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밀풍군 이탄(密豊君 李坦) - 조선의 왕족

야촌(1) 2014. 6. 30. 23:14

■ 밀풍군 이탄(密豊君 李坦),

   [생졸년] : 1688년(숙종 14)∼1729년(영조 5)

 

본관은 전주(全州), 소현세자(昭顯世子>인조의 長男)의 셋째아들인 경안군(慶安君) 이회(李檜)의 손자이며, 임창군(臨昌君) 이곤(李焜)의 아들이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귀국하자 인조는 왕권에 위협을 느껴 소현세자를 독살하고 그의 세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맏아들 경선군(慶善君)과 둘째아들 경완군(慶完君)은 그곳에서 죽고, 경안군만이 혼자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밀풍군 이탄은 소현세자의 혈손이기도 하다.

 

경종 3년(1723) 사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영조 2년(1726)다시 사은사 겸 동지사가 되어 다녀왔다.

영조 4년(1728) 소론인 이인좌(李麟佐) 등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자 반란을 일으켰을 때 훈련대장 남태징(南泰徵)과 그의 아우인 태적(泰績), 이정(李檉) 등이 명망있는 왕족인 그를 임금으로 옹립하려 한 것 일뿐 밀풍군 자신은 그 난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반란 세력에게 왕으로 옹립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밀풍 군을 사사하라는 상소가 끊이지 않았으며, 결국 자결하라는 명을 받았다. 서른둘의 나이였다.

 

난이 평정된 뒤 밀풍 군은 자결하였고, 동생 밀운군 훈마저 나중에 또 다른 역모에 연루되어 죽었다.

이 때가 소현세자 후손들의 최대 위기였다. 1864년(고종 1)에 와서야 복권되었다.

 

밀풍군의 차남 상원군(商原君) 상대(尙大)는 숙종의 여섯째 왕자 연령군의 사후에 양자로 입적 되었지만, 후손이 없어 파양되었다고 한다.

 

 

↑밀풍군 이환(密豊君 李坦) 墓 / 사진ⓒ개미실사랑방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65-2(정원가든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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