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일본사(日本史)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야촌(1) 2012. 8. 18. 16:18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임나일본부설은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가야 지방에 일본부라는 통치 기관을 설치하여 지배했다는 설이다. 이는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가 신묘년(辛卯年, 391년) 이래 백제와 신라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또한 《일본서기》의 '진구 황후가 369년 한반도를 정벌하고, 임나에 일본부를 설치했다가 562년 신라에 멸망당했다'라는 기록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임나는 가야 연맹 혹은 금관가야를 지칭하는데, 광개토대왕비에 '임나가라(任那加羅)'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고 한국 측 사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용어는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 측 사료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일본서기》보다 8년 먼저 편찬된 《고사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백제 멸망 이후 편찬된 《일본서기》가 편찬 과정에서 조작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또한 한국역사에서 '왜(倭)'를 '일본(日本)'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670년 이후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일본부라는 명칭 자체가 성립되기도 힘들다.

 

특히 1972년 재일사학자 이진희가 광개토대왕 비문이 일제시대 일본군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설을 제기하면서 임나일본부설의 진위와 광개토대왕 비문을 둘러싼 해석에 아직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대개 부정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 학계에서도 일본부는 일본이 가야 지방을 정복하고 설치한 것이 아니라 가야와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파견한 관리소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출처 : 다음백과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輯安縣) 퉁거우(通溝) 지방에 있는 고구려 19대 광

대왕의 비석이다.이 사진은 1903년에 촬영한 것으로서 조선인이 상투를 털고 망

건을쓰고 팔장을 낀채 눈내린 산야를 배경으로 비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서있다.

 

만주 지안현(輯安縣)에 거주하는 조선인 묘지기 모습이며, 우리의 역사를 가늠할

있다.(높이 22척. 4면에 1,800여자의 금석문이 세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