     고사하였으나 하는 수 없어, 북도 』<주유궁{朱留宮}>에서 즉위하였다. 7월에 상이 <주유궁>에서 죽었으

     니 춘추 서른아홉이었고, <평양{平陽}>후도 따라 죽었다. <황산{黃山}>에 장사하였다.

 



< 20세 장수대제>

元年甲寅...九月, 葬大行于<黃山>. <>太子作碑立之. , <天罡><>后入<鸞宮>飼鸞. 自八月,

     鸞集于<鸞宮>而不去, 乃復居西 都.
원년{단기2747/AD414}{갑인}...9, 대행을 <황산{黃山}>에 장사하고, <{}>태자가 비석을 만들어 세웠

      다. 상이 <천강 {天罡}>후 및 <{}>후와 더불어 <란궁{鸞宮; =西 都}>에 들어가서 란새{방울새?}들에게 먹

     이를 주어 길렀다. 8월 이래로 노란 란새들이 <란궁>으로 모여들더니 날아가지 않았다. 이에 다시금 서도

     거처하게 되었다.



二年乙卯, 正月, <宝金><腆支><馮跋>等遣使來貢. , 接見于<鎭南楼>, <>太子享之以配頒<東明

      曆>.
2{단기2748/AD415}을묘, 정월, <보금{宝金}><전지{腆支}><풍발{馮跋}> 등이 사신을 보내와서 공물

     을 바쳤다상이 <진남루{鎭南楼}>에서 접견하고는, <{}>태자에게 명하여 즐겁게 해주고 <동명력{東明

     曆}>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



八年辛酉...二月, <>太子, <西河>, 練兵.  <加洛><吹希>遣使來告立.  四月, <><><賀蘭><

      拓跋>. 使<>太子, 率仙師<折雨><封蟻>, 而去荅<賀蘭>. <賀蘭>, 似有觧帶之意, 願與帝會于<海漠

       >. 上欲許, <>太子諫之. 曰:“<><>, 以單騎, <王母><崑崙>. 以此観之, <海漠>, 門前也.

      以八月相逢.” 群臣危之, 上獨晏然.  五月, <>, 引軍三萬南下, 大閱于<川西>, <契丹>十二部落<

      奚>五部落, 徵其牛馬軍丁. <胥狗><梁王>鎭北大將軍, <華德>爲扈衛將軍.  八月, , <華德>

      , <盖馬><勾麗><賀蘭><月海>而還...


8{단기2754/AD421}신유...2, <{}>태자가 <서하{西河}>로 가서 병사를 훈련하였다.  <가락{加洛}>

     의 <취희{吹希} >가 사자를 보내와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4월에 <{}><탁발사{}><하란{賀蘭}>

     의 딸 <탁발{拓跋}>씨를 바쳐왔. <{}>태자를 시켜, 선사 <절우{折雨}><봉의{封蟻}>를 데리고, 가서

     <하란>을 답방하도록 하였다.

 

     <하란>은 해대{解帶; 허리띠를 풀, 또는 冠帶관계를 풀}할 의향이 있어 보였으며, <해막{海漠}>에서 제와 만나

     기를 바랐다. 이에 상은 허락하고자 하였고, <{}>태자가 말렸더니, 상은 “<{}><{}>왕은 단기{單騎

     =혼자서}로 가서 <곤륜{}>에서 <왕모{王母=할미}>를 만났소. 이것에 비하면, <해막>은 바로 문 앞입니다.

     8월에 만나자고 약속하시오.”라 하였다.

 

     많은 신하들은 위험하다 여겼고, 상 혼자만 느긋해하였다.  5, <서구{胥狗}>3만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

     서{川西}>에서  크게 사열하고, <거란{契丹}> 12부락과 <{}> 5부락에게 요구하여 그들의 우마{牛馬}와 군

     정{軍丁}을 징발하였다.

 

     <서구><양왕{梁王}>진북대장군으로 봉하고, <화덕{華德}>을 호위장군으로 봉하였다.   8, 상이 <화덕

     {華德}>과 함께 <개마{盖馬}>에서 <구려{勾麗}>로 들어가 <하란{賀蘭}><월해{月海}>에서 만나고 돌아왔

     다.



九年壬戌...二月, , <天竜>, 親耤而宴國中老農五十人, 巡視四學.  改築平壤城修宮室...
9{단기2755/AD422}임술...2, 상이, <천룡>후와 함께, 친히 땅을 일구고는 나라{도성} 안의 나이 든 농부

     50인에게 연회를 베풀었으며, 4{敎學, 軍學, 藝學, 政學}을 순시하였다.  평양성{平壤城}을 고쳐 쌓고 궁실

    도 수리하였다...



