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일본사(日本史)

도도 다카토라[등당고호(藤堂高虎)]

야촌(1) 2012. 8. 18. 15:51

■ 도도 다카토라[등당고호(藤堂高虎)]

[국적] 일본

[출생지] 오미[近江 : 지금의 시가현(滋賀縣)]

[생졸년] 1556년(명종 11) ~ 1630년(인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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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장(武將) 오미[近江 : 지금의 시가현(滋賀縣)] 출생.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수군장으로 출전하였다가 돌아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부터 오즈성[大洲城]을 받고 7만 석(石)의 영지(領地)를 봉록(封祿)받는 다이묘(諸侯)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수군을 이끌고 재차 침입하여, 웅천(熊川)에서는 경상우도수군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度使) 배설(裵楔)의 수군과, 칠천량(漆川梁)에서는 통제사(統制使) 원균(元均)과 싸웠으며, 남원성(南原城)을 함락했으나, 명량대첩(鳴梁大捷)에서는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에게 대패하여 군선 31척을 잃었다.

 

1598년 도요토미가 죽자, 조선을 침략하였던 원정군의 철수를 통할하였다. 그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선봉장으로 무공을 세운 그는, 도쿠가와의 신망을 얻고, 도합 32만 951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당시 이순신장군과의 전세비교 자료

조선군 일본군
한산대첩 학익진  
함대수 56척 73척
희생자 19명사망 116명부상 8,980명 사망
군인수 미확인(일본보다훨씬적음) 일만명
격침 배 없음(끝날때까지한척도 격침이 안됨) 66척
명량해전 울돌목에서 치루어 짐(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란 말로 유명함)
함대 수 12+1=13척거북선 없음 133척+수송선 200척
희생자 사망2 / 부상자 3 1만 2천여명 사망
전선 피해 없음 전선31척 격침 92척 파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