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세계사(世界史)

홍콩(香港/Hong Kong) 역사

야촌(1) 2017. 12. 18. 13:09

■ 홍콩(香港/Hong Kong) 역사

 

홍콩에 인류가 출현한 것은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굴된 유물들은 중국 북부, 그중에서도 특히 룽산[龍山]의 석기시대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영국이 점령하기 이전의 홍콩은 단지 소수의 어민들이 살고 있는 해적소굴이었다. 19세기초 영국은 불법적인 아편무역을 통해 홍콩을 손에 넣었다.

 

1839년 중국 정부는 광저우[廣州]에서 아편추방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으로 인해 그곳에 있는 영국 공장이 공략당하고 2만 상자가 넘는 아편이 몰수되었다.

 

마카오로 퇴각한 영국은 상업상의 조약을 체결하든지 아니면 영국인들이 안전하게 기업운영을 할 수 있는 작은 섬을 할양해줄 것을 요구했다. 홍콩 섬 근해에서 시작된 전투는 제1차 아편전쟁(1839∼1842)으로 확대되었다. 이 전쟁이 끝난 뒤 맺어진 난징조약[南京條約]에 따라 홍콩은 영국에 할양되었다.

 

19세기 들어 중국의 국력이 약해지자 1860년 영국은 스톤커터 섬과 주룽 반도를 포함해 홍콩 주변의 영토를 추가로 손에 넣었으며, 1898년에는 신계(新界, 중국 본토 근해의 235개 섬과 주룽 반도에서 선전 강 사이의 육지를 포괄하는 지역)에 대한 99년간의 조차권을 얻었다. 이렇게 불행하게 시작되기는 했지만 홍콩은 무역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이민을 끌어들였다.

 

특히 1911년 신해혁명 이후, 그 뒤 항일전쟁 시기에, 가장 최근에는 중국 국공내전(1945∼49) 이후에 많은 중국인들이 이주해왔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것과 같은 시간에 홍콩도 공격을 받았으며, 1941년 크리스마스 때 함락되었다.

 

1945년 영국인이 돌아오고 1949년 중국이 공산당에 넘어가자 많은 중국 기업가들이 홍콩으로 건너오면서 홍콩 경제는 큰 자극을 받게 되었다.

 

1960년대 산업화는 섬유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점차 전자, 금융, 무역 등으로 확대되었다.

 

1982년 영국과 중국은 1997년 신계 조차기간 만료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는데 중국은 만료당일로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조건을 대략적으로 정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이후 여러 해에 걸친 협상 끝에 중국 정부는 1990년 기본법을 승인했고 이 법이 1997년 7월 1일 효력을 발생하면서 이 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됨과 동시에 중앙정부 직속으로 홍콩특별행정구가 설립되었다. 이로써 100여 년에 걸친 영국의 홍콩 식민통치가 막을 내렸다.

 

↑홍콩 전경

 

사진 >白夜 ↑홍콩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