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불천위 종가의 종손모임인
영종회(嶺宗會) 창립
고문에 김병의 한훤당 종손, 류영하 서애 종손 추대
초대회장에 김종길 학봉 종손 선임
"무척 혼란스럽다. 우리는 수 천년동안, 잘 계승되어 오던 미풍양속과 윤리가치관이 붕괴되고 부도덕하고 반인륜적 작태가 빈발하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이 온 사회에 만연되어 인간성이 파괴되고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중략)
우리는 전통가문의 후예들로서 조상의 훌륭하신 가르침과 고결한 뜻을 이어 받아 선조들이 실천한 유교문화를 겸허하게 배우고 솔선 실천해 오늘의 혼란을 극복하고 윤리가 살아 숨 쉬는 반듯한 도덕사회 구현에 앞장서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희망찬 미래를 물려주어야 한다." 이상은 영종회(嶺宗會) 창립취지문의 일부다.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에 소재하는 불천위(不遷位) 종가(宗家)의 종손(宗孫) 모임인 영종회(嶺宗會)가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에서 창립되었다.
서흥김씨(瑞興金氏) 김병의(金秉義),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종손을 비롯하여 풍산류씨(豊山柳氏) 류영하(柳寧夏),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종손, 의성김씨(義城金氏) 김종길(金鍾吉)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선생 종손 등. 경북과 대구지역의 불천위 종손 92명은 2012년 3월 31일 경북 안동시 안동회관에서 영종회(嶺宗會) 창립 총회를 열고, 도덕성 회복을 위한 인성교육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창립취지문을 채택 결의했다.
영종회 창립총회에서 초대회장에 김종길(金鍾吉) 학봉선생 종손(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장)을 선출하였고, 고문으로는 김병의(金秉義) 한훤당선생 종손, 류영하(柳寧夏) 서애선생 종손이 추대되었으며, 김백용((金柏容) 한훤당선생 차종손은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참석자들은 이날 채택한 영종회 창립취지문에서 전통 유교가문의 후예로서 선조들의 훌륭하신 가르침과 정신을 겸허하게 배우고 솔선 실천하여 인간성이 파괴되고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여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희망찬 미래를 물려주자고 결의했다.
영종회는 앞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하면서 공동관심사에 대하여 의견교환 및 협의하기로 했으며 도덕성회복을 위한 인성교육에도 앞장서 전통유교문화 선양에 적극 힘을 모을 계획임을 밝혔다.
지금까지 종손들은 각 문중행사에서 간혹 서로교류가 이루어져 왔지만 이처럼 영남 전체종손들 간의 대규모 모임은 처음 있는 일이다. 종손모임은 아니지만, 퇴계(退溪) 후학들의 모임인 박약회(博約會), 양반들의 모임인 삼무회(三無會) 등이 있으나, 이번 영종회 모임의 모체는 영지회(永志會)라 할 수 있겠다.
영지회는 경북 남인(南人) 불천위(不遷位) 종손모임으로 40여년 가까이 모이고 있는데, 점필재(佔畢齋)종손, 한훤당종손, 퇴계종손, 서애종손을 비롯하여 대구 경북지역의 대표적 명문가 종손모임이다. 이 모임은 매월 두 번째 화요일에 대구에서 모이는데. 보통 10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이날 각지에서 모인 종손들은 서로 건강과 안부의 인사를 나누었으며, 영종회 창립을 통해 이제야 종손들 간 소통의 장이 마련되어 공동관심사를 함께 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반겼다. `
영남(嶺南) 종손(宗孫)들의 모임`이란 의미의 영종회(嶺宗會)는 우리선조들이 행했던 아름다운 삶과 예절을 후손들에게 물려줘 반듯한 도덕사회를 구현하자는 취지로 창립됐다.
김종길 초대회장은 “진작에 조금이라도 일찍 서둘렀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손어르신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면서 “이 모임을 통해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옛 유교정신을 현대에 구현하고, 후세들을 위한 도덕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시대적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종회에 소속된 종손은 모두 109명이다.
[참고]
국 불천위(國不遷位)는 주로 벼슬보다는 도학(道學)이 높아 국가로부터 도학군자(道學君子)라고 인정받은 사람에게만 불천위제사를 하게 되는데, 다른 기제사와는 달리 도학군자로 지정된 문중의 후손들은 이를 대단한 가문의 영예로 생각하고 성대하게 제사를 지낸다.
