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동암 이진선생

동암 이진선생 약사(東菴李瑱先生略史)

야촌(1) 2014. 10. 12. 19:53

■ 동암 이진선생약사(東菴李瑱先生略史) 

 

이진「李瑱,1244년(고종 31)~1321년(충숙왕 8)」은 고려 말의 문신(文臣)으로, 초명은 방연(方衍), 자(字)는 온고(溫古), 호(號)는 동암(東菴), 본관은 경주(慶州),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금서(金書)의 후손으로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내고 상서성좌복야(尙書省左僕射)에 추증된 핵(翮)의 아들이고 익재 제현(齊賢)의 아버지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백가에 능통하여 신흥관료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웠으며, 제자백가(諸子百家)에 박통하고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국재 권부((菊齋 權溥), 역동 우탁(易東 禹倬), 매운당 이조년(梅雲堂 李兆年), 이재 백이정(彝齋 白頤正), 덕재 신천(德齋 德齋)과 함께, 안향(安珦) 문하의 이름난 육군자(六君子)의 한사람이고. 그의 벗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광주사록(廣州司錄)을 거쳐 직 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 충렬왕이 시부(詩賦)로써 친히 문신들을 시험하여 9명을 뽑았는데 제2등으로 뽑혔다. 기거중서사인(起居中書舍人)이 되었다가 안동부사로 나가 민폐를 없애고 학교를 일으키는 데 공헌하였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군부총랑(軍部摠郎)이 되고, 1297년(충렬왕 23)에 우사의대부사림원학사 시우산기상시(右司議大夫詞林院學士試右散騎常侍)를 거쳐 대사성 밀직승지(大司成密直承旨)가 되었으며, 1303년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1307년 적폐(積弊)의 일소를 상소한 것이 채택되어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된 뒤, 상의도첨의사사찬성사(商議都僉議司事贊成事)가 되었다. 1313년에 충숙왕(忠肅王)이 즉위하자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이 되고, 임해군(臨海君)에 봉작되었다.

 

1315년에는 과거의 고시관(考試官)이 되어 진사(進士)를 뽑았다. 1320년에는 아들 제현(齊賢)이 과거의 고시관이 되어 새 문생(門生)을 거느리고 수(壽)를 칭송하자 전왕인 충선왕(忠宣王)이 은병(銀甁) 200개와 쌀 50석을 하사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학문과 시주(詩酒)로 소요하였다. 충주 도통사(道統祠), 보령의 삼사당(三思堂), 울산의 태화서원(太和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동암집(東庵集)』이 전한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참고문헌(參考文獻)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문선(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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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내용] 

 

● 안향 문하의 육군자(安珦 門下의六君子) 

 

성리학의 본향인 송나라의 대표적 성리학자를 송조육현(宋朝六賢)이라고 부른다. 

이는 소옹(邵雍,1011~1077), 주돈이(周敦頤,1017~1073), 장재(張載:1020~1070),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1033~1107), 주희(朱熹,1130~1200)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문하에 이름난 여섯 학자를 육군자라고 해 추앙해 마지않았다.

육군자(六君子)는 국재 권부((菊齋 權溥) , 동암 이진(東菴 李瑱), 역동 우탁(易東 禹倬), 매운당 이조년(梅雲堂 李兆年), 이재 백이정(彝齋 白頤正), 덕재 신천(德齋 德齋)등을 일컫는다. 

 

고려 말의 대학자요. 정치가였던 익재 이제현이 동암의 아들이며, 국재 권부의 사위며, 백이정의 문인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안향의 학문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안향이 세상을 떠날 때 백이정「1247(고종 34)∼1323(충숙왕 10)」, 동암「1244년(고종 31)~1321년(충숙왕 8)」,권부「1262(원종 3)∼1346(충목왕 2)」등 문인들에게 “나는 학문이 그대들보다 못하였다.

 

그대들은 연상이나 동년이라고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내가 세상을 떠나면 우탁「禹倬,1262(원종 3)∼1342(충혜왕 복위 3)」을 나와 같이 스승으로 모시고 섬기라”고 당부했다. 

 

이에 당시 백이정의 문인이던 익재 이제현「1287년(충렬왕14)∼1367년(공민왕16)」과 치암 박충좌「恥菴 朴忠佐,1287(충렬왕 13)~1349(忠定王 1)」 등 24인과 권부의 문인이던 가정 이곡「稼亭 李穀, 1298~1351)」,담암 백문보「澹菴 白文寶, 1303(충렬왕 29)∼1374(공민왕 23)」,졸옹 최해「拙翁 崔瀣, 1287(충렬왕 13)∼ 1340(충혜왕 복위 1)」 등 19인이 모두 역동 우탁(易東 禹倬, 1263~1342)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해 학문적 계보가 이어졌다.

 

<執筆 : 李在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