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우리나라 유적유물

영산강 고려 나주선 유물(榮山江高麗羅州船遺物) 공개

야촌(1) 2019. 10. 31. 19:56

영산강 고려 나주선 유물(榮山江高麗羅州船遺物) 공개

 

 

↑나주선 고물쪽의 만곡재(彎曲材) 및 외판(外板)

 

“저거 심상치않은 나무인데..., ” 2004년 3월31일 전남 나주의 윤재술씨(당시 62세)는 갈수기에 강바닥이 훤히 노출된 영산강변을 산책하다가 이상한 나무를 발견했다. 윤재술씨는 5년 뒤인 2009년 제30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에서 공예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장롱·반닫이·문갑 등을 만드는 장인(소목장)이다.

 

대번에 심상치않은 나무임을 알아차린 윤씨는 이 사실을 나주시문화원에 알렸다. 

당시 수중발굴 전문가인 안재철 남도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의 조사결과 이 나무는 고려 전기의 선박 부재인 ‘배 왼쪽 뒷부분 만곡부(배의 밑바닥판과 외판을 연결해주는 ㄴ자 부재)’ 편과 외판 편으로 확인됐다. 

 

이후 긴급조사 끝에 ‘배 오른쪽 앞부분의 만곡부’ 편과 저판재까지 추가로 찾아냈다.

 

 

↑최초 발견된 선편(船片), 이물쪽 우현의 저판재(底板材)

 

2004년 소목장인 윤재술씨가 산책 중 우연히 발견한 고려 초기의 선박인 ‘고려 나주선’. 이를 복원하면 길이 최대 42m에 200t이 넘는 대형선박일 가능성이 높다. 길이 9m가 넘는 배 밑바닥 판재.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실어나르는 조운선일 수도 있고, 태조 왕건이 나주 공략에 나설 때 탔던 지휘선일 수도 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런데 찾아낸 부재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배 왼쪽 뒷부분의 만곡부’ 편은 길이가 466㎝, ‘배 오른쪽 앞부분 만곡부’편은 560㎝나 됐다. 추가로 찾아낸 저판재(배 밑바닥 판)의 크기는 920㎝에 이르렀다. 이 배에는 ‘고려 나주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찾아낸 부재 등을 토대로 복원할 경우 ‘고려 나주선’의 원 크기는 길이가 최대 42m에 200t에 달하는 대형선박으로 추정됐다. 

 

이 배는 군산 십이동파선(2003년 발견·11세기 후반~12세기 초반)과 완도선(1984년 발견·12세기초), 목포 달리도선(1995년 발견·14세기)등과 유사한 구조와 형태로 보인다. 몇가지 추정이 가능했다. 먼저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개경까지 실어나르는 조운선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려사> ‘식화지·조운조’는 “각 조창(漕倉·세금으로 거둔 현물을 모아둔 창고)에는 6척의 조운선이 있는데 아울러 1척에 1000석의 곡식을 싣는 초마선(哨馬船)을 두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200t에 이르는 ‘고려 나주선’은 초마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태조 왕건이 탔던 군선일 가능성에 모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궁예의 휘하 장수였던 왕건은 903년 수군을 거느리고 후백제 배후인 금성 등 10여 군현을 함락시킨 뒤 금성을 나주로 고쳐 불렀다.

 

왕건은 인근인 진도까지 차지했고(909년), 나주 재탈환을 위해 공격해온 견훤군을 계속 물리쳤다(914년). 태조 왕건은 후백제 배후인 나주 등 전라도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고려 건국의 기틀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사>가 기록한 왕건의 군선 규모는 대단했다.

 

“태조가 군선 100여 척을 더 건조했는데, 그 중 10여 척은 각각 사방이 16보(步)이고, 망루를 세우고 말도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컸다. 태조는 군사 3000여명을 지휘하여 군량을 싣고 나주로 갔다.”(<고려사> ‘세가·태조’)

 

16보를 미터로 환산하면 29m 정도이다. 그렇다면 2004년에 발견된 ‘고려 나주선’(추정 길이 최대 42m)은 태조 왕건이 수군을 지휘하면서 탔던 대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려사> 기록처럼 망루는 세울 수는 있었겠다. 하지만 ‘말도 달릴 수 있었다’는 <고려사> 기록은 과장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배가 컸다는 비유의 표현일 것이다. 물론 ‘고려 나주선’은 고려말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선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2009년 나주시가 용역을 주어 20분의 1로 축소 복원한 ‘고려 나주선’. 그러나 정확한 고증에 따른 복원은 아니었

    다.

 

아무튼 유명 소목장에 의해 우연히 1000년 만에 발견된 이 ‘고려 나주선’은 나주의 한 폐교(영산포 서초등학교)로 옮겨져 그곳에서 보존처리 작업을 벌였다. 남은 밑바닥 판재만 9m가 넘는 대형선박의 부재였기에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공기 중 노출된 배의 부재는 갈라짐과 터짐 현상이 생겼지만 워낙 크기가 컸기 때문에 그나마 원형은 유지됐다. 

선체의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나무못은 상수리나무를 사용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보존처리를 마친 ‘고려 나주선’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로 옮겨왔고, 10월31일부터 나주 연구소 전시홍보관에서 전시한다. 전시장에는 길이 5~6m, 너비 30~50㎝ 정도의 배 만곡부재 2점과 길이 약 9m, 너비 약 60㎝의 저판재 1점 등 나주선 일부였던 조각 3점이 선보인다.

 

김병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과 전용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1000년 만에 빛을 본 영산강의 나주선을 보면서 그 배에 담긴 고려초기 역사를 더듬어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