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궁,정려,서원

대한문의 옛모습

야촌(1) 2019. 5. 11. 17:23

↑대안문(大安門)앞 고종의 어가행렬

 

↑대안문(大安門) 앞 고종의 어가행렬 후미 사진이다.

 

고종의 어가 행렬이 경운궁(慶運宮=덕수궁의 옛 이름) 대안문(大安門=지금의 대한문)을 나서는 사진이 2016년 8월 1일 공개됐다. 이 사진의 정확한 촬영 날자는 알 수 없으나 고종이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러시아공사관에서  1897년 2월 25일 경운궁으로 돌아온 후 대안문이 경운궁의 정문처럼 사용된 초기의 사진이다.

 

대한제국시절 고종이 환구단(圜丘壇)으로 제를 지내기 위해 나서는 행차 장면 모습의 사료적 가치가있는 귀한 사진이다. 미국인 새디(Sadie)가 촬영한 이 사진은 1904년 선교사 아서 G 웰번(Welbon, Arthur Garner, 한국명 : 吳越番, 1866-1928)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아서 웰번의 손녀인 프리실라 웰번 에비(Pricilla Welbon Ewy) 여사는 이 사진을 소장하다가  2016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압니다.

 

↑1896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안문(大安門) 모습

 

덕수궁 대한문(大漢門)의 옛 이름인 대안문(大安門)의 1890년대 모습이 사진연구가인 정성길(61) 대구 동산병원 명예박물관장에 의해 2006년 8월 20일에 공개됐다.

 

정성길 관장은 "1896년쯤으로 추정되는 대안문 사진을 한 옛 사진 수집가로부터 입수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하게 됐다"면서 "대안문(大安門) 앞에 커다란 돌 등이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고종의 황제 즉위(1897년) 전에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안문은 경운궁이 화재로 불탄 뒤 1906년 재건되면서 고종의 명에 따라 그 명칭이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1897년 10월 열린 고종황제 즉위 축하 인파가 대안문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대안문'은 덕수궁의 옛 이름인 경운궁의 정문으로, 1906년 고종황제의 명에 따라 재건되면서 명칭도 지금의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왼쪽 2층 건물은 프랑스인이 운영하던 팔레스 호텔.   <사진>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제공>

 

 

 ↑1919년 3월 3일 대한문을 나서는 고종황제의 영여(靈轝). 

 

↑1904년 경운궁 대화재당시의 사진 

'■ 보학 > 고궁,정려,서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천 청계서원(陜川 淸溪書院)  (0) 2019.05.22
배산서원(培山書院)  (0) 2019.05.14
삼척 죽서루기(竹西樓記)。  (0) 2019.05.06
충청남도 향교현황  (0) 2018.12.07
한국의 9대서원  (0) 201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