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 이항복(李恒福) 선생이 編한 의례 교육서인 <사례훈몽(四禮訓蒙)> 목판본 單冊으로 권말에 '天啓壬戌
(1622) 冬光山金止男跋'이 있다. 책의 크기> 21.5(가로) × 31.5cm(세로)이다.
사례훈몽(四禮訓蒙) 발
이(理)는 기(器)에 의탁하고 의(義)는 수(數)에 있는데, 그 기와 수를 진열(陳列)해 놓고도 혹 이와 의에 어두운 자가 항상 많으므로 《논어》에 증자(曾子)가 ‘변두(籩豆 변은 대나무, 두는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를 다루는 것은 유사(有司)가 할 일이다.’ 하였고, 송 나라의 유현(儒賢)은, 관중(關中)의 제자(諸子)들은 마치 맛없는 나뭇조각을 씹듯 하여 횡거(橫渠 장재(張載))의 진전(眞傳)을 얻지 못했다고 나무랐으니, 그 뜻을 알 만하다.
백사(白沙) 이 문충공(李文忠公)이 일찍이 사례(四禮 관(冠)ㆍ혼(昏)ㆍ상(喪)ㆍ제(祭)의 예법)의 요긴한 말들을 초록(抄錄)하여 이름을 《사례훈몽》이라 하였으니,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그 본원(本源)의 소재를 알아서, 한갓 말단에만 급급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주 선생(朱先生)이 일찍이 《의례통해(疑禮通解)》를 편차(編次)할 때에도 실로 이 같은 뜻이 있어서, 비록 그 의장(儀章)ㆍ도수(度數)를 앞에 두었으나 반드시 밝혀야 할 소이연(所以然)을 그 뒤에 붙였으니, 관의(冠義)ㆍ혼의(昏義)ㆍ사의(射義) 같은 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가례(家禮)》를 찬술(撰述)함에 있어서도 스스로, 허식(虛飾)된 글을 생략하고 근본과 실지에 힘썼다고 하였으니, 그 깊은 뜻의 소재가 이와 같았다. 이제 공의 뜻 또한 기(器)와 수는 알기 쉬우나, 이와 의는 밝히기 어렵다 하여, 알기 쉬운 것은 설명을 반복하지 않고, 밝히기 어려운 것은 이치를 캐내어 발명하였으니, 그 뜻이 정성스럽다 이를 만하고, 그 공로가 크다 이를 만하며, 또 선생의 유지(遺旨)를 체득했다 이를 만하다.
아, 소자(小子)들은 앞으로 오라. 천서(天叙 하늘이 정한 윤리 질서, 즉 오륜)와 천질(天秩 하늘이 정한 귀천(貴賤)의 등급)은 자연의 이치로서 바꿀 수 없는 것인데, 예(禮)가 아니면 무엇으로써 이를 알아서 밝히며 닦아서 행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회통(會通 회합 변통(會合變通)의 도리)을 보아 그 전례(典禮)를 행한다.’ 하였으니, 예의 자체는 참으로 큰 것이다.
그 근본의 큰 것이 대략 여기에 갖춰져 있으니, 그 근본을 얻는다면, 강(綱 경례(經禮)를 말함) 3백 가지와 기(紀 곡례(曲禮)를 말함) 3천 가지를 모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이란, 한갓 넓기만 해도 안 되고 또 너무 간략하여도 안 되는 것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미루어 예가(禮家)의 대전(大全)을 궁구(窮究)하여 그 극치에 이른다면 종묘(宗廟)의 아름다움과 백관(百官)의 부서(富庶)함을 모두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번잡함을 싫어하고 간편함을 좋아하여, 여기에서 취한 것으로 만족하게 생각한다면, 어찌 당일에 이를 편록(編錄)한 공의 뜻이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더욱더 느끼는 바가 있다. 광해군 시대에 있어, 천리 인륜이 무너져 그 여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공의 정사년(1617, 광해군9) 헌의(獻議)야말로 천하 후세에 큰 공로가 있었으니, 참으로 천서(天叙)ㆍ천질(天秩)의 자연 도리를 얻었다.
이를 만하다. 또 예(禮)가 있으면 나라가 존재하고 예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도 크게 징험할 수 있으니, 어찌 한갓 번문(繁文)만 일삼고 근본이 없는 자와 함께 논할 수 있겠는가. 공의 손자 시현(時顯)이 이를 인간(印刊)하여 널리 전하려 한다고 한다. 숭정 무오년(1678, 숙종4) 5월 일에 은진 송시열은 삼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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