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헌일고(檜軒逸稿)/全州人 柳義孫 著
지창령현사강공비명(知昌寧縣事姜公碑銘-姜友德)
공(公)의 성(姓)은 강(姜)씨요, 이름은 우덕(友德)이며, 자는 자보(子輔)로서 진주(晋州)의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이다. 고려(高麗)의 감찰어사(監察御使) 휘(諱) 사첨(師瞻)의 5세손이며, 4세조인 증문하시중 진원부원군 판도정랑(贈門下侍中晉原府院君版圖正郞) 휘 창귀(昌貴)가 합문지후(閤門祗候) 윤보(允保)의 따님 영가군부인 권씨(永嘉郡夫人權氏)를 맞이하여 봉산군(鳳山君) 휘(諱) 군보(君寶)를 낳았다.
봉산군(鳳山君)은 계림군부인김씨(鷄林郡夫人金氏)를 맞이하니 전객령(典客令) 휘(諱) 여진(呂珍)의 따님이다. 추충보조공신 대광상의 찬성사 동판도평의 동판선공시사 좌우위상호군(推忠補祚功臣大匡商議贊成事同判都評議同判繕工寺事左右衛上護軍)을 낳으니 시호(諡號)는 공목(恭穆)이고 이름은 시(蓍)이다.
공목공(恭穆公)은 진신군부인(晉山郡夫人) 하씨(河氏)를 맞이하니 진산군(晉山君) 시호(諡號) 원종공(元正公) 즙(楫)의 따님인데 정헌대부 동북면 도순무사 겸 병마절제사 영흥부윤(正獻大夫東北面都巡問使兼兵馬節制使永興府尹) 휘(諱) 회백(淮伯)을 낳았다.
도순무사(都巡問使)가 동래군부인 정씨(東來郡夫人鄭氏)를 맞이하니 봉원군(蓬原君) 휘(諱) 양생(良生)의 따님인데 우왕 11년(1385)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어질고 효도를 하였으며 나이 6세에 모친을 잃고 18세에 부친이 별세하니 장례를 지내고 여막에 살며 힘써 예법에 따라 하고 복을 벗으니 음사(蔭仕)로 태종 15년(1415)에 승사랑(承仕郞-從八品) 영고(盈庫)의 주부(主簿)를 제수 받고 그 해 가을에 외직에 나가서 선무랑(宣務郞-從六品) 예안현감(禮安縣監)을 하였다.
태종(太宗) 18년(1418)에는 곡성군수(谷城郡守-從四品)가 되어 승의랑(承議郞)에 오르고 세종(世宗) 2년(1420) 겨울에 불러서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從六品)를 제수 받고 세종 4년(1422) 가을에 외직에 나가 봉훈랑(奉訓郞) 이천현감(伊川縣監-從六品)을 하고 세종 9년(1427) 봄에 봉직랑(奉直郞-從五品 品階) 영춘 현감(永春縣監)을 하고 세종 13년(1431) 겨울에 통선랑(通善郞-正五品 品階)에 오르고 세종14년(1432)에 불러서 사온서령(司醞署令)을 하고 얼마 아니 되어 여러 번 의영고사(義盈庫使), 한성판관(漢城判官-從五品), 사선서령(司醞署令)에 옮기고 통덕랑(通德郞-正五品 品階)에 올랐다.
세종(世宗) 16년(1434) 9월에 외직으로 나가서 창녕현감(昌寧縣監)을 하고 세종 18년(1436) 봄에 품계가 조봉대부(朝奉大夫-從四品의下)에 오르고 다시 고을의 행정을 맡았다. 세종 20년(1438) 여름에 품계가 조산대부(朝散大夫-從四品의上)에 오르고 임기가 찼는데 불행이 병이 들어 세종 21년(1439) 가을의 8월 10일에 임지에서 별세하니 향년 55세이다.
읍내 사람들이 귀하고 천함이 없이 자기부모의 상(喪)과 같이하고 혹 공을 위하여 상복을 입는 자도 있었다. 그 해 11월 10일에 진주(晉州) 반성현(班城縣) 반야동(盤野洞) 신산(辛山) 동남향의 산기슭에 장사를 지내었다. 대개 공의별장에서 3리 거리가 되는 곳이다.
