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춘(同春,宋浚吉) 선생에게 올린 제문
계축년(1673, 현종 14)
약천 남구만 찬(藥泉 南九萬 撰)
우리 선생이 이 세상에 생존하신 지 / 惟我先生之在斯世
육십 칠년이 되셨는데 / 六十有七春
시종을 고찰하여 논한다면 / 考論始終
덕을 구비하지 않음이 없고 / 德無所不備
도가 순수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 道無所不純
일찍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함은 / 夙遊師門
안회(顔回)와 증삼(曾參)의 무리였고 / 回參之倫
중년에 초야에 은둔함은 / 中處丘樊
기산(箕山)과 영수(穎水)의 백성이었고 / 箕潁之民
만년에 조정에 나아감은 / 晩進王庭
유신(有莘)과 위수(渭水) 가의 신하였습니다 / 莘渭之臣
혼탁한 세상을 격려하여 깨끗하게 하면 / 至若激濁揚淸
세상의 도가 나빠지지 않았고 / 則世道不淪
경전을 잡아 의논하면 / 執經諷議
요순의 도를 반드시 아뢰었으며 / 則堯舜必陳
춘궁의 우익이 되어서는 / 羽翼春宮
덕업이 날로 새로워졌고 / 則德業日新
영재를 기르면 / 樂育英才
훌륭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 則多士彬彬
또 한 번 나아가고 한 번 물러남을 / 又若一進一退
오직 의리를 따르고 / 惟義之遵
한 번 말하고 한 번 침묵함을 / 一言一默
오직 도를 따른 것으로 말하면 / 惟道之循
백세를 기다려도 의혹되지 않고 / 不惑俟乎百世
신명에게 질정해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 無愧質于明神
명과 성이 둘 다 지극한 것과 / 若夫明誠兩盡
학문의 정밀하고 순수함으로 말하면 / 問學精醇
이 소자가 측량할 바가 아니니 / 有非小子之攸測
어찌 감히 그 경지를 함부로 논하겠습니까 / 何敢妄議其所臻
노년에 병환을 앓으시면서도 / 乃若臨年屬疾
대궐에 소를 올려서 / 獻疏楓宸
군주에게 보답하고자 하셨으니 / 欲以報主
어찌 자기 한 몸을 계산하셨겠습니까 / 夫豈計身
사어가 시신으로 간한 간곡한 정성에 스스로 비견하였으니 / 自擬史魚尸諫之懇懇
덕원이 조서에 응하여 올린 간곡한 글과 같았습니다 / 頗同德遠應詔之諄諄
선생은 두 조정에서 세상에 드문 대우를 받으시어 / 先生受兩朝不世之遇
군주와 뜻이 부합하셨으니 / 契合昭融
삼대 이후로 일찍이 없던 바였습니다 / 自三代以下所未嘗有
손님과 스승의 지위로 높이고 / 尊以賓師
총재의 임무를 맡기니 / 位以冢宰
군주가 친애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 則君非不親矣
그리고 조정에 있으면 위아래 사람들 기뻐하고 / 在朝而上下欣聳
초야에 있으면 원근의 사람들 서로 향하여 / 在野而遠近傾嚮
다투어 만나 보려고 함이 기린과 봉황 같았고 / 爭覩如麟鳳
의심스러움을 상고함이 시초점과 거북점 같았으니 / 稽疑如蓍龜
도가 펴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 則道非不伸矣
그러나 불러오기가 어려웠고 하직하여 떠나가기가 쉬웠으며 / 然招徠之難而辭去之易
