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한시(漢詩)

맹호행(猛虎行) - 홍희춘(洪熙春)

야촌(1) 2016. 8. 4. 10:10

[한시감상]

 

창을 들라

 

■ 맹호행(猛虎行)

 

큰 길에 나타난 사나운 범

한 쌍의 눈은 거울을 끼운 듯

세찬 바람 도로를 휩쓰니

포효소리 온 고을을 두렵게 하네

사람마다 겁이 나 움츠러들어

놀라 소리치며 애간장만 태울 뿐

차라리 저 쪽에서 죽으려고 할지언정

그 강함을 범하지 않으려 한다네.

나는 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

만 명의 사람 각각 창을 들라

범을 죽이지는 못할 지라도

앉아서 죽기보단 나 으 리!

 

猛虎當大道 /맹호당대도

雙眼如挾鏡 /쌍안여협경

烈風捲九街 /열풍권구가

咆哮慴一境 /포효습일경

人人但蝟縮 /인인단위축

驚號熱中腸 /경호열중장

寧甘就彼死 /영감취피사

不顧犯其剛 /불고범기강

吾意獨不然 /오의독불연

萬夫各執鎗 /만부각집창

借曰不殺虎 /차왈부살호

勝似坐死亡 /승사좌사망

 

-유계 홍희춘(柳溪 洪熙春, ?~?),

『대한협회회보(大韓協會會報)』 제22호(190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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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제국주의가 창궐하던 20세기 초, 수많은 나라가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재앙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제의 그릇된 욕심 앞에 국권을 수호하기란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1907년 정미늑약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차관정치(次官政治)가 시작됩니다.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항일 의병 운동, 애국 계몽 운동 등 국권 회복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쓰러지기는커녕 날이 다르게 강해졌습니다.

꺾이지 않는 일제의 위세에 한반도 전체에 깊은 절망감이 감돌았을 것입니다. 유계(柳溪) 홍희춘은 절망과 무기력을 혁파하고 국권 회복의 열망을 다시금 불태울 것을 촉구합니다.

 

저 큰길 앞에 선 매서운 범. 부리부리한 눈을 보고 있노라면 다리가 후들거릴 듯합니다. 날카로운 포효 소리가 온 고을을 뒤흔드는 통에 두려움이 쌓여갑니다. 사람들은 피하기만 할 뿐 맞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범은 이죽거리며 사냥감을 찾고 있습니다. 저 범을 내쫓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모든 사람이 각각 창을 들어 덤비는 것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쓰고 덤벼드는 사람들의 독기에 질려 범은 도망갈 것입니다.

 

이 시가 발표된 지 1년 후, 우리나라는 국권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일제의 잔인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항쟁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이겨내고 각각 창을 들고 결사 항전 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36년 동안 간고(艱苦)의 세월을 이겨 내고 우리 민족은 마침내 빛을 되찾았습니다.

우리의 국권은 그분들이 피와 눈물로 쟁취해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 나라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과거의 만행을 재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분들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또 다른 나라는 자신의 힘을 앞세워 우리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만행과 역사 왜곡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의 역사 인식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들 합니다.

 

역사 왜곡과 망언이 만연한 지금이 바로 우리의 역사 인식을 바르게 할 때입니다. 유계의 시 아래 적힌 짧은 평어(評語)를 되새겨 봅니다.

 

“예로부터 큰 사업은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생겨났다. 만 명의 사람이 창을 들면 범은 응당 머리를 숙이고 도망갈 것이다.[自古大事業皆出於九死一生耳. 萬夫執鎗, 虎當俛首而去.]”

 

글쓴이 : 남성현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