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書. 간찰. 시(詩)

이유인 간찰(李裕寅簡札)

야촌(1) 2014. 5. 25. 18:08

 ▲크기 : 26㎝(가로) x 24㎝(세로)

 

●이유인 간찰(李裕寅簡札)

 

1888년(고종 25) 파주목사(坡州牧使)로서 전무위원(電務委員)이 되어 기해전선(畿海電線)을 연로(沿路)에 가설하는 데 공헌하였다. 1894년 함경남도 관찰사, 1896년 중추원 일등의관이 되었다.

 

1897년(광무 1) 덕수궁을 수리했으며 뮈텔 주교(主敎)를 왕에게 소개하여 국호(國號: 대한제국)·연호(年號: 광무)의 제정을 돕게 했다. 1898년 법부대신(法部大臣)이 되었으나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을 규탄하여 한때 유배되었다. 

 

그 후 경무사(警務使)가 되고 1904년 심상진(沈相震)과 함께 보안회(輔安會)를 조직, 부회장으로서 배일운동에 앞장섰다. 1905년 공진회(共進會) 사건으로 구속, 이듬해 석방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대리(忠淸北道 忠州市 仰城面 龍垈里)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