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3대시인의 한 사람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의 시문집. 익재의 초상. 至正二十三年(1363) 李穡
의 序.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 이 책은 萬曆庚子(1600) 鷄林府에서 간행한 책과 同一本.
[저자] 고려국 익재 이제현(高麗國 益齋 李齊賢)
[인쇄판식] 목판본(木板本)
[출판년도] 만력경자 계림부간(萬曆庚子鷄林府刊 : 1600년)
[간행인] 경주부윤 이시발(慶州府尹 李時發)
[출판사] 계림부간(鷄林府刊)
[크기] 가로 205mm x 세로 31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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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재난고(益齋亂藁)
익재난고(益齋亂藁)는 10권 4책의 목판본이다. 초간본은 막내아들인 창로(彰路)와 장손(長孫) 보림(寶林)이 수집하여 1363년(공민왕 12)에 간행했다. 서문은 이색이 썼다. 흩어진 원고를 완전히 수집하질 못해 '난고'라는 제목을 붙였다.
1431년(세종 13) 왕명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중간했는데, 이때 〈익재난고〉 10 권, 〈역옹패설〉 4권을 합본하여 〈익재집〉으로 간행했다. 임진왜란 후인 1600년(선조 33)엔 후손 시발(時發)이 경주부윤으로 있으면서 판본을 발견하여 직접 교정하고 중간했다. 이때 권말에 시문 수편을 추가했다. 서문은 임상원, 발문은 유성룡이 썼다.
1693년(숙종 19) 허경이 경주부윤이 되어 판각을 수정하고 연보와 습유를 추가했다.
마지막 본은 1921년 경주에 사는 후손들이 편집하여 상주에서 간행한 것으로 노림재본(魯林齋本)이라고 한다.
여러 번 중간하여 판본마다 목차가 약간씩 다르지만 본문의 내용은 같다.
권1~4는 시, 권5는 서(序), 권6은 서(書)·기(記)·비(碑), 권7은 비명(碑銘), 권8은 표(表), 권9는 세가(世家)·사찬(史讚)·책문, 권10은 장단구(長短句), 이하는 〈역옹패설〉과 부록이다. 그는 시와 산문 모두에 뛰어났는데 특히 시에 관해서는 서거정·김택영이 모두 제일의 시인이라 평했다.
권4에 수록한 소악부 11수는 〈처용가〉·〈서경별곡〉·〈정과정곡〉 등 고려시대에 유행한 한글 고려가요를 악부시로 번역한 것이다. 〈장암가 長巖歌〉·〈거사련 居士戀〉·〈제위보 濟危寶〉·〈사리화 沙里花〉·〈도근천 都近川〉·〈오관산 五冠山〉 등은 직역은 아니지만 모두 가사가 전하지 않는 작품들이므로 원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이다.
그의 문들은 〈고려사〉 편찬 때 자료로 이용되었는데, 편수는 많지 않지만 여러 사서를 편찬한 사학자답게 사실적이고 자세한 설명을 한 점이 특징이다. 서(書)는 원나라에서 중서도당(中書都堂)과 승상(丞相) 등에게 올린 글들로 원나라가 우리나라의 국호를 없애고 행성(行省)으로 삼으려는 데 대해 반대한 글과 토번(吐蕃)으로 귀양간 충선왕의 구호를 요청하는 글이다.
기(記) 가운데 〈김공행군기 金公行軍記〉는 김취려와 조충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몽골군과 연합하여 강동성의 거란군을 토벌하기까지의 거란과의 전쟁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으로, 출병부터 세세한 전투까지 생생하게 기록했다.
나머지 기, 비, 비명들은 중수 관련 기록과 개인의 묘지명들이다. 조선시대의 것들이 간략하고 형식적인 데 비해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여 개인의 전기로서도 가치가 높고, 당시의 정치·사회 동향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권9의 상(上)은 세가(世家)로 고려 태조부터 충선왕까지 각 왕의 행적을 기록하고 평가했다. 희종까지는 간단하게 왕의 약전(略傳)을 소개했으나 고종 이후는 중요 사건의 내막도 적었다. 하(下)는 사찬(史讚)으로 태조부터 숙종까지 왕의 공과를 평가한 것이다.
내용은 짧으나 우리나라에 신유학이 도입되던 시기에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저자의 사관(史觀)을 보여주는 자료로 사적으로 중요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책문은 토지·인사 제도와 개혁에 관한 것들로 개혁이 절박했던 고려 후기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여기 언급된 토지제도 논의는 고려시대 토지제도 연구에 중요한 사료이다.
권10에 실린 장단구(長短句)는 사(詞)인데, 본격적인 사는 이때 처음 시도된 것으로 이후의 작품과 비교해도 그만이 사다운 사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마지막에 〈동문선〉·〈동국통감〉 등에서 뽑은 습유와 연보를 추가했다. 규장각·성균관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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