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사마동방계회도(癸酉司馬同榜契會圖)
작자미상, 크기 : 27cm × 36cm, 종이에 먹.
이 그림은 계유년[癸酉年, 1573년(선조 6)]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사람들이 30년 후에 ‘동기모임[契會]을 갖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사마시는 진사와 생원을 뽑는 시험이고, 동방(同榜)이란 함께 합격한 사람, 즉 동기를 일컫는다. 따라서 ‘계유사마동방계회’는 1573년의 사마시에서 진사와 생원으로 뽑힌 사람들의 ‘동기회’인 셈이다. 사마시에서는 생원과 진사 각각 100명씩, 총 200명을 선발한다.
이 모임은 당시 안동도호부사로 있던 홍이상[洪履祥, 1549(명종 4)~1615(광해군 7)]의 제안으로 1602년 10월 16일에 안동도호부 관아에서 열렸다. 이 회합에는 관직에 있던 7명과 관직이 없었던 8명이 모였는데, 경상도 출신이 주였지만 서울과 전라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참가하였다.
그림에는 모두 17인이 묘사되었는데, 한 사람은 당시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던 이시발[李時發, 1569(선조 2~1626(인조 4)]로 추정되는데, 이시발의 아버지 대건[大建, 1550(명종 5) ~ 1574(선조 7)] 역시 계유년 사마시에 합격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확인할 길이 없다.
< 계묘사마동방계회도(癸卯司馬同榜契會圖) >가 특별한 가치를 갖는 것은 옛 그림의 표현 양식 중 하나인 미법준(米法峻)의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미법준은 산을 표현할 때 쌀알 모양의 ‘먹점 찍기(米法峻)’로 그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중국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 미법준이 도입된 상한(上限)은 대개 일본과 비슷한 시기인 17세기 중반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계묘사마동방계회도>가 작성된 시기가 1603년이므로, 적어도 17세기 전에 미법준이 조선에 소개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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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사마동방계회첩(癸酉司馬同榜契會帖)
모당 홍이상[慕堂 洪履祥/1549(명종 4)-1615(광해군 7)]은 54세 되던 1602년 6월 안동부사(정 3품)로 좌천되었지만, 백성을 잘 다스린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포상을 받았으며,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계유년[1573(선조 6)] 사마시(司馬試)의 동년(同年) 가운데 영남 고을의 원(員)과 안동에 사는 13명 및 호남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까지 모두 15명을 모아 안동부 관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모당선생연보/홍이상 문집>에서
당에 올라 절하고 춤을 추니, 늙으신 어머니는 얼굴이 환해 지셨다.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밤이 깊도록 지냈는데, 이것도 모자라 촛불을 밝혀 들고 놀았다. 부로(父老)들이 모두 모여서 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사또의 효성은 인간세계의 성대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이 일을 그림으로 그려서 병풍을 만들고 관찰사 이시발에게 발문을 지어달라고 하니, 공의 아버님도 또한 계유년 시험에 합격한 사람 가운데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한 것처럼, 경상감사 이시발(李時發)의 부친 이대건[李大建, 1550(명종 5)~1574(선조 7)] 도 계유년 사마시에서 진사(進士) 2등, 7위에 합격하였으므로 연회가 성대해졌다.
이 그림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중에 수집하여 그 동안 국내에 전해지지 않다가, 야마구치 현립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던 유물98종 136점이 1996년 경남대학 박물관에 기증되면서 국내에 공개되었다.
관아의 별채 앞에 친 천막 아래 안동부사 모당의 모친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사모관대 차림의 9명이 앉았는데, 아마도 안동부사 홍이상(洪履祥), 경주부윤 이시언(李時彦), 신령현감 채길선(蔡吉先), 비안현감 유위, 영주군수 이람(李覽), 전 대구부사 김구정, 함양군수 고상안, 성주목사 신경진, 종사랑 금복고로 생각된다.
오른쪽으로는 선비들이 평상복인 도포와 흑립 차림의 8명으로 나란히 앉았으니,
벼슬에 오르지 못한 동년들인 듯하다. 안동부사인 모당이 주인공이 아니라, 모당의 모친이 주인공으로 그려졌다.
[참고문한]
◇윤호진, 역주 모당선생시문집 하권, 민속원, 2012, 50면.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原文]
花山洪使君同榜會序 慕堂洪公履祥
同榜謂之同年。同年有兄弟之分。以時而修其好。情義之所不已者。而世故多端。聚散不常。杏園一分袂之後。能爲盍簪之盛者。蓋未之多見也。癸酉司馬。當時號多得人。花山洪使君,月城李令尹。俱以今之名宰。出守南藩。相與謀曰。吾同年今有官嶺外者七人。家南土而幸無恙者亦八九。盍於斯時修其好也哉。噫。余之先大夫。卽榜中之一人。不肖今忝按節于茲。得聞此擧。寧不樂爲之助而歡成之乎。諸公之在道內者。指期咸集于花山。聞風邂逅而會者。亦有湖南之二上舍焉。壬寅孟冬旣望。卽其日也。湖樓公館。無非勝所。而必席之于使君之衙庭者。以使君大夫人在堂故也。團圓千百里之面目。暢敍三十年之悲歡。琴歌永夕。且以秉燭。升堂拜舞。鶴髮怡顏。邑之故老。聚觀咨嗟。皆曰人間之盛事也。嗚呼。有親康寧。而與數十同年。奉壽于前如洪使君者。誠人間之盛事也。孤露如不肖者。與在今日之席末。得覩諸公之無疾病與。則豈不爲之向隅愴懷。繼之泣血也哉。繪事旣具。因書識之。萬曆癸卯暮春上澣。嘉善大夫,慶尙道觀察使,兵馬水軍節度使,大丘都護府使巡察使月城李某。謹跋。
碧梧先生遺稿卷之六 / 雜著 附○傳○記○序○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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