十一年甲子, 正月, 溫湯. , 溫泉有九. 北都有東西溫泉, <中川><獣林><獣林>溫泉, 東都

     溫泉冷泉, <汗南>亦二溫泉, <勾茶>亦有二溫泉.
11{단기2757/AD424}갑자, 정월, 온탕에 갔다. 이 시절, 온천은 아홉 곳이 있었다. 북도{=丸都}엔 동쪽

     온천과 서쪽 온천이, <중천{中川}><수림{獣林}><수림>온천이, 동도{=初都}엔 온천과 냉천이, <한남{

     南}>에도 두 곳의 온천이, <구다 {勾茶}>에도 두 곳의 온천이 있었다.



十二年乙丑...五月, <><勃勃>, 遣使來貢, 尋死.
12{단기2758/AD425}을축...5, <{}><혁연발발{勃勃=赫然勃發}>,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바쳤

     는데, 얼마 후에 죽었다.



十四年丁卯, 二月, 移居于平壤新宮. 宮殿府司之規模雄壮, 有國以來初有也..., 以不爽居此金殿,

      何以報答<>.
14{단기2760/AD427}정묘, 2, 평양{平壤}의 새 궁으로 이거하였다. 궁전과 관사 규모의 웅장함이 나

     라가 있어 온 이래로 처음이었다...짐은 이렇게 금으로 지은 궁전에 머물기가 마음이 개운하지 않소. 장차 <동명

      >께 어떻게 보답한단 말이오....



十六年己巳, 正月, , <卒本>, <東明聖皇><芻牟大帝>, <琉璃明皇><光明大帝>, <朱留神皇>

      <大武神帝>, <國祖仙皇><神明仙帝>, <太祖上皇><太祖皇帝>.


16{단기2762/AD429}기사, 정월, 상이, <졸본{卒本沸流谷}>으로 가서< 동명성황{東明聖皇}><

     모대제{芻牟大}>, <유리명황{琉璃明皇}><광명대제{光明大帝}>, <주유신황{朱留神皇}><대무신

     제{大武神帝}>, <국조선황{國祖仙皇}><신명선제{神明仙帝}>, <태조상황{太祖上皇}><태조황제{

     太祖皇帝}>로 존호하였다.



十七年庚午, 九月, <馮跋>. <>, 遣使來朝.  十月, <燕王><朋連>, 年八十. <朋連><多連

      >襲封<燕王>, 使<南蘇>.
17{단기2763/AD430}경오, 9, <풍발{馮跋}>이 죽었다. 동생인 <풍홍{}>이 보위에 오르고, 사신을 보

      내 입조하였.  10, <연왕{燕王}><붕련{朋連}>이 나이 80에 죽었다. <붕련>의 아들 <다련{多連}>에게 <

      연왕>을 세습하여 봉하고 <{南蘇}>를 지키게 하였다.



十九年壬申, 三月, <>, 人無穀食松皮, 賜粟二千斛.
19{단기2765/AD432}임신, 3, <신라{}>에서는 사람{백성}들이 곡식이 없어 소나무 껍질을 먹기에,

     {좁쌀} 2천 곡{=10==}을 하사했다.



<長壽>元年癸酉...七月, <齊王><>太子薨, 年七十四...以太王禮, 葬之<國內>. 儒者之遠來, 縞素

      者十萬計焉. 以其子<春鹿>爲瓊叢大夫, 女婿<談胤><齊王>以嗣之.


<장수{長壽}>원년{단기2766/AD433}계유...7, <제왕{齊王}><{}>태자가 74살에 죽었다...태왕{太王}

      의 예로 <국내 {國內}>{성 또는, 도성 안}에 장사하였다. {}{}{}자들이 멀리에서도 찾아왔으며,

     흰 옷 입은 이가 10만이나 되었었다. {=태자}의 아들 <춘록{春鹿}>을 경총대부로 삼고, 사위 <담윤{談允:

     =德同腹弟}><제왕>의 자리를 잇게 하였다.



二年甲戌, 二月, <梁王><胥狗>, 入朝, 請與其妻<天龍>偕歸, 許之...七月, <鐥善>使來朝献馬及駝孔雀,

     厚慰以送之. <>有侵意, 故聞我爲<>之兄, 而來求救援也.  八月, <>來献不老酒. 西域葡萄水也.

      年而熟, .
<장수{長壽}>2{단기2767/AD434}갑술, 2, <양왕{梁王}><서구{胥狗}>가 입조하여 자신의 처 <천룡{

     龍}>과 함께 해{偕老}하다 돌아가겠다고{죽겠다고} 청하였고, 허락되었다...

 

     7, <선선{鄯善}>의 사신이 래조하여 말과 낙타 및 공작을 바쳤기에{그림48}, 후하게 위안하여서 돌려보냈다.