불천위(國不遷位) 제사를 받드는 종손을 특별히 종중군주(宗中君主)라는 뜻으로 우리종군(宗君)이라 부르며 종군의 아내를 일러 종부(宗婦)라 한다. 불천위는 국가에서 받는 국 불천(國不遷)과 유림(儒林)에서 받드는 향 불천(鄕不遷) 사사문중(私私門中)에서 지정된 사 불천(私不遷) 등이 있는데 국가에서 하사한 국 불천위를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긴다.
부언(附言) 하면 한 문중(門中)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을 종가(宗家)라 말하는데 종가는 종손의 집인 종택(宗宅)과 불천위(不遷位) 조상을 모신 사당(祠堂)이 필수적인 종가의 요건이다. 불천위는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준말이다.
종가의 맏 어른을 종손(宗孫)이라 칭하는데 국 불천위(國不遷位)를 모신종가는 종손(宗孫)이 아니고 특별히 구분하여 종군(宗君)이라고 칭한다. 그 위상이 다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천위는 임금의 명령인 어명(御命)으로 정한 불천위인 국 불천과 유림에서 받드는 유 불천 즉 향 불천, 그리고 사사문중에서 지정된 사 불천 등이 있는데 그 외 가문에서 스스로 훌륭하신 조상을 불천위로 정하여 모시기는 하나 그 위상은 떨어진다.
그리고 종가를 이를 때는 예컨대 ‘퇴계종가’라 하지 ‘진성이씨 종가’라 하지는 않는다.
불천위를 모시지 않는 가문에서는 절대로 종가니 종손이니 하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며, 종가가 없는 가문은 종손이라 하지 않고 주손(主孫)이라 칭한다.
위의 글에서는 종군과 종손을 구분하지 않고 총칭(總稱)으로 종손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가문(家門)의 위상(位相)을 말할 때는 국 불천위를 모신 가문을 최고로 여기며 그중에서도 동방오현(東方五賢)에 속한 가문 같은 성균관(成均館) 문묘(文廟)에 배향된 가문을 최고의 명문가(名門家)로 그 위상을 자타(自他)가 인정한다.
[영종회계첩서문]
嶺宗會契帖序文 韓之東南太白聳峙南走爲金井勝山小白峻嶺擁衛西北嶺湖成境作智異巨峰黃池穿山流出衆水合爲洛江千里泉甘土肥是謂嶺南可居樂地眞爲海東之鄒魯也自羅麗以來先正儒賢學行隱逸志高德博之士蔚然淵藪世世講好之美淵源授受之傳卓然爲東方道學之宗達材成德忠孝相傳立德立功立言之先哲誦其詩論其世者亦可以想像豈不盛哉壬辰歲初之某日明倫講禮修分祖先之賢冑會于映湖之靑鹿和顔談笑淸酒巡杯暫忘塵世之俗事欣然樂之余畏友君振起坐而言曰噫世降俗末拜金思潮日漓物豊情薄昨日如昔之感許多世間嗟乎滔滔大河之黃流一鍤一簣之土孰敢禦之况四維不振社會倫綱紊亂耳不忍聽目不忍視安敢吾輩之無責耶古語云家國興亡匹夫有責惟我嶺宗會文物世交之賢冑也齒不相適趣不相同業亦相異但先世相望之誼志氣相合勝於姻戚之交契有志人事何以袖手傍觀君振乃文忠公鶴峰先生之賢冑也會者黙而諾之顧念後世視今亦猶今之視昔豈不畏哉上師聖人下友群賢窺仁義之原探禮樂之緖夫何求於人何求於外哉但德業勸獎禮俗文物相交以啓來學有補於風化之萬一矣禮記云恭近禮儉近仁情近信敬禮以次雖有過其不甚矣吾儕雖所居相遠講信修睦謙謹親誼持續以待同聲相應紬雨沾衣之一助云矣自顧蒙陋何足堪是役幸參會末共賀盛事不揆蕪拙遂書而如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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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회 계첩 서문 국역]
우리한국의 동남쪽에는 태백산(太白山)이 높이 솟아있다. 그 줄기 남쪽으로 달려 아름다운 금정산(金井山)을 이루었으며 소백(小白)의 높은 산이 서북(西北)을 감싸 안아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이루고 지리산(智異山) 높은 봉우리를 만들었다.
