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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서원(培山書院)

야촌(1) 2019. 5. 14. 18:16

배산서원(培山書院)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배양마을에 있는 서원으로 이원·이황·조식·이광우를 배향한 서원이다.

 

[소재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배양길 16(사월리/배양마을)

[관리자] 합천이씨 문중 

 

충선공(忠宣公) 문익점을 모신 도천서원이 사액(賜額)을 받자 덕연사로 모셔온 청향당(淸香堂) 이원(李源)과 죽각(竹閣) 이광우(李光友)를 1919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 등의 발의로 문묘와 도동사, 강당을 짓고 다시 모셔와 배산서원(培山書院)이라 하였다.  

 

이 서원에는 2개의 사당이 있는데 문묘에는 공자의 진영을 모셨고, 도동사에는 이원과 이황, 조식, 이광우를 배향하였으며 강당에는 중국의 정치사상가 강유위(康有爲)의 자필 현판과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성재 이시영(省齋 李始榮)· 우천 조완구(藕泉 趙琬九)·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의 낙성축문 편액이 걸려있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51호 배산서원(培山書院)

 

배산서원 외삼문인 숭인문(崇仁門), 우측엔 문화재 안내판이 보인다,

 

배산서원의 강당인 배산서당(培山書堂)이다, / 앞쪽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배산서원 안내문,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이 발의하여 1919년에 문묘와 도동사 그리고 강당을 짓고 배산서원이라 하였으며 문묘에는 공자의 진영을 모셨고 도동사에는 이원·이광우·이황·조식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이원(李源, 1501~1568)]

조선중기의 징사(徵士=학자)로 자는 군호(君浩), 호는 청향당(淸香堂). 본관(本貫)은 합천((陜)이다.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읽으며 과거와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아니하고 평생을 학문 연구에 바쳤다. 일찍이 조식(曺植)과 교유하여 뜻을 같이하였다. 이황(李滉) 과도  도의(道義)의 교를 맺고 내왕하면서 유교 경전에 관한 경의를 강질(講質)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전념 하였다.

 

1546년(명종 1)에는 이원의 학문이 고매하다하여 나라에 천거되어 곤양 훈도를 제수 받았으나 끝내 사양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채 세속과 인연을 끊고 은거생활을 하면서 학문연구에만 몰두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광우(李光友, 1529~1619)]

조선중기의 학자. 본관 합천(陜川). 자 화보(和甫), 호 죽각(竹閣). 아버지는 참봉 이잠, 어머니는 성주이씨 이계유의 딸. 어려서 백부인 이원에게 소학을 배웠고, 22세 때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어 백부의 구사재에서 이천경과 함께 성리대전을 읽다가 백부의 명에 따라 이황에게 이기론을 질문. 1592(선조 25) 임진왜란 때 초토사 김성일을 찾아가 용사인 전유룡을 추천. 백부와 스승인 조식의 서원을 신안과 덕천에 각각 건립, 1610(광해군 2) 5()이 제향된 것을 계기로 이언적·이황을 무함하고 배척한 정인홍에게 글을 보내어 동문 입장에 꾸짖었다.

 

신안서원의 학규(學規)를 논정(論定)한데 이어 남명학기를 고정(攷訂)하였으며, 1791(정조 15) 백부와 함께 배산사(培山祠)에 배향. 저서로는 죽각문집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배산서원(경남 문화재자료 51),. <사진 : 문화재청>

 

[배산서원]

도천서원에 모시고 있던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를 따로 모시기 위해 세운 서원. 이원은 벼슬이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연구를 한 조선 전기의 학자. 그는 조식·이황 선생과 학문의 뜻을 같이 하였으며, 명종 1(1546)에는 나라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념 하였다.

 

배산서원은 조선 영조 47(1771)에 덕연사만 세워 위패를 모셨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1868)에 철거. 그 뒤 1919년에 새로 지어 배산서당이라 하였다. 서원 안에는 문묘, 도동사, 강당이 있다.

 

문묘는 앞면 3·옆면 1칸 반 규모로 공자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도동사는 앞면 3·옆면 1칸 반 크기의 건물로 청향당 이원·퇴계 이황·남명·죽각 이광우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강당은 앞면 4·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안에는 중국 학자인 강유위가 쓴 현판과 백범 김구·성재 이시영·우천 조완구·백암 박은식 선생의 배산서당 낙성축문 현판을 보관하고 있다. 배산서원은 문묘와 도동사 등 사당이 2개 있어 다른 서원과 구별된다.  

