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웅천왕이 바로 제곡 고신이었다.
신시(神市)ㆍ단군(檀君)의 시대는 중국 제곡(帝嚳)ㆍ요(堯)ㆍ순(舜)의 시대에 해당한다
[주01] 신시(神市) : 여기서 신시는 환웅을 가리킨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환웅(桓雄)이 무리 3천을 이끌
고 태백산정(太白山頂)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다. 이를 신시라 하고 환웅 천왕이라 한다.” 하였다.
기언 제32권 원집 외편 >동사(東事) >
유웅씨(고마족)의 왕 헌원과 구려족의 왕 치우가 려산에서 결전을 벌이고 세월이 지난 뒤에 제곡고신이 등장한다. 주몽이 자신의 조상을 제곡고신이라고 하였는데 같은 제곡고신의 후손인 주나라 왕가와의 Y염색체를 비교해보니 과연 같은 Y염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주02] 환웅(桓雄) 환인의 서자(庶子)로서 속호(俗號)는 곤시씨(坤市氏)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2권 >황해도(黃海道) 문화현(文化縣)
환인제석의 서자가 환웅인데 마침 우리기록에 그의 다른 이름이 곤시즉 고신이라고 쓰 있다.
제곡고신은 곡혹은 마곡이라고도 불렀다. 환인제석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여러 기록을 읽다가
문의 서쪽에 정자가 있는데 방(榜)이 ‘냉천(冷泉)’으로 되어 있다. 또 좀 북쪽으로 가면 자취문(紫翠門)으로 들어가고, 다음에는 신호문(神護門)으로 들어간다. 문 동쪽 월랑에 상(像)이 있는데 그것은 제석(帝釋)이다.
[주03] 제석(帝釋) : 불가의 설화에 나오는 도리천(忉利天)의 주재자로, 수미산(須彌山) 정상의 선견성(善見城)에
살면서 불법을 옹호하고 아수라(阿修羅)를 몰아 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범명(梵名)은 석가제환인다라
(釋迦提桓因陀羅 Śakra devãnām Indrah 샤크라)임.
선화봉사고려도경 제17권 >사우(祠宇) >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신의 이름을 이스라엘 발음으로는 에 헤스 에이라고 한다. 미국 쪽 다큐를 보다가 템플기사단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 산에서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고 영국으로 옮겼는데 그 돌을 최근에 발견해서 해석중이라고 나왔다.
일부가 해석되었는데 최고의 신 에헤스 에이가 인간에게 손을 내 밀었다 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아마도 손을 잡는 것은 동반자즉 자신을 따르라 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아니면 우리식 표현으로 손을 내밀었다는 도움을 줄때 쓰는 표현이니 신이 인간을 도우려고 한다.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각 민족마다 발음상의 차이가 있다. 중국인들이 형의 발음을 못해서 슝이라고 하거나 일본사람은 후라고 발음하거나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ㄱ발음을 못해서 ㅈ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제석을 영어로 쓰면 Jesu 즉 지저스 ,바로 신의 이름인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서쪽바람을 순우리말로 하늬바람이라 하는데 환인과 하늬는 거의 발음이 유사하다. 우리가 신을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한자식표현으로는 환인 인 것이다. 즉 환인제석은 여호아 하느님 이런 뜻이다.
나는 처음에 그리스최고의 신 제우스가 여호와와 같은 의미라고 하는 사람을 보고 비웃었다. 그런데 제우스를 예후스라고 발음하는 것을 듣고 이스라엘식 발음 에헤스에이와 비교해보니 정말 모두 같은 어원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중국백과 제곡(여와족이 지금 천수시일대에 살았는데 그 수장이 복희씨이고 복희씨의 후손중에 소호금천이 있고 그가 동이족의 수장이다,등등 여러 내용이 있다.)
其一,《帝王世纪》云:帝喾刚出生时,自道其名为“俊”,“俊”与“俊”同音...蚩尤是伏羲嫡出,黄帝是伏羲庶出
제왕세기에 치우는 복희씨의 적자이며 황제는 복희씨의 서출이다.
