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하지욕(袴下之辱)
袴(사타구니과),下(아래하),之(어조사지),辱(욕되게할욕)字로 기어서 가랑이 밑을 빠져 나갔다는 말로서, 굴욕을 참는일,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쓸데없는 일로 승강이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또는 인욕(忍辱),치욕(恥辱)을 참는다는 뜻으로 큰일을 위해서는 목전의 작은 이익에 현혹(眩惑)되어서도 아니 되지만 꿀욕(屈辱)또한 참고 견뎌낼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아들을 삶은국을 주왕(紂王)으로 부터 받아 마신것이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에서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스스로 부하되기를 자청하고 말똥을 치우고 심지어는 오왕(吳王)부차(夫差)의 대변을 찍어 맛보았던 것도 대사(大事)를 위해서는 인욕(忍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문왕(文王)이나 구천(勾踐)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들, 아마 최후의 승자는 될수 없었을 것이다. 인욕(忍辱)의 좋은예는 회음후(淮陰侯)한신(韓信)도 있다.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이기고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헌(貢獻)을 한이를 꼽는다면 그를빼고는 아마 없을것이다.
그는 또한, 우리가 잘 아는,배수진(背水陳)과 사면초가(査面楚歌), 토사구팽(兎死狗烹),다다익선(多多益善),필부지용(匹夫之勇)등 쟁쟁한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점은 그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젊었을 때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 했었다. 어머니가 죽었지만 장례식(葬禮式)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렇다고 뛰어난 재주나 언변(言辯)도 없어 그저 남의 집에 얹혀 얻어먹곤 했다. 따라서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싫어했다.
그의 고향 회음(淮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렵게 지내고 있었으므로 다들 그를 보면 업신 여기거나 놀려대곤 했다. 한번은 푸줏간 패거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한신(韓信)을 깔보듯 하면서 말했다.
"네놈이 덩치는 큼직하게 생겨서 밤낮 허리에 칼을차고 다니지만 사실 네놈은 겁쟁이일 뿐이야." 구경 꾼들이 모여들자 그는 더욱 신이나서 말했다."
너, 만약에사람을 죽일 용기가 있다면 어디, 그 칼로 나를 한번 찔러보려무나. 그러나 만일 죽기가 싫다면 내, 바지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 보려무나.
한신(韓信)은 잠시 생각 하더니 묵묵히 그의 바지 가랑이 밑을 기어서 나왔다. 이일로 해서 온,장바닥 사람들은 다들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기개가 남달랐다.
그 후 이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이가 소하(蕭何)였다. 그를 유방(劉邦)에게 적걱 추천했을 뿐만 아니라 대장군(大將軍)에 임명토록 함으로서 한신(韓信)은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그럼으로 과하지욕(袴下之辱)은 그가 가랑이를 빠져 나오면서 느꼈던 굴욕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일세지웅(一歲之雄)을 지켜 낼려면 대의를 위해서, 지금 웬만한 것은 바지 가랑이 사이로 기어갈 정도의 굴욕은 참을줄 알아야 한다.
장문(長文)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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