<사진 : 문화재청>

 

[사월리(沙月里)]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리(). 대부분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있으며 남강과 남사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감나무정, 도평, 주막땀, 배미, 새동네, 유규산밑 마을 등이 있다. (중략배미마을은 신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문익점 면화시배지가 있으며 문익점 선생이 태어난 곳. (중략) 문화재로는 경남문화재자료 제51호인 배산서원, 문익점 목화시배유지 등이 있다. <출처 : 두산백과>

 

 

배산서원의 강학영역은 강당과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도산서원의 강당인 배산서당, / 앞면 5칸 옆면 2칸 팔작지붕 건물로 왼쪽 2칸과 오른쪽 1칸은 방을 들였습니다.

 

배산서당(培山書堂) 현판, / 중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강유위(康有爲, 1858~1927)의 글씨입니다. 

 

배산서당 대청입니다, 백범 김구성재 이시영·우천 조완구· 백암 박은식 선생의 배산서당 낙성축문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중국의 정치사상가 강유위가 쓴 배산서당기(培山書堂記)입니다.

 

독립운동가 이자 학자인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1859~1925) 선생의 배산서당 연기설(培山書堂緣起說)

   편액,

 

독립운동가 이자 정치가인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의 '축 배산서당 낙성(祝 培山書堂 落成)'

   편액,

 

독립운동가 이자 정치가인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선생의  '축 배산서당 낙성사(祝 培山書堂

   落成辭)' 편액

 

독립운동가 우천(藕泉) 조완구(趙玩九, 1880~1955) 선생의 배산서당 축하 편액,

 

배산서원 동재(東齋),

 

동재인 정립재(淨立齋) 현판, - 경상대학교 허권수(許捲洙) 교수의 글씨입니다.

 

배산서원 서재(西齋), 동재와 동일한 규모입니다.

 

동재인 의수재(猗修齋) 현판, - 경상대학교 허권수(許捲洙) 교수 글씨입니다.

 

배산서원의 도동사와문묘 입니다.

 

도동사 전경입니다., 사당의 뒷 편에 공자를 모신 문묘가 있는 것이 이색적입니다.

 

도동사(道東祠),

앞면 3칸 옆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건물로 청향당 이원, 죽각 이광우, 그리고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문묘(文廟),

  배산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인 도동사의 뒷 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공자의 진영(眞影)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배산서원 전경,

  경사진 대지의 높는 곳에서부터 문묘, 도동사, 강당 순으로 배치한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

  이며 특이한 것은 문묘와 도동사 등 사당이 둘이라는 것입니다.

 

복원유교지본사(復原儒敎之本山) ,

강유위의 손자 강보연(康保延)의 글을 새겼고 배산서원 앞쪽에 세워져 있습니다. 배산서원에는 최초의 민간이 세운 문묘가 있고, 이는 공자의 고장 중국 곡부(曲阜)의 공교회(孔教會)로부터 승인을 받은 한국공교회 지부입니다.

 

진암 이병헌의 저서 유교복원론(敎復原論),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유교복원론]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이 근대 유교개혁사상의 이론을 체계화 한 저서. 1. 1919년 중국 칭다오(靑島)의 동문인쇄국(同文印刷局)에서 작은 책자(60)로 간행된 활자본이 있고, 캉유웨이(康有爲)의 제자 왕량밍(王良鳴)의 서문(1925)이 붙어 있는 필사본이 있다. (중략)

 

이 책은 전환기에 전통 종교를 개혁해 근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시도로서, 한용운의 불교유신론과 견줄 수 있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병헌이 추구한 복원해야 할 유교의 원상은 유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전통 사상으로서의 유교는 항상 그 시대의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야만 그 본질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 현실 속에서의 재해석은 곧 미래를 지향하는 해석. 바로 이러한 점에서 유교복원론은 한국 근대 사상사에서 유교 개혁론의 참신한 시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배산서원에는 문묘(文廟)와 도동사(道東祠) 함께 있어서 문묘에는 공자의 지영을 모셨고, 도동사에는 이원과 이광우 그리고 이원과 교분이 두터웠던 이황과 조식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산서원은 중국 곡부(曲阜)의 공교회(孔教會)로부터 승인을 받은 한국공교회 지부이기도 합니다.

<사진 촬영 : 2018년 08월 18일(토)

[출처][경남 산청] 배산서원(培山書院)_도동사(道東祠)와 문묘(文廟) 두 사당이 있는 서원| 작성자 엽토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