좋은 세상이 되어 도를 행함이 적고 근심스러운 세상이 되어 떠나감이 잦아서 / 樂行之少而憂違之頻
일찍이 한 달 동안 지위에 편안히 계시고 / 未嘗終月安於位
일 년 동안 조정에 편안히 계신 적이 없어 / 終歲安於朝
끝내 근세의 나쁜 풍속을 태고 시대로 만회하지 못하고 / 而竟不得挽近世於隆古
백성과 물건을 순박함으로 이루지 못하셨으니 / 致民物於熙淳
이는 과연 시운이 이미 나빠지고 / 是果時運已降
혼탁함이 날로 심해져서 / 澆漓日甚
인류가 / 而生人之類
유자의 어진 은택을 입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不可以被儒者之仁歟
섣달 계묘일은 / 臘月癸卯
우리 인류의 큰 불행이었습니다 / 人之不辰
선비들은 받들어 높이는 스승을 잃고 / 士失師宗
조정에서는 참다운 유자를 잃었으니 / 朝喪儒眞
사문이 망하고 / 斯文椓矣
덕교가 매몰되었습니다 / 德敎湮矣
그리하여 불초한 자는 다시는 시정 받을 곳이 없고 / 不肖者無復是正
현자는 더불어 이웃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 而賢者無與爲隣矣
불초한 소자는 / 小子無狀
외람되이 장려를 받아 / 猥蒙獎甄
문하에 출입한 지가 / 出入門下
이제 십육 년이 되었는데 / 于今十有六年
그동안 지내온 일을 회상하면 / 而歷想平日
마치 엊그제 일과 같습니다 / 怳如隔晨
춘방에서 밤에 대답하고 / 春坊夜對
경연에서 낮에 자문하며 / 經席晝詢
백부에서 주선하고 / 柏府周旋
동조에서 머뭇거렸습니다 / 東曹逡巡
동작 나룻배 안에서 우장(于將)을 하고 / 銅雀舟中之于將
서호의 정자에서 신신당부하였으며 / 西湖亭上之申申
검담에서 가을달이 밝을 때에 한가로이 모시고 / 黔潭秋月之侍燕居
읍호에서 여름철에 깨끗하게 모시던 것이 / 挹灝夏日之陪淸塵
선하게 눈에 남아 있으니 / 愔愔在目
이것을 생각하면 서글픈 마음 절로 일어납니다 / 觸念酸辛
태산이 이미 무너졌으니 / 泰山已頹
우러러볼 곳이 없고 / 瞻仰無因
봄바람이 이미 멀어졌으니 / 春風旣遠
따뜻한 자리에 오를 자 그 누구이겠습니까 / 登座何人
우리 선친의 상에 / 惟我先人之喪
선생께서 실로 묘지명을 지으셨는데 / 先生寔銘其幽窀
이제 멀리서 부음을 받았으나 / 今承遠訃
북쪽 땅의 벼슬살이에 매여 / 而繫官北地
직접 상여 줄을 잡을 수가 없으니 / 不得親執紼於素輴
평소의 은혜 저버림이 부끄러워 / 愧負平生
눈물이 수건을 가득 적십니다 / 泣涕盈巾
이에 천 리 먼 곳에서 제문을 봉함하여 / 玆緘千里之辭
제수를 올리며 슬픈 정성 아뢰오니 / 以薦哀誠於澗蘋
남쪽을 바라보고 길이 울부짖으매 / 南望長號
공사 간의 애통함이 똑같습니다 / 公私慟均
옛날 음성으로 가르쳐 주심을 받들 적엔 / 昔承音旨
물을 건널 때 나루터를 얻은 것과 같았습니다 / 如涉得津
세한의 말씀은 / 歲寒之喩
오래 전에 띠에 썼으니 / 久已書紳
지금부터 선생에게 보답하는 길은 / 從今所以爲報於先生者
이 말씀을 받들어 잊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 庶幾奉斯言而不磷
[각주]
[주01]안회(顔回)와 증삼(曾參)의 무리 : 안회와 증삼은 모두 공자의 훌륭한 제자이다.