     <{}>가 침입할 뜻이 있음에, 우리가 <{}>에게 형이 되는 나라임을 알고, 찾아와서 구원하여 주기를 청

     하였던 것이었다. 8, <>가 찾아와서 불로주를 바쳤다. 서역{西域}의 포도즙을 천 년 동안이나 익힌 것이라

      하였다.



六年戊寅, 三月, <><義隆>相通. <義隆>, <白駒><次興><具義>, 引衆数千人, 舶于<平郭>

      海. <龍具義><孫人漱>等擊殺之, 奪其船七十八艘.  五月, , 欲與<>共伐<義隆>, <胥狗>諫止之.


<장수{長壽}>6{단기2771/AD438}무인, 3, <탁발홍{}><의륭{義隆=宋太祖文帝;AD424-453}>

      상통하였다. <의륭><백구{白駒}><차흥{次興}><구의{具義}> 등을 보내서 무리 수천을 이끌고 <평곽{

      郭}> 앞 바다{또는, 너른 물}큰 배를 정박하였다. <룡기{龍杞}><손인수{孫人漱}> 등에게 명하여 그들을

      격살하고 그들의 배 78{}를 빼앗았다. 5, 상은, <{}>와 함께 <의륭>을 정벌하려 하였다가, <서구{

      狗}>가 말려서 그만두었다.



十二年甲申, 二月, 率后妃及諸王子, <卒本><西城山>, <東明大祭>. , 謂諸王子, ;“爾曹, 宜知<

      明>之茅茨, 友爱而孝祖, 國源長久矣.” <勇德><越王>.  四月, 分送<東明>神像于<><>

      <>. <>, 入來囲<金城>, 糧盡而去. <訥祇>追擊.


<장수{長壽}>12{단기2777/AD444}갑신, 2, 후와 비 및 여러 왕자를 데리고 <졸본{卒本}><서성산{西城

     山=始國處!}>엘 가서 <동명대제{東明大祭}>를 지내고서, 상이 여러 왕자들에게 이르길; “너희들 모두는 <동명

      >께서 검소하시고 먼 곳을 바쁘게 돌며 고생하셨음{櫛風沐雨;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목욕함}과 우애 있게

     지내고 조상에 효도하는 것과 나라의 근원이 오래 되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용덕{勇德}>

     을 <월왕{越王}>으로 봉하였다.  

 

     4, <동명{東明}>신상을 <{}><신라{}> <백제{}>에 나누어 보냈다.  <{}>가 들어와서 <금성

     {金城}>을 열흘 동안을 포위하고 있다가 먹을 것이 떨어져서 물러나자, <눌기{訥祇}>가 추격하였다.



二十三年乙未, 二月, <><駿>來告喪献方物, 遣長史<董騰>徃吊之.
<장수{長壽}>23{단기2788/AD455}을미, 2, <{}><유준{駿=宋世祖孝武帝}>이 찾아와서 상{}

     이 났음을 알리고 방물을 바치기에, 장사{長史} <동등{董騰}>을 보내어 가서 조문하게 하였다.



二十五年丁酉... <越王><勇德>, 年八十一. 賜其妻<胡連>年穀.
<장수{長壽}>25{단기2790/AD457}정유...<월왕{越王}><용덕{勇德}>이 나이 여든하나에 죽어, 그의 처 <

     호련{胡連}>게 매년 곡식을 내려 주도록 하였다.



三十一年癸卯...四月, <>, 使<藩雲>, 献玉器·薬材七十事...九月, <西河>宴豊, <奉天臺><人濟

     院>.
<장수{長壽}>31{단기2796/AD463}계묘...4, <{}><번운{藩雲}>을 시켜 찾아와서 옥기와 약재

      70 가지를 바쳤...9, <서하{西河}>로 가서 풍년 축하 연회를 베풀고, <봉천대{奉天臺}><인제원{人濟

      院}>을 설치하였다.



三十二年甲辰...五月..., <勇德祀>, 惻然良久,命改<勇德陵>, <胡景><越王>. , 漸老, 容皃聲

     音益肖<勇德>, 寬勤腆實之性亦似<勇德>, 食性亦頗相似<龍彦>. 以爲癸巳五月, <勇德>因驟雨躍入<

     昜{=}>, 因宮之午睡而潛烝而生帝. <平昜{=}>, <永樂>之怒, 而諱之, . <馬連><胡連>亦甞有

     聞, . , 常疑其眞假, 至是, 遂有尊<勇德>.  四月, <>妃生女<>公主.  五月, <>太子, 追尊

     <勇德>爲帝. <>, 以爲密事不可發, 而諫之.  <道琳><>採其虗實.


