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경주이씨묘역(慶州李氏墓域)-용인 백암면

야촌(1) 2014. 12. 4. 01:21

경주이씨묘역(慶州李氏墓域)

 

경주이씨 묘역은 근삼리 내수곡마을과 가창리 신창마을에 있다. 근삼리에는 파조(派祖)인 익재 이제현 선생과 아버지인 동암 이진(李山)선생의 묘단을조성하였고 아들과 손자를 비롯하여 대대로 묘가 이어져 있다. 

 

마을입구와 묘역 입구에 경주이씨(慶州李氏) 익재공파성지(益齋公派聖地)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는데 이는 내수곡마을이 현재 익재공파의 고향과 같다는 의미로 보인다.

 

익재공파에서 갈라진 소파를 평시령공파라고 하는데 평시령 이원인의 묘는 본래 박곡리에 있었으나 현재는 이웃 원삼면 두창리로 이장하였다.

 

가창리에는 회와공 묘역이 있는데 회와공 이인엽의 묘를 중심으로 3기의 묘가 묘역을 이루고 있다. 경주이씨 묘역은 가창리 신창마을 안에 있다. 마을에 백암초등학교 수정분교가 있고 위편에묘역이자리잡고있으며바로뒤에는용화사큰법당이있다.

 

이인엽(李仁燁)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계장(季章)이며 호는 회와(晦窩)이다. 이인엽묘의 바로 아래에는 아들인 하곤(夏坤)과 손자인 석표(錫杓)의 묘가있는데맨아래있는석표의묘는최근에진천에서이장해온것이다.

 

이인엽의 묘는 원형으로 단분이며 3위합편이다. 봉분에는 호석(護石)을 둘렀는데 12각형이며 각 면(面)을 구분하는 석주(石柱)에 12지 신상(神像)을 조각하였다. 이는 아래 있는 아들과 손자의 묘도 같은 형태인데 묘역을 정비하면서 함께 설치한 결과로 보인다. 또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계체석(階恂石)을 설치하여 묘역과 배계절을 구분하였다.

 

봉분의 왼쪽에는 최근에 설치한 묘갈이 있는데 화강석 비대와 오석제 비신에 기와집의 기와골을 조각한 옥개석을 올린 형태이다.

 

묘갈에는「崇政大夫行吏曹判書李公墓碣銘」이라는 두전(頭篆)이 있고 비신의 네 면에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고종때의 명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이 지어놓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글씨는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인 이춘희(李春熙)가 썼으며 종손인 이정희(李晶熙)가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상석은 화강석제로 높이가 높은 편이며 받침이 고석(鼓石)으로 되어있다. 향로석은 방형(方形)으로 되어 있는데 다리부분의 조각이 중후(重厚)하고 소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에 홀(笏)을 들고 있는 형태이며 양관의 형태와 의습선의 조각이 분명하다.

 

금관은 양주(梁柱)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안면이 다소 돌출되어 있는 형태이며 금관의 뒷면에 있는 관무(冠武)에도 조각이 있다. 홀을 들고 있는 양손의 형태도 명확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폐슬(蔽膝)과 대(帶), 후수(後綬), 패옥(佩玉)등도 구분이명확하게 조각되어 있다.

 

망주석은 좌우가 한 쌍인데 형태가 다르다. 봉분에서보았을 때 왼쪽의 것은 원수(圓首)와 연환(連環)이 분명하고 운각(雲角)과 염우(廉隅)가 화려하게 조각되었으며 기둥부분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의 세호(細虎)가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망주석은 연환이 띠의 형태로 되어 있고 운각문도 없으며 염우에도 무늬가 없는데 운각과 염우 사이에 이중으로된 띠가 둘러져 있다. 세호 역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인데 기둥부분이 아니라 염우와 기둥부분에 걸쳐서 조각되어 있다. 또 한 쌍의 동자석이 좌우에 있었는데 최근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인엽묘의 바로 아래에 있는 이하곤(李夏坤)의 묘는 봉분이나 기본배치가 위에 있는 이인엽의 묘와 같다. 다만 문인석이 없고 망주석이 위에 있는 것과 정반대의 자리에 대칭적인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문중 후손들의 말을 빌면 2001년 묘를 수축할 때 한쪽의 망주석은 따로 옮겨 놓았다가 산역(山役)이 끝난 뒤에 다시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망주석도 그때 바뀐 것으로 보인다. 상석은쑥색을 띠고 있는 애석(艾石)으로 생각되는데 역시 후손의 증언에 의하면 전라남도 강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위의 묘와 달리 고석(鼓石)이 아닌 화강석의 받침위에 상석을 놓았으며 향로석도 받침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다.

 

봉분의 오른쪽에 있는 묘갈역시 형태와 재질이 같다. 비신의 전면에는「贈嘉善大夫吏曹參判李公墓碣銘」이라는 두전이 있고 네 면에 비문이 있는데 성균관대학교 교수인 임형택(林熒澤)이 비문을 지었고 이춘희가 글씨를 썼으며 이정희가 세웠다고 되어 있다.

 

맨 아래편에 있는 묘는 손자인 이석표(李錫杓)의 묘인데 최근 진천에서 이장해온 것이다. 봉분옆에는 묘갈이 있는데 위에 있는 것들과 크기나 형태가 같다. 비신에는「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李公墓碣銘」이라는 두전이 있고 네 면에 비문이 있다.

 

상석의 형태와 구성이 위의 이하곤의묘와 같으나 상석이 재질은 오석이다. 망주석도 위의 것과 형태나 조각수법이 동이하다. 이를 보면 이하곤과 이석표의 묘의 석물은 동일한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주이씨 회와공가 묘역

 

자료명 소재지 시대 비고
이인엽(李仁燁)묘 백암면 가창리582 조선 吏曹判書,大提學
이하곤(李夏坤)묘 백암면 가창리582 조선 贈弘文館副提學
이석표(李錫杓)묘 백암면 가창리582 조선 贈吏曹參議,
鎭川에서 遷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