[주02]기산(箕山)과 영수(穎水)의 백성 : 요(堯) 임금 때의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소부(巢父)가 기산과 영수 가에 살았으므로 이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03]유신(有莘)과 …… 신하 : 은(殷)나라 말기 강태공(姜太公)은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하면서 세월을 보내었고, 하(夏)나라 말기 이윤(伊尹)은 유신의 들에서 농사지으며 살았으므로 이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04]사어(史魚)가 …… 정성 : 사어는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추(鰌)이다. 영공(靈公)이 현신(賢臣)인 거백옥(蘧伯玉)을 등용하지 않고 간신인 미자하(彌子瑕)를 쓰자, 사어는 죽을 때에 그의 아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신하가 되어 현신을 등용하게 하지 못하고 불초(不肖)한 자를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죽어서 정당(正堂)에서 치상(治喪)할 수 없다. 나를 실(室)에다 빈소하라.” 하였는데, 영공은 이 말을 듣고 거백옥을 들어 쓰고 미자하를 물리쳤다 한다. 《孔子家語 卷5 困誓》
[주05]덕원(德遠)이 …… 글 : 덕원은 송(宋)나라 장준(張浚)의 자이다. 간신(姦臣) 진회(秦檜)가 금(金)나라와의 화의(和議)를 주장하여, 당시 척화(斥和)를 강력히 주장하던 악비(岳飛), 장준, 조정(趙鼎) 등을 모두 죽이거나 귀양 보냈는데, 장준은 유배지에서 열 번이나 상소하여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宋史 卷361 張浚傳》
[주06]좋은 …… 잦아서 :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좋은 세상이 되어 즐거우면 도를 행하고, 나쁜 세상이 되어 근심스러우면 떠나간다.〔樂則行之 憂則違之〕”라고 보이는바, 이는 세상이 좋아지면 나와서 벼슬하여 도를 행하고 세상이 나빠져 근심스러운 때가 되면 물러가 은둔함을 뜻한다.
[주07]우장(于將) : 《시경(詩經)》 패풍(邶風) 연연(燕燕)에 “제비와 제비의 낢이여, 오르내리도다. 저 사람이 돌아가매, 멀리 전송하노라.〔燕燕于飛 頡之頏之 之子于歸 遠于將之〕”라고 한 말에서 두 글자를 인용한 것으로, 멀리 전송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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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同春) 선생을 이장할 때 빈소(殯所)에 제사한 글.
병진년(1676, 숙종 2)
선생이 별세하실 때에 / 先生之沒
저는 북쪽 감영에 있어 / 我在北臬
염할 때에 옷을 받들지 못하였고 / 斂不奉衣
장례할 때에 무덤에 임하지 못하였습니다 / 窆不憑穴
지난번 산소에 성묘하니 / 頃拜兆域
풀이 이미 사 년을 묵었습니다 / 草已四宿
평소의 은혜 저버림이 부끄러우니 / 愧負平生
애통한 마음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 茹痛何極
이에 미쳐 화견을 하게 되어 / 逮玆和見
급히 달려왔습니다 / 匍匐來赴
옥 같은 모습과 낭랑한 음성 / 玉色金聲
다시 듣고 볼 수 없으나 / 不可聞覩
오직 영위(靈位)를 설치하여 / 惟設靈帷
초종 때와 같이 하였습니다 / 若在初終
슬픈 마음 솟구치매 / 哀懷坌涌
눈물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 有涕盈胸
아, 선생이시여 / 嗟我先生
실로 그 덕을 온전히 하셨습니다 / 實全其德
학문은 세상의 스승이 되고 / 學爲世師
충성은 국가에 남아 있습니다 / 忠則在國
얼음이 이르는 걱정이 깊어 / 憂深氷至
둔괘(遯卦)를 얻고도 상소를 불태우지 않았는데 / 不焚遯章
먼저 기미(箕尾)를 타고 가시어 / 先騎箕尾
부행(涪行)에 곤궁하지 않았습니다 / 不戹涪行
죽고 사는 즈음에 / 死生之際
마음에 편안한 바를 얻으셨으니 / 得心所安
이 밖의 아득한 일은 / 斯外悠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可以無云
이제 길지를 얻어 / 今得吉卜
의관을 다시 장례하니 / 改葬衣冠
자손들이 일을 받듦에 / 子姓將事
먼 사람들이 와서 구경합니다 / 遠人來觀
중니의 슬퍼하고 영화로움이 / 仲尼哀榮
어찌 높은 벼슬에 있겠습니까 / 豈在尊爵
명도의 제목이 / 明道之題
후학에게 충분히 보일 만합니다 / 足示後學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니 / 有始有卒
예를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 禮以爲準
생각건대 우리 선생께서는 / 念我先生
또 무엇을 한하시겠습니까 / 其又何恨
말은 이에 그치나 / 言則止此
뜻은 다할 수 없습니다 / 意不可窮
한 줌의 향과 맑은 술잔으로 / 瓣香泂酌
저의 작은 정성 올립니다 / 薦我微衷
[각주]
[주01]화견(和見) : 이장할 때에 예전의 육신을 다시 뵘을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
[주02]얼음이 이르는 걱정 : 큰 화가 닥쳐올 것을 미리 알고 걱정함을 이른다. 《주역》 곤괘(坤卦) 초육(初六) 효사(爻辭)에 “초육은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 하였는데, 이는 음기(陰氣)가 처음 뭉쳐 서리가 내리면 날씨가 점점 추워져 단단한 얼음이 어는 것으로 화(禍)의 기미가 있으면 점점 진전되어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름을 비유한 것이다.