공은 사람됨이 밝고 민첩하며 너그럽고 덕이 있어 모든 사직을 지낼 때 직분을 닦아 일을 잘하고 외직에 나가서는 여러 고을을 맡아 다스리니 관원들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존경하였다. 청백한 절개를 지키며, 자기의 산업을 등한시하고 근검하고 봉공하여 세력과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공의 평생행실이 대개 이와 같았다.
공은 재령이씨(載寧李氏)를 맞이하니 조봉대부 지보주사(朝奉大夫知甫州事) 휘(諱) 혜(蕙)의 따님이다.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 맹경(孟卿)은 봉훈랑판관의정부 검상조예사검상 겸 춘추관기주관(奉訓郞判官議政府檢詳條例司檢詳兼春秋館記注官)이다.
세종 11년(1429)에 허사문방(許斯文榜) 아래에 급제하고 처음에 예문관검열(藝文檢閱-正九品)을 제수 받고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正七品),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正六品), 이조좌랑(吏曹佐郞-正六品)에 옮기니 재주와 지식이 높고 남보다 앞서니 그 때 추천한 바가 되었다. 다음은 일계(曰季-叔卿을 말함)인데 어리다.
판관(判官-孟卿을 말함)은 파평윤씨(坡平尹氏)를 맞이하니 과의장군 호용위사 상호군(果毅將軍虎勇衛司上護軍) 휘(諱) 수미(須彌)의 따님이다. 장녀는 선략장군 호분시위 후호군(宣略將軍虎賁侍衛司後護軍) 박거겸(朴居謙)에게 출가하였는데 고려학사(高麗學士) 휘(諱) 의중(宜中)의 손자이다.
다음은 유학(幼學) 조유(曹柔)에게 출가하였는데 전 통정대부 수원도호부사(前通政大夫水原都護府使) 휘(諱) 유인(由仁)의 아들이다. 그 다음은 어리다. 판관(判官-孟卿을 말함)은 1남 2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다. 호군(護軍)은 1녀를 낳았는데 어리다.
공의동생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正三品 堂上官) 석덕(碩德)이 나에게 명을 부탁하고 또 판관이 나의 동서라 이에 감히 사양치 못하고 명(銘)하여 가로되
이름난 문벌이여!
오직 진주(晋州)의 강씨(姜氏)로다.
그 선대에 빼어난 경사가 길어 경상을 하니
아름답고 열렬한 빛이 있도다.
오직 공이 그 끝을 이어 훌륭한 명성이 심히 화창하도다.
덕이 있고 행실이 있으니 마땅히 장수하고 건강할 것인데
어찌 여기에 이르러 기리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고.
자식과 손자가 있으니 꽃다움이 영원히 흐르리라.
정석(貞石)에 새겨 무강(無彊)을 분명히 뵈인다.
직제학 지제교(直提學知製敎) 류의손(柳義孫)이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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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知昌寧縣事姜公碑銘(지창령현사강공비명)
公姓姜諱友德字子輔晋州世家也高麗監察御使諱師瞻之五世孫也四世祖追贈門下侍中晉原府院君
공성강휘우덕자자보진주세가야고려감찰어사휘사첨지오세손야사세조추증문하시중진원부원군
