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李達意)
[세 계] 29世 국당공 후 제정공파
[문과] 효종(孝宗) 8년(165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8위(18/34)/합격연령 : 42歲
[진사시] 孝宗 5年(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3등(三等) 41위(71/100)/합격연령: 39歲/거주지>
영주(榮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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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광해군 8)∼1705년(숙종 31).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이정(以正)이고, 호는 석촌(石村)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주(榮州)이다.
증조부는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이고, 조부는 이휘음(李徽音)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주진관병마절제도위(全州鎭管兵馬節制都尉) 이숭언(李崇彦)의 5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권집(權集)이다. 동생으로 이원의(李遠意)‧이수의(李遂意)‧이술의(李述意)‧이적의(李適意)가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처부는 박료(朴炓)이고, 둘째 처부는 채진형(蔡震亨)이다.
1654년(효종 5) 식년시 진사 3등 41위로 합격하고, 1657년(효종 8) 식년시 병과 8위로 문과급제하였다. 관직은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예조정랑(禮曹正郞)‧함안군수(咸安郡守)‧서천군수(瑞川郡守)‧삼척도호부사(三陟都護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서천군수 재임 시절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삼척도호부사 재임 시절 경신출척(庚申黜陟)으로 물러난 후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며 두문불출하였다. 그 후 몇 차례 더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80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유고로 『석촌집(石村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