[주03]둔괘(遯卦)를 …… 않았는데 : 둔괘는 《주역》 64괘의 하나로 좋지 못한 세상을 만나 군자가 은둔하는 괘이다. 남송(南宋)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1195) 2월에 간신인 한탁주(韓侂冑)가 승상(丞相) 조여우(趙汝愚)를 모함하여 축출하고 주자 등의 도학파를 위학(僞學)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대부시 승(大府寺丞)으로 있던 여조검(呂祖儉)이 조여우를 변호하다가 소주(韶州)로 유배 가자, 주자는 자신이 여러 조정의 은혜를 받았으며 또 아직도 신하의 반열에 있으므로 침묵할 수 없다 하여, 수만 자에 이르는 장문(長文)의 상소문을 초(草)하여 간신들이 군주의 총명을 가리는 병폐를 극언하였다.
이에 자제와 문생들이 화를 부르게 될 것이라 하여 번갈아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았는데, 마침 채원정(蔡元定)이 들어와《주역》으로 점을 쳐서 결정할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괘(卦)를 뽑아 둔괘의 초육효(初六爻)를 얻으니, “초육은 둔(遯)의 꼬리라 위태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라.〔初六遯尾 厲 勿用有攸往〕” 하였다.
이에 주자는 상소문을 불태우고 스스로 둔옹(遯翁)이라 호하여 세상에 깊이 은둔할 뜻을 나타내었다.
《朱子大全附錄 卷4 年譜》 여기서는 곧 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직언하였음을 말한다.
[주04]먼저 …… 가시어 : 기미(箕尾)는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으로,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傅說)은 그것을 얻어서 무정을 도와 천하를 모두 소유하였으며 동유성(東維星)를 타고 기성과 미성을 몰아 열성과 나란하게 되었다.〔傅說得之 以相武丁 奄有天下 乘東維 騎箕尾 而比於列星〕” 하였는바, 기성과 미성을 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죽어서 신선이 된 것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미리 세상을 떠나 은둔함을 가리킨다.
송준길(宋浚吉)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로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南人)의 삼년제를 반대하고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기년제를 주장하여 일단 승리하였으나 기년제의 잘못을 규탄하는 남인들의 상소로 일찍 사퇴하였다. 이 때문에 후일 유배 가지 않게 되었다.
[주05]부행(涪行) : 부주(涪州)로 갔다는 뜻으로 귀양 가는 것을 이른다. 송(宋)나라의 학자인 정이(程頤)가 소식(蘇軾)과 대립하다가 쫓겨나 부주로 귀양 간 데서 유래하였다.
[주06]중니(仲尼)의 슬퍼하고 영화로움 : 중니는 공자의 자(字)로,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자공(子貢)이 공자의 덕을 칭송하여 이르기를, “살아 계시면 영광스럽게 여기고 죽으면 슬퍼한다.〔其生也榮 其死也哀〕” 하였다.
[주07]명도(明道)의 제목 : 정호(程顥)가 별세하자 문언박(文彦博)은 그의 묘에 쓰기를 ‘명도 선생(明道先生)’이라 하였으니, 이는 도를 밝힌 선생이라는 뜻인바, 동춘 역시 정호와 마찬가지로 도학을 밝힌 스승임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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