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일본사(日本史)

도고 헤이하치로 [동향평팔랑(東鄕平八郞)]

야촌(1) 2012. 8. 18. 16:06

도고 헤이하치로『동향평팔랑(東鄕平八郞)』

 

[국적] 일본

[출생지] 사쓰마 한[薩摩藩 : 지금의 鹿兒島]

[생졸년] 1848. 1. 27~1934. 5. 30 도쿄[東京].

[직업] 일본의 해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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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에서 일본 함대를 지휘해 승리로 이끌었다.

이 싸움에서 그는 전진하는 적의 함대를 포위하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

1863년 사쓰마 한과 영국의 함대 사이에 일어난 사쓰에이[薩英] 전쟁에 참전했으며 보신[戊長]전쟁 때에는 함대 '가스가'[春日]의 사관으로 바쿠후[幕府]의 군함과 싸웠다.

 

1871~78년 해군의 제1회 유학생으로 영국에서 항해술을 공부했다.

일본에 돌아와 해군 중위로 임관되어 여러 함대의 함장으로 해상 근무를 했다.

청일전쟁 때에는 황해 해전에 참전했으며 해군대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03년 12월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대장으로 진급했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황해의 뤼순[旅順]에 있는 러시아 군사기지를 10개월 동안 해상 봉쇄하는 작전을 지휘하여, 1905년 1월 2일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냈다.

 

다급해진 러시아는 발틱 함대를 일본에 급파했으며, 5월 27일 동해와 동중국해를 잇는 쓰시마[對馬] 해협에서 도고의 함대와 대결하게 되었다. 이 해전에서 도고는 대담하게 '적의 대형을 T자로 가로지르는 전술'(일렬 횡대로 전진하는 러시아 함대의 전면에서 일본 함대를 일렬 종대 상태로 가로지르게 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그결과 35척의 러시아 함대 중 33척을 격파하는 대승리를 거두어 영웅이 되었다.

 

이러한 대담한 전술은 이후 영국과 프랑스 해군에도 도입되었고, 이 승리는 아시아 해군이 유럽 열강을 격파한 사건으로서 서구 제국이 일본을 자신들과 대등하게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쓰시마 해전). 전쟁이 끝난 뒤 해군 군령부장(軍令部長)이 되었고 백작에 봉해졌으며, 왕의 군사고문을 맡기도 했다.

 

1913년 해군 원수로 승진하여 러일전쟁의 전공을 인정받아 해군 군부내에서 막강한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1914~24년 히로히토[裕仁]왕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던 그는 1930년 런던 군축조약 승인시에는 조약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일본의 넬슨 제독이란 칭호를 얻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영국 넬슨 제독은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격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