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록을 찾아서」낸 지영재씨
(서울=연합뉴스) 홍성록기자 = 2003년 07월 18일 PM 12:11:45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8-1367)은 몽골족이 고려를 지배하던 시절, 한시를 통해 고려문화의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국권신장을 꾀했던 인물입니다." 단국대 중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지영재(67)씨가 고려시대 시인 이제현이 시작활동을 통해 고려와 원의 관계개선을 돕고 고려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 애썼던 외교관이었음을 주장한 「서정록을 찾아서」(푸른역사 刊)를 출간했다.
`자주성을 잃은 고려'라는 특별한 시대를 살아야했던 익재는 14세기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에 세운 만권당(萬卷堂)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한시의 대가이자 여행가. 만권당은 고려와 원나라의 고급관료들이 책과 시(詩)를 통해 교류하던 곳으로 이 곳의 당시 핵심인물이 익재였다.
"당시 충선왕은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만권당을 중심으로 원나라 고위층과 교류하며 친(親)고려 여론을 형성하는 외교정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충선왕을 도와 만권당에서 활동하던 이제현은 중국 서부 어메이산(峨眉山)에서 행해지는 산신제에 원나라 황제의 특사로 가게 되죠." 익재는 어메이산으로 가는 4-5개월의 여정(旅程)에서 한시 31수를 지었으며 이 시를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서정록(西征錄)(1316)」이다.
"익재는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시를 지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한시 대부분은 원나라 지배의 정당성을 노래하는 것들이지만 그 속에는 고려역사의 정통성과 우수한 문화에 대한 찬양도 들어 있어요."
지씨는 익재가 여행 중에 지은 시를 인편을 통해 계속 연경으로 보냈던 것을 봐도 의도적이었음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인편을 통해 시를 보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였죠. 한시가 상류층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현은 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고려문화가 화제의 중심이 되도록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정록의 존재는 일본에 소장돼 있던 고려말 학자 최해(崔瀣, 1287-1340)의 문집 「졸고천백(拙藁千白)」을 통해 1930년에야 비로소 확인된다. 「졸고천백」은 또한 모함을 받아 도스마(당시 티베트인의 거주지역)에 유배된 충선왕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익재가 지었다는 한시 35수를 담은 「후서정록(後西征錄」(1323)의 존재도 확인시켜 준다.
"「서정록」과 「후서정록」의 특징은 한 여행을 한 시리즈의 시로 읊었다는 것입니다. 한 제목 아래 짧은 시 여러 수를 차례로 엮으면 그대로 긴 이야기가 되는 서사시가 되는 거죠. 이는 새로운 시작(詩作)의 형식이고 익재는 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은 지씨가 이제현의 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난 96년부터 시작한 7년간의 중국기행의 결과물이다
지씨는 "베이징을 시작으로 익재의 여행지 1백여곳 가운데 90여곳 이상을 돌아봤다"며 "여행은 `익재와의 대화'였다"고 말했다. "역사의 현장에 서니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시의 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되더라구요. 여행을 통해 많이 달라진 역사현장을 보면서 역사의 쓸쓸함도 느꼈습니다."
지씨는 중국여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익재 이제현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익재의 도스마 여정길을 나타낸 지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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