황지(黃池)에서 산을 뚫고 흘러나온 새 암이 여러 물줄기를 합해서 천리낙동강(千里洛東江)을 이루었으며 땅이 기름지고 샘물의 맛이 좋으니 이를 영남(嶺南)이라 하였다.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지역이니 참으로 해동(海東)의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저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로 부터 선정(先正)과 유현(儒賢)과 학행(學行)과 은일(隱逸=속세를 떠나 숨어 지냄)의 뜻이 고상하고 턱이 넓은 선비가 울연히 숲을 이루었으며 대대로 세의를 지키는 아름다움이 있고 학문의 주고받는 연원이 전해져서 동방도학(東方道學)의 마루로 우뚝하였다.
훌륭한 재주로 덕을 이루고 충(忠)과 효(孝)가 서로 전해지며 덕을 세우고 공을 세워 학문을 일으킨 선철(先哲=옛날의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 詩를 외우고 그 세상을 공론하는 분들을 상상해 볼 때 어찌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었는가!
임진(壬辰)년 정초(正初)의 어느 날 인륜을 밝히고 예절을 강론하며 수분(修分)하던 선조(先祖)의 훌륭한 주손(冑孫=맏이 자손이다. 통상 종가의 장손을 종손이라 하고 派 예하의 지류의 장손을 胄孫(주손)이라 한다)들이 영호루(映湖樓) 옆의 청록(靑鹿) 식당에 모였다.
평화로운 얼굴로 담소(談笑)를 즐기며 맑은 술잔이 한 순배 돌아서 잠시라도 록세(鹿世)의 속된 일을 잊어버리고 흔연히도 즐거워했다. 그때 나의 두려운 벗 군진(君振)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해 가로되
아! 여러분 지금 세상은 강쇄하고 풍속은 말세가 되어가며 금권을 숭배하는 사조가 나날이 스며들고 물질(物質)은 넉넉하나 정분의 야박함이 어제가 옛날 같이 급변함이 세상에 허다한 느낌이 있습니다.
슬프옵니다. 도도히도 흐르는 대하(大河)의 황유를 한 삽과 한 산태 미의 흙으로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예의염치(禮義廉恥)는 진작되지 아니하고 사회의 윤리강상은 문란해져서 귀로 차마 들을 수 없고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으니 어찌 감히 우리들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옛 말 에 이르기를 나라와 집안이 흥하고 망함은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의 책임이 있다 하였다. 우리 영종회(嶺宗會)는 문물(文物)과 세교(世交)를 가진 주손(冑孫)들이다.
나아가 서로 같지 아니하고 취향 또한 같지 않으며 직업도 또한 다르지만 다만 선대(先代)에 사귀며 바라보던 세의로 지기(志氣)가 서로 상합하여 인척(姻戚=사돈)의 관계보다 못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뜻이 있는 인사(人事)들이 어찌 팔짱 끼고 방관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군진(君振)은 문충공(文忠公) 학봉선생(鶴峰先生)의 주손(冑孫)이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고요한 가운데 옳은 말이다 수긍하였다. 내 돌아보건대 뒷세상 사람들이 지금을 보는 것은 또한 지금 사람이 옛날을 보는 것과 같으니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위로는 성인을 스승으로 삼고 아래로는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 인의(仁義)의 근원을 바로 잡고 예악(禮樂)의 정서를 찾는 것이니 이것을 어찌 다른 사람에게 구하며 어찌 밖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다만 덕업을 서로 권장하고 예격(例格)과 문물(文物)을 서로 교환해서 후학들에게 열어주어 세상풍속의 교화에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 예기(禮記)에 말하기를 공손함은 예에 가깝고 검소한 것은 어짊에 가깝고 정분은 믿음에 가깝다. 예로서 공경함은 저절로 따르니 그러하면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제류(儕流=나이나 신분이 서로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은 비록 살고 있는 곳이 멀다고 하더라도 믿음을 산조로 화목을 닦아 겸손하고 삼가면서 친목을 지속하여 같은 목소리로 서로 동화되기를 기대하며 가는 빗발에 옷이 젖듯이 사회에 스며들어 도움 있기를 바란다.
내 돌아보건대 못나고 고루함이다. 어찌 이 일을 감내 하리오. 마는 다행스럽게도 會의 끝자리에 참여하여 함께 성사를 축하하며 거칠고 옹졸한 글을 무릅쓰고 드디어 위와 같이 기록하였다.
임진년 중춘(仲春)의 초 여 헐에 말석 회원 김창희 삼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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