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李蒤)
[생원] 광해(光海) 10년(1618) 무오(戊午)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69위(99/100)
[인물요약]
◇자 : 자소(子韶)
◇호 : 현와(弦窩)
◇생년 : 계사(癸巳) 1593년(선조 26)
◇졸년 : 무신(戊申) 1668년(현종 9)
◇본관 : 전주(全州)
◇출생지 : 한성[京]
◇부모 : 영감하(永感下/부모가 죽고 없는 처지)
◇거주지 : 오늘날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 서재골[書齋谷]
[이력사항]
◇생원선발인원 : 100명[一等5명/二等25명/三等70명]
◇전력 : 유학(幼學)
◇부모구존 : 영감하(永感下=부모가 모두 돌아가심)
[가족사항]
[부(父)]
◇성명 : 이세량(李世良)
◇품계 : 통훈대부(通訓大夫)
◇관직 : 행제릉참봉(行濟陵參奉)
[처부(妻父)]
◇성명 : 이대기(李大期)
◇본관 : 전의(全義)
[처부(妻父)2]
◇성명 : 정현(鄭玹)
◇본관 : 초계(草溪)
[안항(鴈行)]
◇형(兄) : 이심(李?)[生]
◇형(兄) : 이목(李莯)[進]
◇형(兄) : 이예(李㵩)
◇형(兄) : 이약(李?)
[참고자료]
『만구집(晩求集)』 卷8, 墓碣, [현와 이공묘갈명(弦窩李公墓碣銘)]을 참고하여 호를 추가.
『만력46년무오식년사마방목(萬曆四十六年戊午式年司馬榜目)』
[본문]
본관은 전주, 이름은 도(蒤), 자는 자소(子韶), 호 현와(弦窩), 조선국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讓寧大君)의 6대손으로 1618년 무오 식년시(생원)에 등과하여 성균유생으로 현사대부들과 시예를 교유하였으나 전발(銓鉢)에 임명되어 그만 두고 장인인 설학 이대기를 따라 합천 초계로 남하 처가댁에 기거하다 몇년 후 고령 쌍림 제동으로 이거하여 당세의 명류 미수 허문정공(許文正公), 동계 정문간공(鄭文簡公),등과 두터이 교유하였다.
병자호란으로 지역이 피위(被圍) 되자 사서 전충간공(全忠簡公)의 휘하 의병유사로 활약하였으며 전란이 해위(解圍)되어자 두문자정(杜門自靖)하며 세상사에 뜻이 없어 산수유람으로 지냈다,
그 후 종실 임자(任子)의 은명(恩命)에 감히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안기도 찰방(안동역장)을 지냈는데 이 때 태백오현(두곡 홍우정,손우당 홍석,각금당 심장세)들과 깊이 교유하고 시셈하는자의 무고로 그직에서 물러나 고령 제동으로 돌아오니 고인중(古人中)에서 상우(尙友)로 노중련 호방형 도연명 백결선생을 얻어 四友와 더불어 사우재를 짓고 일생동안 대절을 지키며 살았다. 유고로 문집 10권 5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