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리지(地理志)

경상감영(慶尙監營)

야촌(1) 2020. 1. 3. 15:29

경상감영(慶尙監營)은 조선의 지방 행정의 8도제하에 경상도(慶尙道)를 관할하던 감영(監營)이다.

 

오늘날의 도청(道廳)과 같은 역할을 했다. 조선초기에는 경주(慶州)에 소재하던 것이 상주(尙州), 팔거현, 달성군, 안동부 등지를 옮겨 다니다 선조34년(1601년), 관찰사 김신원(金信元) 때, 최종적으로 대구로 이전되어 정착하였다.

 

이후 고종(高宗) 33년(1896년) 갑오개혁으로 지방행정을 13도제로 개편한 뒤에도 경상북도(慶尙北道)의 중심지였다. 

1910년 경상북도청사로 개칭하였다. 1966년 경북도청을 포정동에서 산격동으로, 2016년에는 안동시로 신축 이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2017년 4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38호 대구 경상감영지로 지정되었다

 

 

 

 

 

 

 

 

 

 

↑관찰사의 집무실 선화당(宣化堂)

 

선화당(宣化堂)은 경상감영의 관청으로 관찰사(오늘날의 도지사)가 집무를 보던 곳이다.

본래 달성(達城)에 설치되었다가 안동으로 잠시 이전했던 경삼감영을 선조 34년(1601)관찰사 김신원(金信元)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현재 경상감영 터에는 선화당과 징청각(澄淸閣)만 남아있지만, 객사(客舍), 군창(軍倉), 형장(刑場) 등이 있었다.

 

그 후 선화당은 현종11년(1670) , 영조6년(1730), 순조 6년(1806) 세 차례에 걸쳐 큰 불로 소실(燒失)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7년(1807) 관찰사 겸 부사인 윤광안(尹光顔)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후일 경상북도의 도청으로 사용되다가 1969년 도청이 대구시 북구 산격동으로 이전하고 1970년 중앙공원을 조성하면서 보수한 것이다.

 

그리고 선화당 뒤편의 징청각(澄淸閣)은 경상감영의 관찰사 처소(處所)로 쓰이던 것으로 안동에 있던 감영을 대구로 옮겨올 때 선화당과 함께 지어졌다. 그 후 선화당과 함께 화재로 불탔던 것을 역시 순조 7년(1807)에 중건하였고 중앙공원 조성 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감영의 선화당은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 작 기와지붕으로 되어있으며, 단촐 하면서도 엄정한 격식이 느껴진다. 징청각은 정면 8칸, 측면 4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관칠사가 기거하던 징청각(澄淸閣)

 

징청각(澄淸閣)은 경상도 관찰사의 살림채로 쓰던 건물이다. 조선 선조 34년(1601)에 선화당, 응향당 등 여러 건물과 함께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8칸·옆면 4칸으로 넓이가 무려 227㎡나 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징청각은 선화당과 함께 대구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관아건물로 중요한 문화재이다. ​ 

 

  ↑경상감영의 징청각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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