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행장. 시장.

野翁 慶州李公 行狀 [李英甲]- 청호공파

야촌(1) 2019. 7. 9. 19:58

[우헌집(愚軒集)]

 

野翁 慶州李公 行狀


通訓大夫行平安都事兼春秋館記注官李公行狀


公의 諱는 英甲이요, 字는 善鳴, 號는 野翁 으로 본관은 慶州이다. 아버지의 諱는 超로 出仕하지 않았으나 散職으로 從仕郞이 되었으며, 어머니는 平山申氏 奉事 志의 따님이다.

 

1622년(광해 14)에 출생하였는데, 어려서부터 재질이 남달라서 6세에 글을 읽었고, 10여 세에 문장의 大義를 알았다. 1654년(효종 5)에 司馬試에 입격하였고, 1660년(현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成均館權知學諭에 補任되었다.

 

1673년에 禮曹佐郞에 제수되고 이듬해에 康津縣監으로 나아갔고, 1676년(숙종 2)에 戶曹正郞이 되었다가 가을에 平安都事 兼 春秋館記注官에 제수되었는데, 12월 8일에 永柔縣에서 세상을 버리셨다.

 

康津縣監으로 있을 때, 강진은 다스리기 어려운 고장이라고 하였으나, 公께서 부임하는 초부터 강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부축하였고, 아전에게는 엄격하였으나 백성들은 보살피고 폐단을 없앴으며 公理를 굳게 지켰다.

 

농사는 시기를 빼앗지 않았으며, 學校에 더욱 힘을 써서 무너진 집을 다시 세웠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文廟에 배알하였는데, 향교의 諸生을 거느리고 가서 각자 한 책을 강독하게 하여 그 재주의 大小에 따라서 성취시켜 주어 떠났던 백성들이 돌아오게 되었으니 公의 처사가 이러하였다.

 

配位는 雪城高氏 通仕郞 雨의 따님으로 자애롭고 효성스러웠는데, 公보다 4년 뒤에 돌아가셨고, 4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