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살면서 우연히 글을 짓다.
(山居偶題 : 산거우제)
-지은이 : 동암 이진(東菴 李瑱)
滿空山翠滴人衣(만공산취적인의)
하늘에 가득한 산의 푸른 기운이 옷을 적시고,
草緣池塘白鳥飛(초연지당백조비)
풀이푸른 연못가에는 해오라기 날아간다.
宿霧夜棲深樹在(숙무야서심수재)
짙은 안개는 숲속에서 잠이 든 밤에
午風吹作雨霏霏(오풍취작우비비)
마파람(남풍)불어오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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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산속 집이다.
푸른 기운이 허공에 자욱하다.
가만히 서있는 사람의 옷깃을 적신다.
초록빛 연못 위로 포물선을 그으며 흰 새가 날아간다.
이른 아침 안개는 아직도 늦잠에 빠져 숲 속에 혼곤히 잠들어 있다.
푸른 산, 푸른 이내, 초록의 연못, 흰 안개 저편으로 사라지는 흰 새.
화면은 온통 푸른 물감과 초록 물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 위로 또 흰 물감을 흘려 번지기 수법으로 수채화를 그렸다.
푸른 산 속을 거니노라니,
내 옷 위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다.
초록 물감을 씻어내며 안개 속으로 새가 난다.
오후로 접어들자 고요하기만 하던 숲 속에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숲 속에 잠겨 있던 안개를 일렁인 모양이다.
안개가 제풀에 잠을 깨어 숲을 빠져 나오다
어느새 보슬비가 되어 화면 위로 스프레이를 뿌린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화면 가득하던 물감을 다 씻어내 버릴 것만 같다.
나른한 그림이다.
산속을 혼자 거닐다보면 생각은 유리알처럼 투명해진다.
숲속 이내에 내 옷에 푸른 물이 들면 어느새 나는 숲의 일부가 된다.
안개 속으로 날아간 흰 새도 안개가 되었다.
이윽고 나도 없고 새도 없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만치 있던 자연이 내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물아일체. 내 안의 연못에도 저 근원으로부터 신선한 물줄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수면 위로 안개가 스물스물 피어난다.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출전]
동암선생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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