<장수{長壽}>32{단기2797/AD464}갑진...5...상이, <용덕{勇德}>의 사당엘 갔다가 처연하여 말없이 있

     더니만, 명을 내<용덕{勇德}>의 무덤을 고치게 하고 <호경{胡景}><월왕{越王}>으로 삼았다. 상은, 점차

     늙어 가면서, 용모와 목소리는 점점 <용덕>을 닮아 갔고, 너그럽고 부지런하며 후하고 꽉 찬 성품 또한 <용덕>

     과 비슷하였으며, 식성 또한 꽤나 <룡언{龍彦}>과 서로 비슷하였다.

 

     계사년{=영락3/단기2726/AD393} 5월에 <용덕>은 내리는 비를 피하여 종종 <평양{平昜=平陽}>후의 궁

     으로 뛰어들었었으며, 그리하여 궁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였었고, 몰래 증하였다가 제를 낳았는데, <평양{平昜

     =平陽}><영락{永樂}>의 노여움을 겁내어 이를 숨겼으며, <마련{馬連}><호련{胡連}> 또한 일찍이 들어

     서 알고 있었다고도 한다.

 

     상은 늘 이의 진실인지를 의심하여 오다가, 이때에 이르러 결국 <용덕>을 존숭하려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이었

     다.  4, <{}><{}>공주를 낳았다.  5, <{}>태자에게 <용덕{勇德}>을 제{}로 올리라 명하였

    더니, <>은 숨겨진 일이었고 드러냄은 불가하다고 여기어서 이를 말렸다.  <도림{道琳}><백제{}>로 보

    내서 그들의 허와 실을 염탐하게 하였다.



三十六年戊申, 二月, <末曷>兵一万, <悉直城>, 拔之.
<장수{長壽}>36{단기2801/AD468}무신, 2, <말갈{末曷}>1만으로 <실직성{悉直城}>을 빼앗았다.



三十九年辛亥, 正月, 擧茂才, <烏鳞>等八人.  二月, <西河>祭農壇, 親耕.  遣將軍<淵吉><胡海>,

     將兵三萬與<肅愼>軍三千, <室韋><北海>. 拓地二千餘里, 獲其金人十二而還.


<장수{長壽}>39{단기2804/AD471}신해, 정월, 재능 있는 인재를 천거 받아 <오린{烏鱗}> 등 여덟 사람을

     뽑아 들였다.  2, <서하{西河}>로 가서 농단{農壇}에 제사하고, 친히 땅을 일구었다.  장군 <연길{淵吉}><

     호해{胡海}> 등을 보내서 3장병과 함께 <숙신{肅愼}>3천을 거느리고 <실위{實韋}>를 쳐서 <북해{北海:

     바이칼호?}>에 이르렀다.  2천여 리의 땅을 넓히고 금인{金人像?} 12개를 노획하여 돌아왔다.



四十年壬子, 正月, <柔然>遣使來献土物.
<장수{長壽}>40{단기2805/AD472}임자, 정월, <유연{柔然}>이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쳐 왔다.



四十一年癸丑, 二月..., <>多文功, 封爲<吳王>, ;“, <>太伯也.”...<慈悲>, <伐智><德智

     >爲左右將軍而葺<明活城>, 欲遷都又築<一牟><沙尸><廣石>等等城. <伐智><德智>, 曾來西 都

    學者也, 多與<西 都>人及<>人等相通, 漏聞<伯濟>必亡之說, 而自備也.


<장수{長壽}>41{단기2806/AD473}계축, 2...상은 <{}>이 문공{文功}을 많이 세웠음에 <오왕{

     王}>을 봉하면서  “는  이제 <{}>에서는 최고의 우두머리다.”라 일렀으며...<자비{慈悲}><벌지{

      智}><덕지{德智}>를 좌우 장군으로 삼아<명활성{明活城}>을 고쳤으며, 천도하고자 또 <일모{一牟}>

      <사시{沙尸}><광석{廣石}> 등등의 성을 쌓았다.

 

   <벌지><덕지>, 일찍이 서도로 와서 머물며 공부한 자들이어, 많은 서도사람들과 그리고 <{}>인들

   과도 자주 교통하여 <백제{伯濟}>가 필경 망할 것이라는 흘러나온 소문을 듣고는, 자신들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

    다.



四十二年甲寅, 二月, 大閱于<黃山>, <梁王><華德>爲征南大將軍, <><>等爲鄕導先鋒.  七月,

    上, <朱留宮>, 而還至<><永樂>大祭, 謂宗室三輔, ;“先帝, 欲雪<國罡>之恥, 而天不假壽. ,

    養兵待機, 已久. , 其期已. 兒童皆唱, <伯濟>骸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