版圖正郞諱昌貴娶永嘉郡夫人權氏閤門祗候允保之女生鳳山君諱君寶鳳山君娶鷄林郡夫人金氏典
판도정랑휘창귀취영가군부인권씨합문지후윤보지녀생봉산군휘군보봉산군취계림군부인김씨전
客令諱呂珍之女生推忠補祚功臣大匡商議贊成事同判都評議同判繕工寺事左右衛上護軍諡恭穆公
객령휘여진지녀생추충보조공신대광상의찬성사동판도평의동판선공시사좌우위상호군시공목공
諱蓍恭穆公娶晉山郡夫人河氏晉山諡元正公楫之女生正獻大夫東北面都巡問使兼兵馬節制使永興
휘시공목공취진산군부인하씨진산시원정공즙지녀생정헌대부동북면도순문사겸병마절제사영흥
府尹諱淮伯都巡問使娶東來郡夫人鄭氏蓬原君諱良生之女洪武十八年乙丑生公公幼而聰慧慈孝年
부윤휘회백도순문사취동래군부인정씨봉원군휘량생지녀홍무십팔년을축생공공유이총혜자효년
六歲失母十八嚴君又下世旣葬居廬務遵禮則服闋以門蔭授散員永樂三年乙未拜承仕郞義盈庫主簿
육세실모십팔엄군우하세기장거려무준례즉복결이문음수산원영락삼년을미배승사랑의영고주부
秋出補宣務郞禮安縣監戊戌夏移守谷城階加承議郞庚子冬召拜禮賓主簿壬寅秋出爲奉訓郞伊川縣
추출보선무랑예안현감무술하이수곡성계가승의랑경자동소배예빈주부임인추출위봉훈랑이천현
監丁未春又爲奉直郞永春縣監辛亥冬階加通善郞壬子春徵拜司醞署令未幾屢遷義盈庫使漢城判官
감정미춘우위봉직랑영춘현감신해동계가통선랑임자춘징배사온서령미기루천의영고사한성판관
司膳署令階加通德郞甲寅秋九月出守昌寧縣正統元年丙辰春階加朝奉大夫仍改知縣事戊午夏又加
사선서령계가통덕랑갑인추구월출수창령현정통원년병진춘계가조봉대부잉개지현사무오하우가
朝散大夫爪期己滿不幸患疾己未秋八月十日乙酉卒于任所公年五十有五邑人無貴賤如失怙恃或有
조산대부조기기만불행환질기미추팔월십일을유졸우임소공년오십유오읍인무귀천여실호시혹유
爲公服喪者是年十有一月十日庚申葬于晉州班城縣治內西村盤野洞辛山戊坐辰向之原蓋與公之別
위공복상자시년십유일월십일경신장우진주반성현치내서촌반야동신산무좌진향지원개여공지별
墅隔三里許也公爲人聰敏寬厚歷諸司職修事擧出宰數邑吏畏民懷淸白守節不營産業勤謹奉公不畏
서격삼리허야공위인총민관후역제사직수사거출재수읍리외민회청백수절불영산업근근봉공불외
勢威公之平生行義大略如是公娶載寧李氏朝奉大夫知甫州事諱蕙之女生二男三女長曰孟卿奉訓郞
세위공지평생행의대략여시공취재령이씨조봉대부지보주사휘혜지녀생이남삼녀장왈맹경봉훈랑
判官議政府檢詳條例司檢詳兼春秋館記注官己酉年中許斯文榜下及第初拜藝文檢閱遷承政院注書
판관의정부검상조례사검상겸춘추관기주관기유년중허사문방하급제초배예문검열천승정원주서
司憲監察吏曹佐郞才識高邁爲時所推次曰季幼判官娶坡平尹氏果毅將軍虎勇衛司上護軍諱須彌之
사헌감찰이조좌랑제직고매위시소추차왈계유판관취파평윤씨과의장군호용위사상호군휘수미지
女也女長適宣略將軍虎賁侍衛司後護軍朴居謙高麗學士諱宜中之孫也次適幼學曹柔前通政大夫水
녀야여장적선략장군호분시위사후호군박거겸고려학사휘의중지손야차적유학조유전통정대부수
原都護府使諱由仁之子也次幼判官生一男二女幼護軍生一女幼公弟承政院同副承旨碩德屬余以銘
원도호부사휘유인지자야차유판관생일남이녀유호군생일녀유공제승정원동부승지석덕속여이명
且判官於余友壻也義不敢辭其銘曰
차판관어여우서야의불감사기명왈
赫赫名閥維晉之姜越自先世毓慶斯長爲卿爲相休有烈光維公繼緖令聞孔彰有德有行宜壽而康胡至
혁혁명벌유진지강월자선세육경사장위경위상휴유렬광유공계서령문공창유덕유행의수이강호지
於斯永矣其傷有子若孫億載流芳刻銘貞石昭示無彊
어사영의기상유자약손억재유방각명정석소시무강
直提學知製敎柳義孫 撰
직제학지제교류의손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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