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세자료

역옹패설과 익재난고

야촌(1) 2016. 4. 6. 20:11

■ 역옹패설((櫟翁稗說))

 

◈저작동기 및 의의

<역옹패설(櫟翁稗說)>은 고려 말기 문신 이제현이 56세(忠惠王 3년, 1342년) 되던 해 은퇴하여 시문(詩文)·사록(史錄)에 걸친 각종의 고사(故事) 등을 만록체(漫錄體)로 엮은 것이다.

 

초간은 익재선생의 막내 아들 창로와 손자 보림 등이 1363년 4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고, 그 후 1432년(세종 14) 세종(世宗)의 명(命)에 의하여 나라에서 <익재난고(益齋亂藁)>와 함께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당시 김빈(金鑌)의 발문에 의하면 '간행기구 미면결오(刊行旣久 未免缺誤)' 라고 하여 초간 사실을 추인(追認)하고 있는데, 이때, 아울러 초간본에 빠지고 잘못된 부분의 일부를 바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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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간본은 국내에는 전하는 것이없고 현재 일본봉좌문고 조선목록(日本 蓬左文庫 朝鮮目錄)에 보이는 10행 17자의(四周雙邊, 匡郭 17.5~18.7×13.5㎝) 板本이 아닌가 여겨진다.[청분실서목淸芬室書目]

 

다만 국내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은 萬曆庚子(1600) 鷄林府刊(後孫 慶州府尹李時發)이 조선중기 학자 五友堂 金近(1579-1656)의 장서인이 있는 한권이. 화봉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이제현은 <역옹패설>의 저작동기에 대해 "여름철 계속되는 장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지었다"고 하였다. <역옹패설>이라는 명칭에 대해 살펴보면, 역옹은 자기 호이고 패설은 자질구레한 내용을 모은 글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역은 낙(樂)에서, 패는 비(卑)에서 음을 취했다고 하였다.

 

<역옹패설>은 저자가 스스로 박잡한 글로 잡문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후대인들에게 작자 당대의 현실과 문학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남겨준 요긴한 책이다. 또한 이것은 <파한집>이나 <보한집>의 성격을 계승하였으면서도 다양한 특징들을 포괄하고 있는 책이다.

 

◈내용분석 및 구성

 

<역옹패설>은 책 전체가 전집과 후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집이 다시 1,2권으로 되어 있어 모두 합하면 4권이 되는 셈이다. 전집에는 작자 자신의 서문이 있고, 1권에는 17조, 2권에는 43조의 역사와 인물일화, 골계등이 있고, 후집에서는 작자 자신의 서문과 1권에는 28조, 2권에는 25조의 시화와 세테담등의 문학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고려의 역사를 시초에서부터 살펴나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점을 이것저것 들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대로 저술했다.

이 책에 나타난 주요 내용은

첫째, 이제현은 몽고, 즉 원으로 부터 치욕을 당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한 방법으로 부당한 사대주의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둘째, 그는 전통성, 즉 민심의 기반이 없는 위조(僞朝)에서의 영화로운 생활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책에서 삼별초 정

권을 부정적 입장으로 보아 위조라고 생각한 것에 기인한다. 다시말하면, 삼별초가 고려의 백성을 협박하고 부녀자들을 강제로 이끌어 진도에서 비상정부를 구축하였으므로 민심을 거역한 위조라고 본 것이다.

 

세번째, 무신정권의 전횡을 폭로하고, 그 폐단을 고발하고 있다. 이제현은 오언절구의 시를 통해 무신정권이 장악하는 공포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낸다.

 

네번째, 이 책에는 고려 말기 문학에 있어서 용사론(用事論)과 신의론(新意論)의 현황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이제현은 한유, 이백 등의 당대의 시인들을 비롯한 유명한 중국문인들의 시를 거론하기도 하고 정지상을 비롯한 우리나라 시인들에 대한 것도 평을 하고 있다. 그는 용사에 있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단어에 대한 사용을 금하고 있고 지명의 사용도 실제정황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비판하였다.

 

이러한 그의 비평 태도는 시어의 현실성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 轢翁(역옹) : 자신은 나라의 큰 일을 할 사람이 못되며 단지 오래나 살고 싶다는 겸손한 소망을 표 현하고 있다.

轢(상수리나무 역)은 재목감이 못되는 하찮은 나무를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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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재난고(益齋亂藁)

 

고려 말의 문신 학자인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시문집.

구분 : 목판본·시문집

저자 : 이제현

시대 : 초간 1363년/중간본 1432년(세종 14) /3간 1600년 경주부윤 이시발(경주에서)

 

10권 4책. 저자가 살아 있을 때인 1363년(공민왕 12) 아들 창로(彰路) 및 손자 보림(寶林)이 엮어 간행하였고, 1600년(선조 33) 후손 시발(時發)이 중간(重刊)하였으며, 1793년(숙종 19) 경주부(慶州府)에서 3간하였다. 권1∼4에는 시(詩), 권5∼8에는 문(文), 권9에는 고려의 왕들에 대한 사찬(史贊)과 주요 기사가 들어 있고, 권10에는 습유(拾遺) 묘지(墓誌) 연보(年譜) 등을 수록하였다.

 

책머리에 저자의 화상도(畵像圖)와 시발의 제어(題語) 및 이색(李穡)의 초판서(初板序)가 있다. 특히 권4에 있는 〈소악부(小樂府)〉는 고려의 속요(俗謠)를 한시(漢詩)로 옮긴 것으로, 국문학상의 귀중한 자료이다. 대동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여계명현집(麗季名賢集)》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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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고려 후기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그림.

작가 : 이제현(李齊賢)

종류 : 그림

크기 : 73.6×109.4cm

제작연도 : 고려 후기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견본채색(絹本彩色). 73.6cm × 109.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복(胡服)을 입은 5명의 인물이 말을 타고 겨울의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모습을 그린 사대부의 여기화(餘技畵)로, 14세기 한국 회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소나무의 필법은 남송원체(南宋院體)의 화풍(畵風)에서 영향을 받았다. 활엽수 가지의 묘사에서는 아직 북송적(北宋的)인 수지법(樹枝法)이 남아 있어, 당시 중국화(中國畵) 수용태도를 시사하고 있다.

 

공민왕의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가 동적이고 힘찬 반면, 이 그림은 섬세하고 유연한 느낌을 준다. 산수의 필선(筆線)이 섬약하고, 근경(近景)의 언덕 처리가 약간 어색하여 여기화다운 일면이 있다. 이제현이 원(元)나라에 건너가 조맹부(趙孟)와의 접촉과, 원대(元代) 이곽파(李郭派) 화풍의 주도적 인물인 주덕윤(朱德潤) 등과 교제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영향을 받았을 법도 하나, 구체적으로 조맹부 ·주덕윤의 남종 문인화풍이나 이곽파 화풍의 뚜렷한 영향이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