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동각잡기본조선원보록(東閣雜記本朝璿源寶錄)

야촌(1) 2016. 4. 18. 00:41

■ 동각잡기본조선원보록(東閣雜記本朝璿源寶錄)
 
◈기본정보

   ◌분류 : 고서-역사서 | 사회-역사-역사기록 | 사부-편년류
   ◌저자 : 이정형(李廷馨, 1549-1607)
   ◌판종 : 필사본
   ◌발행사항 : 발행지불명, 발행처불명, 발행년도 불명
   ◌형태사항 : 1冊(84張) : 無界, 12行字數不定, 無魚尾 ; 36.5 X 23.2 cm
   ◌주기사항 : 表題: 東閣雜記
   ◌도서 소장처 :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도서 청구기호 : 3487.4015
 
◈안내정보
 
《동각잡기본조선원실록(東閣雜記本朝璿源實錄)》(이하 버클리대본 《동각잡기》 필사본 1책(84장)은 이정형(李廷馨)(1549-1607)이 편찬한 것으로, 태조의 창업에서부터 선조 때까지의 다양한 역사적 일들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기술한 일종의 야사집(野史集)이다.


버클리대 본 《동각잡기》는 《대동야승》본과 비교해 볼 때 선본(善本)은 아니지만, 《동각잡기》의 향유 및 소통과 관련하여 참고가 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 볼 때 당파를 떠나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했다는 점, 야사의 분량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세정보
 
〇편저자사항
 
이정형(李廷馨, 1549-1607)은 본관은 경주, 자는 덕훈(德薰), 호는 지퇴당(知退堂) 또는 동각(東閣)이다. 사직서령(社稷署令) 탕(宕)의 아들이다. 1567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68년 증광시에 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평시서직장(平市署直長)을 시작으로 형조정랑, 경성판관, 형조참의, 강원도관찰사,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거쳤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규합하여 항전하기도 했다. 1606년삼척부사로 나간 이듬해에 임지에서 병으로 죽었다. 이원익(李元翼)·이수광(李睟光) 등과 가깝게 지냈다.

 
저술로는 『동각잡기』, 『황토기사(黃兎記事)』, 『용사기사(龍蛇記事)』, 『수춘잡기(壽春雜記)』, 『지퇴당집(知退堂集)』 등이 있다.


 〇구성 및 내용
 
이 책은 태조의 조상인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여, 태조의 창업에서부터 선조 때까지의 다양한 역사적 일들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기술한 일종의 야사집이라 할 수 있다. 중간에 어떤 형식적인 장치를 써서 이야기를 분류하거나 구분 짓지 않고 오로지 조선의 야사들 중 중요한 일들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객관적으로 기술하였다.

 
여기에 수록한 주요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드러내면 다음과 같다. 태조의 가계와 조상, 조선의 건국과 관련한 태조의 일화, 1·2차 왕자의 난, 태종의 즉위와 즉위 후의 일화, 세종의 즉위와 문치(文治), 세종 연간 사대부의 일화, 계유정란(癸酉靖難)과 세조의 왕위 찬탈, 사육신의 복벽(復辟) 운동, 이시애(李施愛)의 난, 성종의 일화 및 그 시대 대신들의 일화, 중종반정, 중종의 일화, 기묘사화(己卯士禍) 전후의 야사, 중종 시대 선비들의 일화, 을사사화(乙巳士禍) 전후의 야사, 명종 시대 선비들의 일화, 선조의 즉위와 그 시대 선비들의 일화, 임진왜란과 그 전후의 야사 등이 그것이다. 조선 건국에서부터 임진왜란까지 굵직한 사건은 모두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찬자가 살았던 시기와 가까운 때의 이야기가 비교적 많다. 그 중에서도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전후의 야사가 상대적으로 많은데, 찬자는 편향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분히 사림의 입장에서 야사를 기록하였다. 특히 기묘년에 있었던 일들은 마치 일기처럼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이황(李滉)의 일화도 다수 싣고 있는데, 이는 그가 이황을 좋아하여 지퇴당(知退堂)이라고 호를 붙인 것과도 연관이 된다.


