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동암 이진선생

익재공 배위의 계대에 관한 함양박씨 카페 내용 중 오문관련 글

야촌(1) 2013. 8. 5. 22:58

■ 익재공 배위의 계대에 관한 함양박씨 카페 내용 중 오문관련 글

 

이제현(李齊賢)은 함양 박거실(咸陽朴居實)의 사위는 잘못.

박충좌와 이제현은 1287년생 동갑내기인데, 이제현은 박충좌의 증손서(曾孫壻-증손녀 사위)가 되었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이를 경주이씨 세보의 기록과 함양박씨 거실 계대와 춘천 박씨 계대를 알아보고

그 연관성을 살펴 위의 함양 박씨의 오문 관련 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 P207 족보 ‘제현(齊賢)’ 의 2배(二配) 기록

   [配 春川朴氏 司僕寺正 居實의 女요. 代言 瓊의 孫이요. 判書 忠佐의 曾孫이요.

   贊成 原州 原瓘의 外孫이다. 生二男三女]

  (배 춘천박씨 사복사정 거실의 여요. 대언 경의 손이요. 판서 충좌의 증손이요.

  찬성사 원주 원관의 외손이다. 생 2남 3녀)

 

 

 

 

●함양 박 씨 무신보 정조 12년(咸陽朴氏戊申譜正祖十二年) (1788)

 

함양박씨 지빈파(咸陽朴氏之彬派) 거실(居實) 계대

 

6세 지빈(之彬)- 문과(文科). 조청대부(朝淸大夫). 위위(尉위) 치사(致仕)- 위(衛-口아래巾 -막을 위. 호위할 위)

7세 장(莊)- 문과(文科) 총랑(摠郞) 추봉 함양부원군(追封咸陽府院君)

8세 충좌(忠佐)- 자 자화(子華). 호 치암(恥菴-心=止). 문과(文科). 찬성(贊成).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 시 문제

(諡文齊)

9세 경(瓊)- 문과(文科). 판서(判書)

10세 거실(居實)- 우윤(右尹)

11세 5남 1여 중 여 이지유(女李之柔)에게 출가

 

 

● 춘천 박씨 세보(春川朴氏世譜) 거실(居實)의 계대

 

1세 중시조 항(中始祖 恒)- 초휘 동보(初諱東甫). 자 혁지(字革之). 등문과(登文科).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증시 문의(贈諡文懿). 사림(士林)에서 구봉서원(九峰書院)을 건립하여 향례(享禮)

 

2세 원굉(元宏)- 개명 광정(改名光挺). 등문과(登文科). 대광문하평장사(大匡門下平章事). 김부만호(金符萬戶)

 

3세 안구(安具)- 등 문과(登文科). 집현전 대제학(集賢殿大提學).

4세 거실(居實)- 사복시정(司僕寺正)

5세 1남 3녀 중 장녀- 이제현(李齊賢) 경주인(慶州人) 호 익재(號益齋). 시 문충(諡文忠).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6세 자 달존(子達尊)- 호 운와(號雲窩). 보문각 직제학(普門閣直提學).......

자 창로(子彰路)- 밀직(密直). 유효행(有孝行).......

 

1녀-박동생(朴東生)- 영해인(寧海人) 판사(判事)........

2녀- 송무(宋懋)- 진천인(鎭川人). 판전(判典).......

3녀- 공민왕 혜비(恭愍王惠妃)

 

위의 함양박씨 세보와 춘천박씨 세보의 계대를 살펴보니 함양 박씨 10세 거실의 딸은 이지유

에게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춘천박씨 4세 거실의 3녀 중 장녀가 경주인 이제현에게 출

가하여 달존. 창로의 2남과 3녀를 출산한 것으로 춘천박씨 세보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오문

의 족보에 기록된 익재공 2배 춘천박씨 계대(代言 瓊의 孫이요. 判書 忠佐의 曾孫.)는 잘못

오기(誤記)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말하면 경주 이씨 중조 17세 익재공(휘 제현) 2배(二配)인 춘천 박 씨의 계대는 춘천박씨 세보의 계대가 아닌 함양 박씨 박거실의 계대를 올려놓은 것이 분명하다.

 

박거실의 행적을 쫓다가 춘천박씨가 아닌 함양박씨 거실의 계대를 실수로 오기(誤記)한 것으로 보인다.

 

17세 익재공(휘 제현) 2배(二配)인 춘천 박씨의 경주이씨 대종보의 계대는

[춘천박씨(春川朴氏) 사복시정(司僕寺正) 거실(居實)의 녀(女)요. 대언(代言) 경(瓊)의 손(孫)이요.

판서(判書) 충좌(忠佐)의 증손(曾孫)]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지 함양박씨(咸陽朴氏)의 세보(世譜)에는 그 계대(系代)가 [10세 우윤(右尹) 거실(居實). 9세 판서(判書) 경(瓊). 8세 찬성사(贊成事) 충좌(忠佐)]로 기록하고 있다.

 

익재공(益齋公- 휘 제현)에게 출가(出家)하였다는 거실(居實)의 1녀는 충좌(忠佐)의 증손(曾孫)이라고 하였으나  실지 우윤(右尹) 거실(居實)의 1녀는 이지유(李之柔)에게 출가하였다.

 

벼슬명도 달라 오문(吾門)의 족보에는 휘 거실(居實)의 관직이 사복시정(司僕寺正)인데 함양박씨(咸陽朴氏)의 세보(世譜)에는 우윤(右尹)으로 되어 있고 오문(吾門)의 족보에는 휘 경(瓊)의 관직이 대언(代言)이나 함양박씨 세보에는 판서(判書)이고

오문의 족보에는 휘 충좌(忠佐)의 관직이 판서(判書)이나 함양박씨 세보에는 찬성사(贊成事)로 되어 있다.

 

춘천박씨(春川朴氏) 휘 거실의 계대를 살펴보자.

1세 중시조(中始祖)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 항(恒)

2세 대광문하평장사(大匡門下平章事). 김부만호(金符萬戶) 원굉(元宏)

3세 집현전 대제학(集賢殿大提學). 안구(安具)

4세 거실(居實)- 사복시정(司僕寺正)

5세 3녀 중 장녀가 익재문충공(益齋文忠公)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이제현(李齊賢)에게 출가(出家). 외손 보문각직제학(普門閣直提學) 운와공(雲窩公) 달존(達尊). 밀직공(密直公) 창로(彰路)와 3녀 중 셋째가 공민왕(恭愍王)의 혜비(惠妃)로 기록되어 있다.

 

오문(吾門) 족보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사복시정(司僕寺正) 거실(居實)의 관직까지는 같으나 윗대의 계대가 모두 틀린다. 그러나 사복시정(司僕寺正) 거실(居實)과 그 아랫대(5세) 3녀 중 첫째가 익재공에게 출가한 사실과 2남 3녀를 생산한 것은 오문 족보의 기록과 같다.

 

이 사실이 정확하다면 오문 족보의 익재공 2배(二配)의 계대는 아래와 같이 바뀌어야 한다.

 

[춘천박씨(春川朴氏) 사복시정(司僕寺正) 거실(居實)의 녀(女)요.

대제학(大提學) 안구(安具)의 손(孫)이요.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원굉(元宏)의 증손(曾孫)이요.

중시조(中始祖)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 항(恒)의 현손이다.]

 

중앙화수회와 익재공파 대종회에서는 이 일을 조사하여

함양 박씨 문중에 별도의 조처가 있어야함은 물론

아울러 다음 수단시에 수정함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

<끝>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