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민진강(閔鎭綱)

야촌(1) 2013. 9. 15. 00:59

■ 민진강(閔鎭綱)

   [생졸년]  1659년(효종 10)~1727년(영조 3).

 

● 요약

   [자]  사정(士正)

   [호]  애일당(愛日堂)

   [시호]  효간(孝簡)

   [시대]  조선후기

   [본관]  여흥(驪興)

   [활동분야]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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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년(효종 10)~1727년(영조 3).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정(士正), 호는 애일당(愛日堂). 증조부는 민환(閔桓)이며, 우암(尤庵)송시열(宋時烈)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효성으로 모셨다. 관직은 가감역(假監役)‧군위현감(君威縣監)‧종묘령(宗廟令)‧남원부사(南原府使)를 역임하였고, 품계는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풍모가 훌륭하고 특히 수염이 아름다웠으며, 어머니가 병이 들자 동생과 작지(斫脂)를 다투는 등 효심이 남달랐다.

벼슬에 나아가서는 읍민(邑民)이 치적을 기려 사당을 세워 향사(享祀)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스승인 우암이 정읍(井邑)에서 후명(後命)을 받았을 때의 시종에 관하여 적은『초산일기(楚山日記)』로 인해 뒷날 파직을 당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1726년(영조 2) 사간(司諫)임주국(林柱國)이 상소를 올려, 남원부사민진강이 정령(政令)에 관한 일을 제자(諸子)들에게 일임하고 있어 해괴하고 놀라운 일들이 한 가지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1832년(순조 32) 4월 예조에서 각 식년(式年)에 서울과 외방에서 충(忠)‧ 효(孝)‧ 열(烈)에 대해 장계(狀啓)로 정부에 보고한 것을 분등(分等)하여 초계(抄啓)하였는데, 공주(公州)의 고(故) 부사민진강에게 효자 정려질(孝子旌閭秩)이 내려지고, 제학(提學)을 증직 받았다.

 

그의 효성에 관하여는 권상하(權尙夏)의 『한수재집(寒水齋集)』에 실린 기문(記文) 「애일당기(愛日堂記)」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애일당’이라는 그의 당호도 ‘효자가 날을 아낀다.[孝子愛日]’는 『소학(小學)』의 한 구절에서 가져 온 것으로 연로하여 자주 병을 앓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담고 있다.



유고집(遺稿集)이 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아들은 민종수(閔宗洙)‧ 민현수(閔顯洙)‧ 민처수(閔處洙)‧ 민조수(閔祖洙)‧ 민점수(閔漸洙)가 있는데, 막내아들 민점수는 동생 민진굉(閔鎭紘)에게 양자로 보냈다.

 

[참고문헌]

◇海東人物志 ◇朝鮮王朝實錄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