〇서지적 가치

『동각잡기』는 『대동야승』, 『대동패림(大東稗林)』,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 등과 같은 야사 총서를 비롯하여 다양한 이본이 존재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 도서관, 고려대 도서관, 명지대 도서관 등 그 소장처는 많다.


버클리대본을 『대동야승(大東野乘)』본과 비교하면, 두 본은 글자의 출입조차 거의 없는 본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버클리대본은 다른 이본에 비해 낙장도 많고, 오류도 많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갖는 이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즉 버클리대본은 이본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뿐, 그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버클리대본은 『대동야승』본보다 선본(善本)이 아니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첫째, 『대동야승』본에는 실려 있는 이야기 중 일부가 버클리대본에는 빠져 있다는 점. 둘째, 버클리대본의 필사자는 다른 본을 전사하면서 비의도적인 오류를 범한다는 점. 셋째, 다른 본에는 쓰여 있는 내용이 버클리대본에는 빠져 있는 점. 넷째, 버클리대본에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해서 싣고 있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첫째, 『대동야승』본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버클리대본에는 빠져 있다. 예컨대 버클리대본 28면에는 ‘永樂丙申’에 이어 ‘尹文度公淮’가 쓰여 있다. 그런데 『대동야승』본에는 이 두 이야기 사이에 6편의 이야기가 더 실려 있다. 이는 버클리대본의 텍스트가 이미 이들 6편의 이야기를 누락한 본이었거나, 버클리대본의 필사자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간에 6편의 이야기를 누락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36면 ‘讓寧大君’과 ‘中樞院’ 사이에도 기이한 자연 현상을 소개한 2편이 이야기가 빠져 있고, 54면 ‘景泰癸酉’와 ‘魚贊成有沼’ 사이에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비롯하여 4편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이외에도 중간 중간(56면, 61면 등)에 한두 편의 이야기가 빠진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버클리대본의 필사자는 비의도적인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예컨대 “永樂三年, 咸吉道 吉州海水赤.(…하략)”으로 시작하는 이야기(49화)도 그러하다. 이는 다음 이야기(50화)가 “永樂丙申”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를 빠트린 것으로 보인다. 

 

즉 두 이야기는 ‘永樂’이란 같은 말로 시작하기에 필사자는 해당 텍스트를 무비판적으로 옮겨 적다가 무의식적으로 같은 단어가 나오는 한 이야기를 건너뛰고 다른 이야기를 적은 것이라 하겠다. 이는 곧 버클리대본이 다른 책을 필사한 본임을 명확히 한다.


셋째, 『대동야승』본에는 쓰여 있는 내용이 버클리대본에는 빠져 있기도 하다. 예컨대 버클리대본에도 한명회(韓明澮)의 일화가 나열되어 있는데, 『대동야승』본에는 “已上墓誌, 魚世謙撰”이라 하여 그 출처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버클리대본에는 이러한 출처를 빼고 있다. 어유소(魚有沼) 일화에서도 “已上行狀”이란 출전 표기를 지웠다. 홍언충(洪彦忠)의 일화에서는 주석으로 붙인 “斯野一作其下”도 빠져 있다. 출처 외에 특정 대목을 빠트리는 경우도 있다.


넷째, 버클리대본에는 동일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실려 있기도 하다. 버클리대본에 실린 이야기를 『대동야승』본과 비교할 때, 중간에 한두 편씩 이야기가 빠지기는 해도 한꺼번에 10편 이상이 누락되는 일은 없다. 그런데 버클리대본 80면에는 기묘사화와 관련한 이야기가 13편 정도가 빠진다.

