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고사(上古史)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 川前里 刻石) - 국보 제147호

야촌(1) 2020. 5. 2. 00:53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 川前里 刻石)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 그림 유적이다. 국보 제147호이다.

dadapoem[2020.04.30]

 

동국대학교 박물관이 울산지역의 불교관련 유적을 조사하면서 1970년 12월 25일에 발견했다. 삼국시대에 새긴

글씨도 함께 있다.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옛 이름은 반계)의 중간 지점에 있다. 유적언저리에는 강가의 좁은 계곡을 따라 자연 바위벽이 가파르게 서 있는 곳이 많고 유적에서 8㎞ 떨어진 곳에 대곡리(반구대) 바위그림유적이 있다.

 

이곳 계곡은 울산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이며 뱃길을 따라 경주로 들어갈 수도 있어 선사시대는 물론 삼국시대에도 주요길목의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선사시대 바위그림과 신라 화랑이 남긴 글씨가 남아 있게 된 것도 그 까닭인 듯하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연한 갈색 켜바위로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기 좋은 무른 암질이다. 바위면은 높이 2.7m, 너비 9.5m 크기에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으며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의 내용을 보면 바위 위쪽에는 기하무늬·동심원·회오리무늬 등과 함께 동식물·사람을 새겼고 아래쪽에는 동물·사람 및 글씨를 새긴 부분이 있다.

 

기하무늬는 마름모 꼴을 여러 벌 겹쳐 그린 것, 반달무늬, 세모꼴 무늬, 물결무늬 등을 볼 수 있다. 뱀을 닮은 짐승과 사슴을 비롯해 용이나 호랑이로 짐작되는 짐승도 보인다. 바위면이 떨어져나간 쪽이 많아 뚜렷한 모습을 알 수 없는 그림도 있다.

 

사람의 얼굴을 나타낸 가면도 있다. 아래쪽에는 말탄 사람과 그를 따르는 행렬을 표현한 것을 비롯해 신라 화랑들이 새겨놓은 이름·간지·관명 등의 글씨가 있어 신라 금석문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바위그림의 연대는 그림내용의 추상성과 새긴 수법으로 보아 대체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글 출처 :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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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 각석(蔚州 川前里 刻石) - 국보 제147호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번지

 

선사시대의 암각화로 사냥하는 모습과 마름모꼴. 동심원.나선형 등 기하학적 문향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림 이외 신라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800여자의 명문도 남아있다.

 

천전리 서석’이라 불리우는 이 명문은 신라 법흥왕 때의 것으로 역사책에도 등장하는  영랑’ ‘수풍’이라는 화랑의 이름을 비롯 많은 삶들의 이름과 관등명 등이 새겨져 있다. 초기 신라시대 역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로 이용된다.

 

특히 진흥왕의 아버지가 이 계곡을  서석곡’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오늘날에도 이 계곡은  서석곡’이라고 불리운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와 더불어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의 생활모습과 종교관을 알려주는 암각화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또 태화강 물줄기인 내곡천 중류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에는 위. 아래.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하다. 윗단에는 쪼아서 새기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이 조각 되어 있다.

 

사실성이 떨어지는 단순화된 형태인데 중앙부의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네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과 맨 왼쪽의 반인반수(半人半獸 =머리는 사람. 몸은 동물인 형상) 상이 눈에 띈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는 듯한 이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여진다.

 

아랫단은 선을 그어 새긴 그림과 글씨가 뒤썪여 있는데, 기마행렬도. 동물. 용. 배를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기마 행렬도는 세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간략한 점과 선 만으로도 그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배 그림은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라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800자가 넘는 암각 명문은 왕과 왕비가 이곳을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대에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 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 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어느 특정시대를 대표한다기 보다 여러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