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행장. 시장.

黙軒 李起業 行狀[要約]/27世

야촌(1) 2018. 11. 23. 18:39

27世 黙軒 李起業 行狀[要約]

 

公의 자는 계흥(啓與) 號는 묵헌(黙軒) 휘는 기업(起業)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辛酉 1561년(明宗 16年)에 태어나 한강(寒岡) 정구(鄭述) 문하(門下)에서 修學하였다.

 

1592년(宣祖 25) 4月 13日 下午 4時경 倭軍 20萬이 조선을 侵入하여 破竹之勢로 北上하면서 良民 모두를 殺害하고 家屋과 文化財를 불사르니, 나라의 運命이 風前燈火요 江山은 焦土化됨에 八道各處에서 義兵이 일어났다.

 

그해 5月 7日 慈仁의 千丈山에서 崔文炳이 義兵을 일으켜 8日에 그 陣容을 갖추니 그 部署와 義士는, 義兵將 崔文炳(贈 漢城右尹). 右隊長 金 泓. 左隊長 柳仁春. 前騎 朴永晟. 後騎 權三老. 都將 李詳. 掌記 李時發. 金軫. 管餉 李時五. 張天紀. 義士 李起業. 李春馣. 李春緘 李葩俊. 李億壽. 李時楨. 朴夢亮. 金應光. 安天民(贈刑曹佐郞). 崔東立. 金遇鎔(童蒙敎官). 金遇鍊. 全克昌. 朴春. 朴亨. 崔熙止. 崔敬止. 李光後. 李昌後로 隊列을 갖추어 倭敵을 무찌르고,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는 火王山 郭再祐 義兵將과 合流하였다.

 

義士들의 活躍한 戰績은 宣祖 25年 5月 11日 省縣에서 烏鶩川으로 侵入한 倭兵을 擊退하고, 20日에는 淸道 義兵將 朴慶傳의 要請으로 杜谷의 賊을 大破하여 首級 數百을 베고 鳥銃 百餘 자루와 彈丸 90餘발을 노획하였다.

 

杜谷 戰鬪에서 李詳의 壯烈한 戰死로 李起業이 都將을 맡아 6月 10日에 博山 戰鬪에선 左 隊長 柳仁春과 같이 賊을 擊退했다. 그 후 崔文炳 義兵將과 더불어 左道義兵隊長 權應銖 鄭大任 義將과 힘을 모아 列邑의 義兵 300餘名을 모아 7月27日 永川城의 賊을 무찌르고 收復하였다.

 

1593년(宣祖 26) 4月에는 穀倉을 열도록 建議 하여 境內 食糧 및 種子를 支給하고, 8月 21日에는 阿火 戰鬪에서 倭軍을 擊退시키고, 12月 西岳 戰鬪에서 倭軍에 包圍된 義將 金應澤을 救出하고 賊을 擊退시켯으며, 다음 해(1594년) 5月에 蔚山 太和坪의 戰鬪에서 功을 세우시고,(仁祖 9) 辛未 1631년年에 수(壽) 70歲로 殉國하셨다.

 

琴湖江邊 忘憂堂公園에 세워진 壬亂護國嶺南忠義壇에 公의 位牌가 奉安되어 있으며, 每年 4月 15日 慰靈祭에 全國의 수많은 많은 後孫들과 관계관들이 參與하고 있다. 慶山市 慈仁面 新官里 山127 番地에 墓와 함께 追慕碑가 세워져 後孫들의 존조목족(尊祖睦族)의 求心點이 되고 있다.

 

 

↑용사세강록(龍蛇世講錄)/책의 크기 : 19.8cm(가로) x 30cm(세로)

 

용사세강록(龍蛇世講錄)은 임진왜란의 의병장 곽재우 선생의 <용사응모록>, <화왕동거록> 인물들의 현존 후손 인명록으로 연활자본 3권 3책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大正十三年(1925년) 달성군 현풍 유가면 景忠齋에서 곽진곤 편저로 발행하였고, 대구 新文印刷所에서 인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