 
즉 ‘己卯十月’과 ‘正德庚辰’ 사이에 13편의 이야기가 빠진 것이다. ‘正德庚辰’에 이어 ‘燕山百惡具備’, ‘李賢輔’, ‘三陟’, ‘方燕山之荒淫也’, ‘全羅道 長水縣’ 등의 이야기가 실린다. 그리고 이 6편의 이야기 다음에 앞서 누락된 13편의 이야기가 실린다. 그런데 13편의 이야기 뒤에 다시 ‘正德庚辰’이 쓰인다.

 
버클리대본의 필사자는 ‘己卯十月’을 쓰고, 잠시 착종을 일으켜서 다른 이야기 6편을 썼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처음으로 돌아와서 누락했던 13편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쓰다 보니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 추가된 6편의 이야기는 『대동야승』본 하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 중 ‘李賢輔’ ‘三陟’ ‘方燕山之荒淫也’도 뒤에 다시 실렸다.


이러한 점을 통해 볼 때, 버클리대본의 자료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다만 버클리대본은 『동각잡기』의 향유와 소통과 관련하여 버클리대본의 자료적 가치를 찾는 것이 유의미하리라 본다. 그렇지만 버클리대본이 『대동야승』본을 직접 필사한 본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동야승』본에서 결락이 된 부분이 버클리대본에는 쓰여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동야승』본 79화는 “至於官人, 則各稱號以別名位. 本朝之制, 王(이하 결락)”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버클리대본에는 “至於宮人, 則各稱號以別名位. 本朝之制, 王妃稱某妃, 世子嬪稱某嬪, 皆加徽號, 有違於禮. 請遵古 只稱王妃世子嬪. 依允.”으로 이야기를 종결하고 있다. 

 

『대동야승』본에 결락된 부분을 버클리대본이 보완한다. 이러한 점에서 버클리대본은 자료적인 가치가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본적인 가치를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본이라 하겠다. 

〇내용적 가치

 
『동각잡기』는 선조 때에 편찬된 야사집이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던 작품집이다. 특히 당파를 떠나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했다는 점, 야사의 분량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버클리대본은 의미를 갖는다. 또한 버클리대본은 조선조에도 많이 읽히고 발췌되어 기록되었는데, 『국조명신록(國朝名臣錄)』에는 버클리대본에서 발췌하였다고 밝힌 이야기가 가장 많다(37회).


이 외에도 『기문총화(紀聞叢話)』와 같은 야담집을 보면, 버클리대본에서 발췌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동각잡기』는 기록된 야사집이면서, 후대에 역사와 이야기라는 두 층위로 다양하게 소통되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버클리대본은 이본적인 가치가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이본에는 빠진 내용이 이 책에는 온전히 드러난다는 점, 다른 이본에서 볼 수 없는 객관적 기술 태도를 보인다는 점 등에서 버클리대본의 내용적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전자는 앞서 언급하였기에 굳이 다시 말할 것이 없다.


후자는 조금은 특이한 한 형태이기도 하다. 원래 야사는 다른 어떤 이야기문학과 달리 ‘의도적으로’ 내용을 변개하거나 글자를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버클리대본에는 “金斯文命仲, 乃外家四代祖也. 登世宗祖丁卯文科” 대목을 “金斯文命仲, 登世宗祖甲子文科”로 바꾸는 등 일정한 손질을 한다.


버클리대본의 필사자는 김명중(金命仲)이 자신의 외가 4대조 할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乃外家四代祖也”란 대목을 굳이 뺀 것이다. 이처럼 버클리대본에는 미약하나마 객관적인 기술을 하려고 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한 현상이다.

'■ 경주이씨 > 선세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李海龍千字書  (0) 2016.05.26
경주이씨가사집(慶州李氏家事集)  (0) 2016.04.21
제정선생문집 발-윤회(尹淮)  (0) 2016.04.17
산가지설(山家之說) - 이항복  (0) 2016.04.09
역옹패설과 익재난고  (0) 201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