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려와조선관직

청요직(淸要職) - 조선시대

야촌(1) 2016. 7. 4. 01:04

조선시대 청요직(淸要職)

 

조선시대의 관직 중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은 아마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가 아니었던가 싶다.

과거급제 후 삼사를 거쳐야만 비로소 관료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벼슬길에 나갔던 것이다.

또한 청요직을 얻는 데는 신분적 배경이 필요할 정도로 출세가 보장되고 권세가 있었다.

 

다시 말해 당시의 청요직은 권력과 명예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졌다.

특히 홍문관 교리 한 번 지낸 조상이 영의정 두 번 지낸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 까닭은 홍문관 벼슬이 청직(淸職)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청요직은 당대에 가장 깨어있는 관료들이 공평무사하고 평등하게 일처리를 하는 지성과 행동을 겸비한 살아있는 관료집단으로 볼 수 있다.

 

하여 모든 관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삼사의 수장(홍문관 대제학, 사헌부 대사헌, 사간원 대사간)과 관료양성기관인 성균관의 대사성,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의 도승지를 모두 역임한 인물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행[李荇,1478(성종 9)∼1534(중종 29)/덕수],

◇이여[李畲,1503(연산군 9)∼1542(중종 37)./한산],

◇이산해[李山海,1539(중종 34)∼1609(광해군 1)/한산],

◇유성룡[柳成龍,1542(중종 37)∼1607(선조 40)/풍산],

◇김상헌[金尙憲,1570(선조 3)∼1652(효종 3)./안동],

◇이명한[李明漢,1595(선조 28)∼1645(인조 23)/연안],

◇이일상[李一相,1612(광해군 4)∼1666(현종 7)/연안],

◇박태상[朴泰尙,1636(인조14)∼1696(숙종 22)/반남)],

◇조관빈[趙觀彬,1691(숙종 17)∼1757(영조 33)/양주] 등이 청요직의 장을 모두 거친 인물들이었다.

   모두가 역사적인 인물들이다.

 

병자호란의 척화신인 김상헌과 임진왜란의 명상 유성룡은 청백리(淸白吏)에 뽑혔고, 유성룡은 저 유명한 이순신장군을 발굴해 낸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이었다. 이행은 의금부 판사로 무고한 옥을 엄히 다스려 명성을 떨쳤고, 이명한과 이일상은 부자지간으로 조선시대 최초의 3대 대제학 가문의 뛰어난 문장가였다.

 

박태상은 장원급제, 이일상은 만16세, 이행은 만17세에 문과에 급제하는 천재의 소유자들이었다.

결국 삼사의장, 승정원 도승지, 성균관 대사성 등 청요직의 우두머리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몫이었고, 그들만이 그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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