중국은 수많은 민족이 모여 있고 그들 나름대로 유전자조사를 해보니 황하 이북황하와 낭림산맥사이, 낭림산맥남쪽 이렇게 3종류의 다른 유전자를 가진 민족으로 조사되었다. 중국당국도 꽤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결을 위해 복희씨를 최고의 조상 즉 공통시조로 모시고 이를 토대로 민족들의 분열을 막으려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복희씨도 동이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
帝喾陵_百度百科帝喾陵位于三皇五帝之一帝喾的建都地亳(今河南商丘),今址商丘市睢阳区南25公里的高辛镇。现存的墓地为一高大丘,长200余米,宽100余米。
제곡은 하남 상구에 도읍했다.
제곡고신이 바로 환웅천왕인 것의 2번째 증거가 바로 위의 대목이다. 왜냐면 하남성 상구에 기자묘가 있기 떄문이다. 기자는 조선의 왕검성에 갔고 단군이 왕위를 물려주고 당장경혹은 아사달로 들어갔다라고 우리기록이 되어 있으니 제곡고신의 도읍지가 바로 조선의 도읍지인 왕검성인 것이다.(한서에는 기자묘가 양국 몽현에 있다고 했는데 중국백과에서는 하남성 상구시가 바로 그곳이다라고 한다)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 환인(上帝桓因)이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웅(雄)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檀君)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세종 지리지 / 평안도 / 평양부
우리 단군신화에는 환웅천왕의 부인이 원래 곰이 사람이 된것이라고 한다. 곰은 고마라고도 하며 한자로 웅즉 유웅씨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감숙성과 섬서성즉 장안의 서북쪽에는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지금도 존재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아마도 카자흐스탄일대의 초원지대에 살던 고신은 3천명의 부하를 이끌고 장안일대로 남하한 것이다. 도중에 호족과 웅족을 만났고 세력이 더 강한 웅족을 동맹관계로 받아들인 것이다.
위의 제곡에 관한 중국백과를 읽어보면 제곡의 아들들이 제왕이 되어 여러 곳을 분할통치한 것을 알수 있다.단군왕검은 제곡의 손녀사위인 것이다. 단군왕검의 후예이자 헌원의 후예라고 주장한 고려왕씨의 Y 염색체 조사결과 헌원의 직계인 유웅씨와 동일했다.
헌원황제의 후손이 단군왕검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왕가가 왕씨가 아닌 고씨가 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우선 해부루가 왕검의 아들이 아닌 사위였을수도 있고 ,특히 해부루가 아들이 없어 입양했다는 금와는 다른 말로 고마라고 하는데 금와 역시 해부루의 아들이 아닌 사위였을 수도 있다...
중국 쪽 해씨 Y염색체 자료를 찾아봤으나 자료가 없고 해씨의 기원이 서로다른 3명의 시조라고 되어 있어 자료가 있다 해도 정확히 해석하기가 곤란할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칭 치우의 후손이라고 하고 헌원은 중국한족의 시조라고 치부한다.
그런데 유전자조사를 해보면 소호금천(김씨의 시조)의 후손이 제일 많고 제곡고신의 후손도 9%나 차지한다. 게다가 왕검은 유전자검사상으로는 헌원의 후예로 나온다. 그나마 조선왕조에서 환웅천왕이 고신이라고 밝혔기에 겨우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중국자료는 소호금천이 헌원의 후예로 나오지만 실제 Y염색체를 비교하면 전혀 다른 혈연관계이다 . 치우를 가리켜 신농의 아들이라고 쓴 중국쪽 자료도 보았는데 이 모든 것이 사위를 아들과 같다고 생각했던 옛 전통때문인 것이다.
소호금천, 치우, 헌원, 왕검, 고신 등은 원래 우리 동이족의 조상인데 한족조상으로 둔갑되어 중국에서 모시고 있으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출처 : http//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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