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백사집(白沙集) - 이항복(李恒福)

야촌(1) 2013. 7. 18. 03:09

 

 

 

 

 

 

 

 

↑백사집(白沙集)

 

[춣판년도] 1629년(인조 7) 序

[인쇄판식] 목판본(木板本)

[책의 크기] 가로 20㎝ x 세로 30㎝

[저자] 이항복(李恒福)

 

《白沙集》은 1629년(仁祖 7) 이후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1629년에 창곡 이현영(蒼谷 李顯英1573-1642)이 江原道觀察使로 있을 때 江原府使 潛窩 李命俊(1572-1630)과 같이 처음으로 ≪白沙集≫을 刊行하였다(江陵本). 그리고 이후 後刊本으로 錦南君 鄭忠信(1576-1636)이 晋州에서 간행한 晋州本(晋陽本이라고도 함)이 있다.

 

江陵本과 晋州本의 차이점은 鄭汝立의 叛逆에 의한 己丑獄事에 관한 記錄이 江陵本에는 누락되어 있는 점이다.

그 후 다시 1630년 金長生(1548-1631)의 門人인 張維(1587-1638)에 의해 《白沙集》이 重刊되었다. 그리고 이항복의 5대손인 宗城이 두 판본을 합하고 흩어진 시문을 추가로 수집하여 1726년(영조 2)에 嶺營所에서 간행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백사집은 총 9종류인데‚ 이 가운데 <奎 2937>‚ <奎 2938>‚ <奎 3606>‚ <奎 4235>‚ <奎 4862>는 15책으로 구성된 동일한 판본으로‚ 1635년 장유가 쓴 중간본 서문인 <重刻白沙集跋>이 있고‚ 별집이나 보유편이 없이 편집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종성이 편집한 최후의 판본으로 보인다.

 

그리고 <奎 3559>는 13책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1책-7책은 원집‚ 8책-11책은 별집‚ 12책은 부록‚ 13책은 보유편으로 편집되어 있다. 다른 부분은 모두 목판본인데 비해서 2책과 3책의 詩는 필사본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말미의 부분에 <己丑獄事議>와 1635년으로 기록된 장유의 <重刻白沙集跋>이 있는 것으로 봐서 진주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奎 4771>은 8책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1책-4책은 원집‚ 5책-7책은 별집‚ 8책은 부록으로 편집되어 있고 마지막에 보유가 덧붙여져 있으며 <己丑獄事議>와 발문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奎 4771>이 초간본인 강릉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1책만 남아 있는 <奎 7098>은 연보‚ 부록‚ 보유만 실려 있는데‚ 마지막에 <己丑獄事議>와 장유의 발문이 실려 있는 것으로 봐서 진주본 가운데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끝으로 <古 3428-308>은 총 7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책-4책은 원집‚ 5책-6책은 별집‚ 그리고 7책은 부록과 보유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축옥사에 대한 기록이나 장유의 발문이 없는 것으로 봐서 초간본인 강릉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상 9종의 《白沙集》가운데 본 해제에서 저본으로 삼은 것은 張維의 重刊本을 중심으로 5대손인 종성이 편집한 <奎 4862>이다.

 

저본의 자세한 구성은 다음과 같다. 권1에는 먼저 장유의 <白沙集序>와 <重刻白沙集跋>이 있고 간단한 목록이 소개된 다음에 판본에 대한 짧은 설명(8)이 실려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강릉본에는 있지만 진주본에는 없는 시가 28수이고‚ 진주본에는 있지만 강릉본에는 없는 것이 18수라고 소개하면서‚ 지금 두 판본을 합해서 전집을 간행하며 보충된 부분은 각 편의 아래에 ‘拾遺’라는 두 글자를 적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권4까지는 모두 詩로 편집되어 있는데 七言律‚ 五言絶句‚ 五言律‚ 七言古詩‚ 歌詠‚ 五言古詩‚ 五言長律‚ 六言 등이 실려 있다. 이 중에는 挽詩도 포함되어 있고 北靑으로 귀양갈 때 쓴 <一出都門萬事灰>‚ <重遊僧伽寺>는 逸品이다. 후자는 특히 僧伽寺에 관한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그리고 권5-권8은 모두 箚로 구성되어 있는데‚ 1593년 겨울에 分兵曹判書때 쓴 <陪東宮在全州箚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箚子는 자기가 適材가 못된다고 사퇴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권9-권12는 모두 啓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직생활을 통해 느낀 점을 건의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권13-권14는 모두 議이고‚ 권15는 箴‚ 銘‚ 序‚ 記‚ 跋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全羅道山城後敍>는 壬亂 때 湖南地方 방어에 고심했던 이항복의 고충을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小學集說跋>은 明의 淳安程氏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지은‚ 朱子小學의 詩疏 6卷을 편찬한 由來를 기록하고 있다.

 

또 跋文은 李彦迪(1491-1553)의 遺稿를 찬양한 것이다. 권16은 雜著인데‚ 이 가운데 <海淡>은 海水의 潮減에 대한 자신의 說을 피력한 것이고‚ <기축옥사>는 정여립의 모반을 기록한 것이고‚ 임진왜란의 전후사정을 소상히 전하는 <임진변초사>가 있다. 그리고 권17은 神道碑銘이며‚ 권18-권19는 墓碣銘이다.

 

권20은 墓表이고‚ 권21에는 朴淳(1523-1589) 등의 행장과 權慄(1537-1599)‚ 李舜臣(1545-1598)‚ 李濟臣(?-1583)‚ 柳成龍(1542-1607) 등의 遺事‚ 그리고 제문이 편집되어 있다. 권22는 書牘이고‚ 권23은 1598년(宣祖 31) 明에 交涉次 正使로 갔을 때의 交涉 경위에 관한 내용과 그 애로 상황‚ 明側의 태도‚ 그들의 對朝鮮觀 등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 <朝天記文>과 <朝天日乘>이 있다.

 

부록 권1에는 연보‚ 권2에는 家狀‚ 권3에는 이항복의 죽음과 관련된 行狀‚ 神道碑‚ 墓誌銘‚ 墓表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권4는 祭文이며‚ 권5는 <挽詞>와 <畵像贊>‚ 그리고 <書院上樑文> 등이다. 권6에는 諸公撰述과 諸公記識이 있고‚ 마지막으로 부록 권7에는 이항복에 대한 윤선도의 무고를 비판한 宗城의 <擬辨尹善道誣疏>가 실려있다.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이항복(1556(명종 11)-1618(광해군 10)의 자는 자상(子常), 호(號)는 백사(白沙). 1580년 알성문과 병과급제. 형조,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했다. 임진왜란의 뒷수습을 하는데 힘쓴 명신으로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