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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양우회를 파고든 이유는 이렇습니다.

야촌(1) 2016. 9. 9. 21:40

국정원 양우회를 파고든 이유는 이렇습니다.

한겨레 | 입력 2016.09.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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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김경욱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dash@hani.co.kr

 


김경욱 기자
오늘은 독자 여러분께 <한겨레>가 지난 5일, 7일, 8일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한 ‘국정원 공제회 양우회 대해부’ 탐사기획의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모쪼록 ‘친절하게’ 말이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규명돼야 할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참사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국가정보원 현직 직원들의 공제회인 양우회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세월호 참사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양우회가 선박펀드를 통해 세월호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이런 의혹과 양우회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다룬 언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양우회를 통해 국정원의 예산집행과 조직운영의 불투명성 문제도 엿볼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양우회와 관련해 공개된 정보가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금융업계 취재와 양우회가 투자한 사업에 관여한 이들, 송사로 얽힌 사건의 소송 당사자, 양우회 및 그 자회사 전·현직 임원 등을 접촉하는 방식으로 실체 파악에 나섰습니다. 

 

전직 국정원장을 비롯해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도 수소문해 10여명가량 인터뷰를 했습니다. 탐사기획팀이었기에 가능한 취재였습니다. (저는 이번주 사내 인사로 사회정책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를 통해 양우회가 수많은 선박 펀드에 투자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07~2008년 양우회가 투자한 선박 펀드는 5개로 투자금액만 318억원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양우회의 세월호 투자 의혹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양우회가 2008년 60억원을 투자했다가 2011년 일본 앞바다에서 침몰한 선박(준설선)이 있었지만, 세월호와 관련성은 없었습니다. 이 내용이 양우회의 세월호 투자 의혹으로 와전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양우회는 알려진 것과 달리 훨씬 거대하고 불투명하며 ‘불법’적인 조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국정원 현직 직원들이 양우회에 소속돼 영리업무를 하고, 이들이 자산운용사의 펀드 운용에도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수십억~수백억원씩 손실을 보면서도 양우회와 그 자회사가 사모펀드에 투자한 액수만 최소 1885억9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아니, 대체 무슨 돈으로?’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기금이 양우회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죠. 

 

그 기금이 재원이 돼, 5급 이상 퇴직 직원들에게 연구비 명목의 이른바 ‘품위유지비’로 과도하게 지급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국정원은 양우회에 대해 ‘직원들의 자발적 상조회로 국정원과 무관하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국정원과 양우회는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국정원 기금을 지원받으면서도 양우회는 지금껏 국회 감사 등 외부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힘든 점은 취재 과정에서 양우회와 국정원이 보인 태도입니다. 

 

지난달 31일 양우회 사무실을 찾았을 때, 직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몸을 숨겼습니다. ‘이건, 뭐지?’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런 태도는 취재에 앞서 예측해본 시나리오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직원들은 몸을 숨기고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를 하더군요. 

 

그러고는 1시간여 동안 전혀 응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뒤 자신을 양우회 경영총괄부장이라고 주장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직원들이 (언론 인터뷰가) 겁나서 숨은 것이지만, 무얼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원 역시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국정원에 현직 직원들의 영리업무 겸직 상황, 양우회 기금 지원 여부 등 스무 가지 항목의 질의서를 보내자 “입장을 정리해 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틀이 지나서 받은 국정원의 최종 입장은 당혹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문의하신 내용은 양우회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국정원은 양우회로 떠넘기고, 양우회 직원들은 문 뒤로 숨고. 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 조직에도 ‘친기자’와 같은 ‘친요원’ ‘친직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잠시 꿨습니다. 이번 탐사기획으로 국정원과 양우회의 불투명한 운영실태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희망해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